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성어로 세상 읽기](24)털을 헤쳐 작은 흠집을 찾아내다 - 취모구자(吹毛求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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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혁 에세이스트
입력 2024-09-0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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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스트]

1848년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발표한 '공산당선언' 식으로 말하자면 이런 표현도 가능할 것 같다. "두 개의 유령이 한반도의 남쪽을 배회하고 있다 - 빨갱이와 친일이라는 유령이." 우파가 좌파를 공격하는 유령이 '빨갱이'라면 좌파가 우파를 공격하는 유령이 '친일'이다. 소련의 해체와 함께 공산진영이 몰락하고 남한의 국력이 북한을 압도하면서 빨갱이라는 유령은 힘을 잃었다. 반면에 한일간의 국력 차이가 미미해지고 일제의 사슬에서 해방된 지도 80년이 다 되어가건만 광복절 행사가 두 쪽이 날 만큼 친일이라는 유령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다. 

민주당의 친일몰이가 또 시작되었다. 22대 국회가 들어서기 무섭게 탄핵과 특검법 발의를 남발하며 정국을 아수라장으로 만든 민주당이 대여 공세 레퍼토리를 하나 더 추가한 것이다. 물론 민주당의 친일몰이가 새삼스럽지는 않다. 세 불리하면 전가의 보도처럼 꺼내드는 상용 카드이니 말이다. 그런데 마치 굶주린 하이에나처럼 촉각을 곤두세워 찾아낸 먹잇감들이 무슨 대단한 시빗거리가 되느냐 하면 딱히 그렇지도 않다. 

22대 국회 첫 대정부질문에서 민주당 김병주 의원이 국민의힘 국회의원들을 싸잡아 '정신나간 사람들'이라고 했다. 국민의힘 대변인이 '한미일 동맹'이라고 논평했다는 게 이유였다. 당연히 국민의힘 의원들이 거세게 항의했고 국회는 한동안 파행을 겪어야 했다. 김 의원은 4성장군 출신이다. 북한의 거듭된 도발엔 입도 뻥끗하지 않으면서 일본과의 군사협력을 '동맹'으로 표현한 상대 당 대변인의 작은 실수를 트집잡아 동료의원들을 싸잡아 '정신나간 사람들'이라고 막말을 했다. 상식적이지 않다. 육사 교장 망신 주기를 비롯하여 그의 막말 이력은 길다. 논란이 일자 국민의힘 대변인은 표현상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했지만, 김병주 의원은 여지껏 본인의 발언에 대한 사과를 거부하고 있다.

민주당은 작년 12월, 독도를 '분쟁지역'이라고 한 군 정신전력교육 교재를 문제삼았다. 독도를 그리 표현한 건 국방부의 실책이 분명하니 변명의 여지가 없다. 국방부도 즉각 장관이 사과하고 해당 교재를 회수 조치했다. 지난달에는 서울 지하철 역사와 전쟁기념관 독도 조형물 철수를 정치 쟁점화했다. 리모델링을 위한 일시적 철수라는 해명에도 불구하고 최근 불거진 독립기념관장 임명과 건국절 논란을 엮어 윤석열 정부를 '친일'로 규정하고 '독도 지우기'를 하려는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코로나로 입원 중인 이재명 당대표까지 뛰어들어 진상조사단을 구성하라는 지시를 하며 판을 키웠다. 후쿠시마 '핵 폐수' 괴담을 살포하여 1조6천억 원 예산 낭비를 초래한 책임 회피용으로 이만한 카드도 흔치 않을 테니 말이다.

이렇듯 민주당은 상대방의 사소한 허물이나 말실수를 들춰내 친일 프레임 씌우기를 능사로 안다. 정치적 의도와 거리가 먼 단순 실수에 불과할지라도 개의치 않는다. 어차피 정치적 이득을 노리고 하는 반일 장사이기 때문이다. '친X'는 X와 친하거나 친하게 지내겠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런데 왜 친미, 친중은 괜찮고 친일은 문제가 되는가?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통한의 역사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일제에 부역하고 일신의 영달을 도모한 자들을 일러 '친일'을 했다고 역사적으로 규정한 이래 우리 사회에서 친일은 금기어가 됐다. 국어사전도 아예 '친일'을 두 가지 의미로 나누어 기술하고 있다. (1. 일본과 친하게 지냄. 2. 일제 강점기에, 일제와 야합하여 그들의 침략•약탈 정책을 지지•옹호하여 추종함.) 본원적 의미의 친일과 역사적 의미의 친일이다. 여하튼 친일이란 두 글자만 나와도 피가 끓고 혈압이 오르는 국민들이 여전히 많다. 그런 마당에 어느 정부가 감히 독도 지우기를 획책하겠는가. 독도 지우기 의혹 제기는 국민을 얕보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정치선동에 불과하다. 본원적 의미의 친일을 통해 경제를 키우고 안보를 튼튼히 하려는 보수우파 정당에 역사적 의미의 친일 프레임을 씌워 국민정서에 불을 지르고 정치적 이득을 꾀하려는 게 민주당이 습관적으로 하는 친일몰이의 민낯이다.

법가 사상을 정립한 한비는 타고난 문장가였다. 그의 사상을 집대성한 '한비자(韓非子)'는 명언과 명구의 보고로 불린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모순'이나 '역린', 본 칼럼에서도 다룬 바 있는 '노마식도', '남우충수' 외 다수의 성어가 한비자를 원전으로 하고 있다. 한비자 '대체편(大體篇)'에 "(현명한 군주는)...혼란한 정치는 법술로 다스리고, 옳고 그름은 상벌에 의지했고, 가볍고 무거움은 저울로 나누었다. 하늘의 이치를 거스르지 않고,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았으며, 터럭을 불어서 작은 흠집을 찾지 아니하고, 먼지를 털어 알기 어려운 것을 살피려 하지 않았다"라는 대목이 있다(寄治亂於法術  託是非於賞罰 屬輕重於權衡 不逆天理 不傷情性 不吹毛而求小疵 不洗垢而察難知).

짐승의 몸에 난 사소한 흠은 털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다. 털을 헤치면 안보이던 흠집이 드러난다. 입으로 털을 불어 헤쳐 가며 그 속의 흠집을 찾듯 남의 사소한 잘못을 샅샅이 들추어낸다는 뜻을 가진 성어 '취모구자(吹毛求疵)' 또는 '취모멱자(吹毛覓疵)'가 여기에서 유래했다. '대체(大體)'는 사물의 대국적 견지라는 뜻으로, 한비자는 대체편을 통해 나라를 다스리는 정치의 요점과 요령에 대해 논하고 있다. 취모구자는 현명한 군주가 취할 바가 못된다. 수권을 꿈꾸는 정당과 정치인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민주당도 그들의 친일몰이가 억지라는 것을 모를 리 없다. 그럼에도 똑같은 행태를 반복하는 이유는 정치적으로 남는 장사라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민주당이 유념해야 할 게 있다. 미래는 MZ세대의 몫, 태어나 보니 선진국에서 살고 있는 이들 세대는 일본에 대한 콤플렉스도 없고 적개심도 없다. 갈수록 친일몰이는 수지 타산이 맞지 않는 장사가 될 것이다. 시간은 민주당 편이 아니다. 현해탄 너머 고국땅에서 죽창가가 울려퍼질 때마다 수백만 재일 교포들이 가슴을 졸여야 하고, 독도 영유권을 정쟁의 소재로 삼고 이슈화할수록 즐거운 건 일본뿐이다. 정녕 민주당이 일본을 이롭게 하는 '친일' 정당이 되고자 하는 게 아니라면 이쯤에서 시대착오적 친일몰이를 접고 극일(克日)하고 용일(用日)하는 미래지향적 정당으로 거듭나는 게 어떻겠는가.




유재혁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사회학과 졸업 △제일기획 근무(1985~2008) △'한국산문' 등단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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