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섭 기업거버넌스포럼 사무국장은 30일 “여론의 질타와 금융 당국의 압박이 너무 심하다 보니 고육지책으로 또다시 꼼수를 낸 것이라 보고 있다”며 “지금 당장 주식 교환만 철회한 상황이고, 아예 안 한다는 것도 아니어서 상황을 봐서 다시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두산그룹은 지난 29일 지배구조 개편의 일환으로 추진하던 두산밥캣과 두산로보틱스 간 포괄적 주식 교환 계약을 철회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두산로보틱스와 두산밥캣의 주식을 1대0.63 비율로 교환해 두산밥캣을 두산로보틱스의 100% 자회사로 합병하려던 계획은 무산됐다. 두산그룹의 손자회사에서 자회사로 변화하려던 두산밥캣의 시도도 무위로 끝났다. 지난달 11일 합병 계획을 발표한 지 한 달 반 만이다.
이번 결정은 두산 측이 내놓은 주식 교환 비율이 두산밥캣과 두산에너빌리티의 일반 주주 이익을 침해한다는 논란을 빚으면서 시작됐다. 이후 금융 당국은 두산 압박에 나섰다.
금융감독원은 지난달 24일에 이어 26일에도 두산 측에서 제출한 합병 신고서와 포괄적 주식 교환·이전 신고서에 대한 정정신고서를 요구했다. 두 번째 반려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부족함이 있다면 횟수 제한 없이 정정 요구를 하겠다"며 강경한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투자 업계를 중심으로 두산그룹이 합병 자체를 철회할 가능성이 제기됐고 두산의 철회 결정이 나왔다. 이를 두고 시장은 '진정성을 느끼기 어렵다'며 두산의 결정에 냉담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근거로 제시한 게 두산이 모든 계획을 철수한 건 아니라는 점이다. 총 3단계인 분할 합병 과정 중 1단계와 2단계는 그대로 진행한다는 게 두산의 방침이다.
두산은 지배구조 개편을 3단계로 나눠 진행하기로 했다. 1단계로 두산에너빌리티를 분할해 밥캣 지분을 보유한 투자회사를 신설한 뒤, 2단계에서 두산로보틱스가 신설 투자회사를 흡수 합병하기로 했다. 마지막 3단계에선 두산로보틱스가 밥캣 주주들의 주식을 모두 넘겨 받는 주식 교환 절차를 따를 계획이었다.
'합병 계획 일부 철회'라고 밝힌 건 두산이 3단계만 중단하겠다고 결정했기 때문이다. 이에 두산밥캣 주주들이 보유한 회사 주식은 일단 남겨두게 됐다.
일반주주들은 이번 철회와 관련해 지배구조 개편안 중 일부를 철회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였다. 소액주주 의결권 플랫폼 액트팀은 "두산에너빌리티 입장에서는 기존과 달라지는 것이 없고 기존 안대로 두산밥캣을 로보틱스에 빼앗기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일각에서는 두산에너빌리티가 2단계 절차도 금감원의 문턱을 넘어서기 어려울 거라는 전망을 내놨다. 금감원이 2차 정정 요구에서 두산에너빌리티로부터 분할되면서 신설되는 법인의 수익가치 방식을 지적했는데, 두산은 분할 합병 방식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두산이 기업 가치 산정 방식을 금감원에 소명할 수 있을 것이냐가 여전히 과제로 남았는데 현 상태로는 통과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며 “금감원을 통과한다고 하더라도 주주총회에서 승인을 받기 힘들고 일반주주들이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아 합병 자체가 무산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두산그룹 관계자는 "두산에너빌리티 입장에서는 차입금을 줄여 원전 관련한 추가적인 투자가 필요하고 사업적 성장도 기대되기 때문에 (합병은) 필요한 과정이라고 본다"며 "금감원이 요청한 부분들을 반영해서 보완한 뒤 정정 신고서를 향후에 다시 신청할 계획"이라는 원론적인 입장만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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