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2월 미국 밀워키에서 선종한 존 메이스(John D. Mace, 한국명 정대권) 신부의 유해 안장식이 지난달 31일 용인 천주교공원묘지 예수회 묘역에서 예수회 한국 관구 주관으로 거행됐다.
그의 시신은 본인의 뜻에 따라 미국 위스콘신 의과대학에 기증됐다. 기증 후 남은 유해는 화장돼 절반은 고향에, 절반은 한국에 묻혔다. 이 역시 메이스 신부의 마지막 뜻이었다.
메이스 신부는 한국을 특별히 사랑했다. 그는 한국 땅에서 사제서품을 받았다. 1937년 미국 네브래스카 주 오마하에서 태어난 그는 1955년 예수회 위스콘신 관구에 입회한 후 1962년 한국에 파견됐다. 광주 대건신학교(현 광주가톨릭대) 강사로 재직하다가 1968년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대성당에서 김수환 추기경으로부터 사제서품을 받았다. 이후 서강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1983년부터 1985년까지 5대 서강대 총장으로 일했다.
그는 서강대 교수 시절 광주로 피정지도를 갔다가 5·18 민주화 운동을 겪었다. 이백만 전 주교황청 대사는 “신군부가 광주를 점령했을 당시, 소개 명령으로 메이스 신부는 외국인들을 서울로 보내는 마지막 버스에 올라탔다”며 “그 버스를 타고 가면서 정말 많이 울었다고 회상하곤 했다”고 전했다. 이어 “광주 사람들을 만나면 ‘~했당께’ 같은 사투리로 농담을 던지며 한국에 대한 애정을 표현했다”고 덧붙였다.
한국 경제가 급성장하자 메이스 신부는 미국으로 돌아가 재충전을 마친 후 동티모르, 필리핀, 캄보디아 등 아시아의 가난한 나라들을 찾아 봉사했다. 캄보디아에서 메이스 신부를 만난 이 대사가 “신부님은 왜 가난한 나라만 찾아다니십니까”라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묻자, 메이스 신부는 “내가 소띠에 음력 3월생이라 평생 일만 할 팔자 같아요”라고 답했다고 한다. 음력 3월은 양력으로 4~5월 농번기다. 1960~70년대 한국에서는 소 없이는 농사를 지을 수 없었다.
그는 젊은 자원봉사자들과도 격의 없이 지냈다. 캄보디아에서 한국 식당을 찾을 때면 이렇게 말하곤 했다. "불고기 앞에 놓고 소주 한잔 안 하면 한국 사람 아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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