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하진 않지만 몇 년 전과 비교해 에어컨이 복도에 설치되면서 여름나기가 수월해졌다”(민모씨·59·돈의동 쪽방촌 거주)
“복도 양쪽에 두개가 설치돼 있어도 에어컨 밑에만 시원할 뿐이고, 이마저도 마음대로 틀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무용지물이다”(차모씨·66·동자동 쪽방촌 거주)
완연한 초여름 날씨를 보이며 낮 기온이 27도까지 오른 지난 7일 종로구 돈의동 쪽방촌 골목엔 물을 안개처럼 뿜어 주변 온도를 낮춰준다는 쿨링포그가 일찍부터 작동하고 있었다. 무더위가 채 시작되기 전인데도 삼삼오오 골목에 나와 더위를 식히는 돈의동 쪽방촌 주민들도 눈에 띄었다.
이곳에서 8년째 돈의동 쪽방촌에 살고 있다는 민모씨(59)를 만났다. 민씨는 폭염에 쿨링포그가 도움이 됐냐는 기자의 질문에 “시원한 게 느껴지니 좋다”며 직접 경험해 보길 권했다. 쿨링포그는 좁은 쪽방 골목의 온도를 2~3도 정도 내리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올여름이 평년보다 유난히 덥고 폭염일수도 길어질 것이란 예상이 나오면서 정부는 지난달 20일부터 9월 30일까지를 폭염대책 기간으로 정했다. 서울시도 그에 맞춰 폭염 대비 태세에 들어갔다.
앞서 서울시는 폭염으로부터 쪽방촌 주민을 보호하기 위해 2022년부터 쿨링포그 설치를 지원하고 있다. 같은 해 쪽방촌에 공용 에어컨 설치 지원 사업도 벌였다. 이로써 지난해까지 돈의동을 포함해 서울 내 5개 쪽방촌에 서울시가 보급한 공용 에어컨만 171대에 달한다.
돈의동 쪽방에 5년간 거주하고 있다는 이종원씨(66)는 “공동으로 트는 거지만 복도에 에어컨이 생겨 더울 때 방문을 열어두면 시원하다”며 “예전에 비하면 좋아졌다”고 말했다.
동자동 쪽방, 주민 828명에 에어컨 보급 26대뿐
하지만 에어컨 설치가 되지 않은 쪽방 건물 세입자들의 여름나기 걱정은 여전한 상황이다. 쪽방은 5층 미만의 건물 안에 1~2평(3.3~6.6㎡) 정도의 좁은 방을 쪼개 사용하는 형태로, 에어컨 등 냉방장치가 없으면 더위에 매우 취약한 구조다.
특히, 서울 5대 쪽방촌 중 주민이 가장 많다고 알려진 동자동 쪽방촌은 다른 곳들에 비해 공용 에어컨 설치가 더딘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 조사결과 동자동 쪽방촌 주민수는 828명이다. 뒤이어 돈의동 492명, 영등포 411명, 남대문 377명, 창신동 188명 등이다.
그런데 서울시가 지난해까지 동자동 쪽방촌에 보급한 에어컨 수는 26대뿐이었다. 주민수로 두 번째인 돈의동 쪽방촌(67대)의 3분의 1 수준이다.
동자동 쪽방촌 주민수의 절반에 못 미치는 남대문 쪽방촌에는 서울시를 통해 에어컨 42대가 보급됐다. 그럼에도 서울시가 올해 추가로 공용 에어컨을 보급할 예정지에 동자동 쪽방촌은 포함되지 않았다.
동자동 쪽방촌은 다른 곳들보다 건물 주인의 반대가 심해 이러한 설치 불균형이 생긴 것으로 파악됐다. 이를 해결할 방법조차 현재로선 마땅치 않은 상황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에어컨을 설치할 때 주인에게 동의를 구해야 하는데 서울역 쪽방촌 주인들이 유난히 반대가 심했다”며 “에어컨 설치에서 추가 대책이라는 게 집주인들을 설득하는 것 외에 추가로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설명했다.
동자동 쪽방촌 주민들은 공용 에어컨 설치에 회의적인 반응이다. 실제 주민들 사이 “주인이 전기세 부담하면서 설치를 해주겠냐”부터 “공용 에어컨이 제 역할을 못 해준다” “에어컨을 틀 수 있는 게 주인, 관리자여서 더울 때 마음 편히 쓸 수도 없다” 등 얘기를 쏟아냈다.
일각에서는 에어컨으로 발생하는 전기세가 방세 인상으로 이어질까 우려도 나온다. 쪽방의 경우 전기세를 건물 주인이 부담하는 구조라 전기요금이 많이 나오면 세입자에게 전가할 소지가 있다.
이에 서울시는 건물주의 전기요금 부담을 덜기 위해 7~8월 발생한 전기요금의 일부를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지난해까지 민간 지원을 받았던 것을 올해는 특별교부세와 재난지원금을 활용해 지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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