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소송 과정에서 드러난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에 대한 국세청의 증여세 과세 여부에 관심이 쏠린다. 국세청이 해당 자금을 '불법 통치자금'으로 보고 추가 조사에 나선다면 아직 환수하지 못한 6공화국 비자금 실체가 드러날 수 있기 때문이다.
강민수 국세청장 후보자는 지난 16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인사청문회에서 최 회장과 노 관장의 이혼 소송 과정서 드러난 900억원대 자금에 대한 과세 여부를 묻는 김영환 더불어민주당 의원 질의에 "불법 정치자금의 시효가 남아 있고, 만약 확인만 된다면 당연히 과세해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노 전 대통령 비자금 이슈는 최근 최 회장과 노 관장의 이혼 소송 과정에서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6공 비자금은 총 4600억원 규모로 알려져 있지만 기업들에서 뇌물로 받은 2680억원만 추징됐을 뿐 나머지 금액은 아직 확인되지 않은 상태다.
노 관장 측은 이혼소송 과정에서 노 전 대통령 배우자인 김옥숙 여사 메모를 근거로 1990년대 초 선경(SK) 측에 300억원이 전달됐다고 주장했고 서울고법이 이를 수용했다. 김 여사 메모에는 SK 측으로 흘러간 300억원 외에 다른 가족 등에게 전달된 604억원에 대한 내용이 추가로 기재됐는데 이 금액을 더하면 총 904억원에 이른다.
현재 공소시효가 지난 노 전 대통령 비자금은 국고로 환수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지만 가족들에게 승계된 자금은 상속·증여세법을 통해 과세가 가능하다.
국세기본법에 따르면 과세관청은 50억원 넘는 재산에 대해서는 세금 부과제척기간이 지났더라도 해당 재산의 상속 또는 증여가 있음을 안 날로부터 1년 이내에 세금을 부과할 수 있다. 노 관장 측이 주장한 '자금 메모'를 인지한 시점인 2심 판결일(2024년 5월 30일)을 '상속·증여가 있음을 안 날'로 보면 징수권 행사가 가능한 셈이다.
앞서 전두환 전 대통령 아들 재용씨에게 흘러들어간 비자금에 뒤늦게 증여세가 부과된 사례도 있다. 재용씨는 2004년 외조부에게 액면가 167억원 상당 국민주택채권을 받고도 이를 은닉해 증여세를 포탈한 혐의로 구속기소됐고 서대문세무서는 증여세 41억여 원을 부과했다.
이에 재용씨는 소송을 제기했지만 재판부는 채권 매입자금 중 액면가 73억5000만여 원의 실제 증여자는 전 전 대통령으로 봐야 하고 나머지 93억5000만여 원은 전 전 대통령 비자금일 개연성이 높다며 과세 요건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당국이 비자금으로 추정되는 904억원에 대한 과세 절차에 착수하면 그간 드러나지 않았던 새로운 비자금의 실체가 드러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구체적인 비자금 규모가 최 회장과 노 관장의 이혼 소송 상고심 결과에도 영향을 줄 가능성도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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