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 12대 의장 폴 볼커의 1990년 9월 워싱턴 강연 내용이다. 볼커는 외압에 흔들리지 않고 인플레이션과 싸움에서 승리한 승리자이자 유례 없는 호황을 이끌어 낸 주인공이다. 초고금리 정책을 펼쳤던 볼커는 살해 위협을 받을지라도 물가를 잡겠다는 집념으로 굽히지 않았다.
볼커와 대비되는 연준 의장이 한 명 있다. 10대 의장 아서 번스다. 정치적 상황에 휘둘려 나라 경제를 휘청이게 한 그에겐 '역대 최악'이라는 꼬리표가 붙는다. 번스는 경제가 나빠져 정치권 압박이 있을 때마다 기준금리를 끌어내렸다.
1972년 재선을 앞둔 닉슨 대통령이 금리 인하를 종용하자 1년 만에 기준금리를 5% 가까이 내린 게 대표적이다.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무시한 채 통화정책을 운용한 결과 인플레이션이 10%대에 머물거나 전대미문의 스태그플레이션을 맞았다. 뒷감당은 미국인들의 몫이었다.
국회 본회의와 겹쳐 특위가 미뤄지긴 했지만 시장은 금리 인하 기대감에 부풀었다. 지난 28일 서울 채권시장에서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전 거래일보다 3.8bp(1bp=0.01%포인트) 내린 연 3.182%에 장을 마쳤다.
정치권 압박은 더 거세질 전망이다. 한은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위원장에 송언석 의원이 선임된 건 상징적이다. 미국을 제외한 주요국 중앙은행이 금리 인하를 단행하면서 정부·여당 입김에 힘이 실리는 모양새다.
한은은 통화정책을 '천천히 빠르게'(Festina Lente) 운용하며 스스로의 속도로 피벗의 길을 나아가겠다고 천명했다. 시장과 정치권의 기대를 저버려야 할 수도 있다. 번스처럼 굴복할 것인가, 볼커처럼 집념의 승리를 이룰 것인가.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한은 금융통화위원회 회의는 오는 11일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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