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9일 기자회견에서 부인 김건희 여사의 이른바 ‘명품 백’ 사건과 관련해 “제 아내의 현명하지 못한 처신에 대해 국민께 사과드린다”고 했다. 그 ‘현명하지 못한 처신’이 마침내 검찰 수사 선상에 올랐다. 지난해 11월 말 이 사건이 불거진 지 5개월 만이다. 서울중앙지검은 “전담 수사팀을 꾸려 신속히 수사하라”는 이원석 검찰총장 지시에 따라 본격 수사에 착수했다.
이 총장은 “오직 증거와 법리에 따라 수사하겠다”고 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특별 고려’가 뒤따라야 한다. 대통령 부인이니 특별 대우를 해주라는 얘기가 아니다. 거꾸로 ‘대통령 부인이라고 해서 특별 대우 하는 게 하나도 없구나’하고 국민들이 느끼게끔 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야 다수 국민이 수사 결과를 신뢰하게 되고, 그래야 윤 대통령도 ‘아내의 족쇄’에서 벗어날 수 있다.
지금까지 대통령 아들이나 형제·친인척이 그 대통령 임기 중에 수사 받은 일은 많았다. 그러나 대통령 부인이 수사 받은 일은 없었다. 검찰의 김건희 여사 수사는 우리 정치사에서 유례가 없는 일이다. 그만큼 검찰이 어떤 자세로 수사하고 대통령실은 어떤 자세로 협조할지가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많은 국민들이 눈여겨보는 것은 한 가지일 것이다. 공정과 상식이 지켜지는지이다. 공정과 상식은 윤 대통령의 대선 약속이기도 하지만, 많은 국민들이 목말라하는 가치이다. 그 가치가 얼마나 실현되는지에 따라 김건희 여사는 물론이고 윤 대통령을 대하는 국민 마음이 달라질 것이다.
이번 국회의원 총선 기간 동안 ‘어떻게 이재명이나 조국 같은 사람을 지지할 수 있느냐’ 의아해하고 나아가 분노하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많이 볼 수 있었다. 현 정부를 지지하는 사람들이다. 이재명 대표는 10여 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그중에는 거짓말과 위증 교사 혐의도 있다. 파렴치범에 가까운 혐의다. 이 대표의 아내는 법인카드 사건으로 재판을 받고 있다. 조국 대표는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실형 2년형을 선고받고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그의 아내는 이미 실형 4년 확정 판결을 받았고, 딸도 1심에서 벌금 1000만원 형을 받았다. 이 정도이면 이 대표나 조 대표나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는 것 자체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게 현 정부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심정이고 판단이다. 그러니 ‘어떻게 저런 사람들을~’이라는 말이 나오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이 대표나 조 대표를 지지하는 사람들 반응은 전혀 달랐다. 이들에게 ‘이 대표나 조 대표의 범죄 혐의를 보고도 어떻게 지지하느냐’고 물어보면 의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윤석열이나 한동훈이나 주변을 탈탈 털면 이재명·조국과 다를 게 뭐가 있겠느냐’는 대답이었다. 이런 반응에는 현 정부와 검찰에 대한 불신과 반발심이 깔려 있다. 검찰이 이 대표와 조 대표 및 그들의 가족 비리는 정의 실현이라는 이름으로 끝까지 파헤치면서 윤 대통령 가족이나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 관련 의혹에는 눈을 감고 있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현 정부가 말하는 정의는 상대방에게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선택적 정의’라고 주장하며 정부를 공격했다. 이 대표나 조 대표 지지자들은 선택적 정의 주장에 공감하고 있었다. 그 두 사람의 도덕성 논란이 불거진 것은 현 정부가 선택적 정의에 따라 두 사람을 편파적으로 수사했기 때문으로 봤다. 이 대표와 조 대표의 도덕성 논란보다 현 정부의 선택적 정의에 더 분노하고 반발했다. 그런 민심이 국민의힘 참패라는 선거 결과로 나타났다.
검찰이 처음부터 이 대표나 조 대표 또는 그 가족을 겨냥해 먼지 털기식 수사를 한 것은 아니다. 기획 수사나 별건 수사로 사건을 만들어 낸 것도 아니다. 언론 보도를 통해 의혹이 터지고 몇몇 시민단체가 고발해 법 절차에 따라 수사를 진행했을 뿐이다. 특정 정치인을 탄압하기 위해 벌인 정치 수사라고 할 수가 없다. 이런 점에서 ‘이 대표와 조 대표에게만 정의의 잣대를 들이대 탈탈 털었다’는 선택적 정의 주장은 사실이라고 하기 어렵다. 야당 사람들은 검찰이 조국 대표와 그 부인과 딸 등 일가족을 ‘도륙을 냈다’고 비난하며 이는 전례가 없는 일이라고 주장한다. 전례가 없는 것은 맞지만, 그 이유는 조국 대표처럼 일가족이 범죄에 연루된 전례도 없기 때문이다.
'선택적 정의' 주장이 공감 얻는 현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대표나 조 대표 지지자들이 ‘선택적 정의’라고 주장하며 반발하는 데는 그들 나름의 이유가 있다. 2022년 대선을 전후해 김건희 여사 관련 의혹들이 불거졌으나 검찰이 이 대표나 조 대표를 수사하듯 파헤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명품 백 사건이 터졌다. 그간 제기된 김 여사 관련 다른 의혹들은 증거가 확실치 않다고 변명할 수도 있지만 ‘명품 백’ 사건은 다르다. 백을 받는 장면이 동영상에 찍혀 있다. 그런데도 윤 대통령은 침묵으로 일관했고 검찰도 윤 대통령 부부가 고발된 작년 12월 이후 수사에 나서지 않았다. 그러니 야당 고정 지지층은 물론이고 중도층에까지 선택적 정의라는 주장이 먹혀 들고, 윤 대통령이 내세우는 공정과 상식이 헛말이라는 믿음이 생겨난 것이다.
이제 윤 대통령과 검찰은 명품 백 사건 수사를 선택적 정의라는 부정적 인식을 씻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공정과 상식이 지켜졌다는 국민 신뢰를 얻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그러자면 먼저 이원석 검찰총장 말대로 오직 증거와 법리에 따라서만 수사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청탁금지법에 따르면 공직자의 배우자는 공직자의 ‘직무와 관련해’ 1회 100만원 또는 연간 300만원을 넘는 금품을 받아서는 안 된다. 또한 공직자는 자신의 배우자가 이 같은 금품을 받은 사실을 알게 되면 ‘지체없이’ 관계기관(감사원, 수사기관, 국민권익위원회 등)에 신고하고 받은 금품은 그 제공자에게 반환하도록 해야 한다. 김 여사가 받은 백의 가격은 300만원 상당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이번 사건의 법률적 쟁점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김 여사가 윤 대통령의 직무와 관련해 백을 받았는지와 윤 대통령이 김 여사의 백 수수 사실을 언제 알았고 알고 나서 관계기관에 신고하거나 그 제공자에게 반환하도록 했는지이다.
가장 핵심적 쟁점은 ‘직무 관련성’ 여부이다. 직무 관련성은 대통령의 직무 내용, 그 직무와 백 제공자의 관계, 백을 제공한 사람과 받은 김 여사 간에 특수한 사적 관계가 존재하는지 여부, 백을 받게 된 경위 등을 종합해 판단하게 된다. 직무 관련성이 인정되지 않으면 청탁금지법상 형사처벌 대상이 되지 않는다. 직무 관련성이 인정된다면 그 다음 문제는 윤 대통령이 김 여사가 백을 받은 사실을 언제 알았고 안 뒤 어떤 조치를 취했는지이다. 안 뒤 지체없이 신고하거나 반환하도록 하지 않았다면 형사 처벌 대상이 된다.
다만 이 경우에도 처벌 대상자는 김 여사가 아닌 윤 대통령이다. 청탁금지법에 해당 공직자만 처벌할 뿐, 그 배우자를 처벌한다는 조항은 없기 때문이다. 현직 대통령은 임기 중 형사 소추를 받지 않도록 헌법에 규정돼 있다. 따라서 직무 관련성이 인정되고 적절한 사후 조치를 취하지 않았더라도 윤 대통령을 처벌할 수는 없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도덕적 비난을 받게 되고, 정치적으로도 곤경에 처해지게 된다.
이처럼 이번 사건은 수사 대상이 겉보기에는 김 여사뿐인 것 같지만 만에 하나 직무 관련성이 인정된다면 윤 대통령도 될 수 있다. 김 여사가 백을 받은 게 직무 관련성이 있는지, 직무 관련성이 인정될 경우 윤 대통령이 언제 알았고 어떤 조치를 취했는지가 핵심적 수사 대상이다. 이에 대한 검찰 수사 결과가 과연 국민 눈높이와 상식에 맞을 것이냐가 관건이다. 검찰이 어떤 수사 결과를 내놓든 국민 신뢰를 얻지 못한다면 헛일이다.
김 여사, 검찰에 공개 출석하고 포토 라인 서야
바로 이 점에서 검찰의 ‘특별 고려’가 요구된다. 수사 결과에 대해 국민 신뢰를 얻을 수 있으려면 수사 결과 못지않게 수사 절차와 방식이 중요하다. 절차와 방식에서 신뢰를 얻을 수 있다면 결과가 흡족하지 않더라도 신뢰를 얻을 수 있다. 이번 수사의 절차와 방식에서 가장 관심을 끄는 대목은 김 여사 조사 방식과 절차이다. 소환, 서면, 방문 조사를 생각할 수 있다. 소환도 공개 소환이 있고 비공개 소환이 있다. 방문 조사는 대통령실에서 할 수도 있고 제3의 장소에서 할 수도 있다.
이 가운데 가장 신뢰 받을 수 있는 절차와 방식은 공개 소환 조사이다. 서면 조사나 방문 조사는 국민 눈에 특혜 조치로 비칠 수밖에 없다. 현직 대통령 부인도 공개 소환 조사한다는 것은 특권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 자체로서 수사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 공정성과 투명성을 인정받아야 신뢰를 얻을 수 있다.
윤 대통령과 김 여사도 공개 소환에 적극 협조해야 한다. 소환 일정이나 검찰 출석 방식을 놓고 검찰과 신경전을 벌이거나 특혜를 요구하는 듯 비치면 국민들은 바로 고개를 내젓게 된다. 김 여사는 최소한의 경호 인력만 대동해서 검찰에 출석하고, 검찰청사 앞 포토 라인에도 설 수 있어야 한다. 그 자리에서 ‘현명하지 못한 처신’에 대해 다시 한번 국민들에게 사과하고, ‘다시는 이런 불미스러운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약속한다면 김 여사를 향한 국민의 따갑던 시선이 다소간에 누그러질 수 있다.
김건희 여사 관련 수사를 담당한 서울중앙지검의 주요 간부들이 지난 13일 모두 교체됐다. 하필 김 여사 관련 수사가 한창 진행되는 도중에 수사 지휘 라인이 교체돼 수사 배경을 놓고 말들이 많다. 야당에서는 김 여사 수사 방탄용이라고 주장한다. 이원석 검찰총장은 인사 다음날인 14일 기자들의 질문에 "어제 단행된 검사장 인사는…. 제가 이에 대해서 더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라고 해 불편한 듯한 기색을 내보였다. 이번 인사가 김 여사 수사의 공정성과 엄정성을 의심하게 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정의를 실현하려면 실제로 정의로워야 하지만 겉모습도 정의로운 것처럼 보여야 한다는 말은 사법 절차에서 교과서로 통한다. 검찰은 나중에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어떤 정치적 고려도 없이 증거와 법리에 따라 수사했다고 할 것이다. 그게 실제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김 여사에 대한 수사 절차와 방식이 정의롭게 여겨지지 않는다면 수사 결과의 정당성은 인정받기 어렵다. 이번에도 ‘선택적 정의’가 작용했다고 여겨지기 쉽다. 그리 되면 나라는 더욱더 윤 대통령과 김 여사 문제로 시끄러워지고 국민은 현 정부로부터 마음을 돌리게 된다. 이번에야말로 선택적 정의라는 부정적 인식을 씻는 기회가 돼야 한다.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정치학과ㆍ 대학원 정치학 석사 ▶조선일보 논설위원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본부장 ▶원주 한라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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