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기고] 원칙 중심의 유연한 법인택시 월급제가 필요하다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김동영 KDI 전문연구원·중앙대 겸임교수
입력 2024-09-13 08:00
    도구모음
  • 글자크기 설정
사진아주경제DB
김동영 한국개발연구원(KDI) 전문연구원·중앙대 겸임교수. [사진=아주경제DB]
다행히 시간을 벌었다. 국회는 2019년 제정돼 2024년 8월부터 시행 예정이던 '택시 월급제'의 전국 도입을 2년간 유예하기로 합의했다. 법인택시 회사뿐만 아니라 당사자인 노조의 반대도 함께 있었기에 가능한 결정이었다. 현실적으로 가능하지도, 운수종사자에게 유리하지도 않은 제도라는 판단이다.

법인택시 월급제는 '주 40시간' 근로가 강제된다. '택시운송사업의 발전에 관한 법률'에서 근로시간은 주 40시간이 되도록 정해야 한다고 규정된 탓이다. 이런 제약 하에서 법인택시 월급제는 소정근로시간을 주 40시간 이상으로 강제하고, 월 200만원의 고정급을 지급하는 제도로 해석된다. 일반적으로 법인택시는 한 주에 60시간을 운전하면 40시간을 근로한 것으로 간주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서울 이외의 지역에서 주 40시간 일하는 기사는 약 10%가량에 지나지 않는다. 현실과 동떨어진 제도라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같은 이유로 많은 법인택시 기사들이 운전대를 놓았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손님이 떨어져 택배·배달로 옮겨갔다고 알려졌지만, 20·30대도 버티기 어려운 고된 업종임을 감안한다면 고령의 기사들이 옮겨갈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오히려 근로시간과 소득을 경직적으로 통제당해 시장을 떠났다고 해석하는 편이 합리적이다. 사납금제 하에서 상당한 정도의 자율성을 누려오던 운수종사자들이 주 40시간 이상을 일해야 최저임금을 받을 수 있는 구조로 변하다 보니 고된 택시 운전으로 얻는 것보다 고통이 더 크게 느껴졌을 것이다.

여기에 팬데믹으로 인한 수요 감소까지 겹쳐져 2020년부터 2년간 2만6000명의 운수종사자가 시장을 떠났다. 2010년부터 2019년까지 10년간 감소한 운수종사자 수가 약 3만명임에 비춰봤을 때 운수종사자가 '증발'했다는 표현이 적절하다. 문제는 기사가 적을수록 택시회사는 운영이 어려워진다는 점이다. 운수종사자가 떠난 상황에서 수입은 급감했지만, 치러야 하는 고정비용은 그대로인 탓이다. 그 결과는 사납금 인상이다. 그나마 남은 기사들에게 더 많은 수입을 요구할 수밖에 없다. 남은 기사들의 어깨는 더욱 무거워지고 이는 다시 시장을 이탈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사업주와 근로자 모두 주 40시간 근무하면 최저임금 이상을 벌 수 있다는 제도의 취지가 이상적으로 들릴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기사의 고령화도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다. 이미 현재 운수종사자의 절반 가까이가 만 65세 이상이다. 2년 뒤인 2026년에는 그 비율이 절반을 넘게 된다. 월급제는 고사하고 이들에게 주 40시간 이상의 운전을 언제까지 강제할 수 있을지조차 의문이다. 이로 인한 안전 문제는 오롯이 승객에게 전가된다. 전국의 시장 상황이 동일하지 않다는 점도 월급제 전국 시행의 문제다. 최저임금은 산업별, 지역별로 차등될 수 없는 탓에 법인택시 월급제의 취지를 감안한다면 기사 한 명당 최소 500만원 이상의 월 수입이 필요하다. 인구가 수도권에 집중된 우리 현실에서 이러한 수입이 가능한 지역은 거의 없다. 군 지역은 매출 자체가 최저임금을 지급하고 나면 나머지 고정비를 충당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지금 이대로라면 전국에 법인택시 회사는 아주 일부 지역에서만 찾아볼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택시 월급제 개편의 핵심은 스스로 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달성해야 하는 목표를 '강제'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하도록 만드는 구조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유인 중심의 제도 설계가 요구된다. '40시간 이상', '소정근로시간', '최저임금'이 결합되면 운수종사자는 스스로 일할 유인을 상실한다. 일을 열심히 해도, 하지 않아도 기대할 수 있는 소득이 거의 비슷하기 때문이다. 40시간 이상 규정부터 손질해야 하는 이유다. 근로시간의 상한을 규정해 노동을 강제하는 법 규정은 찾아보기 힘들다.

무엇보다 원칙 중심의 설계가 필요하다. 월급제는 최저임금을 지키고,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목적의 제도가 아니다. 택시 산업의 지속 가능한 공급이라는 목적 달성을 위해 근로자의 일할 유인과 회사의 성장유인을 일치시키기 위해 필요한 제도다. 본래 달성하고자 하는 목적 중심의 원칙과 최저임금이라는 규칙을 혼동하면 주객이 전도되고, 규칙 중심의 제도는 필연적으로 경직적이다. 유연하지 못한 제도는 다양한 운행 행태를 보이는 택시산업을 담아낼 수 없다. 언제나 공감받지 못하는 제도는 규제라는 오명을 쓰게 된다는 점을 잊지 않아야 한다. 원칙 중심의 유연한 월급제 설계를 위해 택시산업 이해관계자와 정부·전문가 모두 머리를 맞대야 할 시점이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2024_5대궁궐트레킹
실시간 인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