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기술력을 상징하는 기업인 화웨이가 이번엔 세계 최초로 트리폴드폰(3단 접이식 폴더블폰)을 내놨다. 가격은 한화로 무려 450만원. 이 같은 초고가에도 불구하고 사전 예약량이 500만건을 돌파하는 등 인기몰이 중이다. 하지만 화웨이가 이번에 트리폴드폰을 공개한 건 단순히 매출을 올리기 위해서가 아니다. ‘세계 최초’라는 수식어에 욕심을 낸 것도 있겠지만 이 외에도 여러 전략이 숨어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화웨이의 첫 트리폴드폰 메이트XT는 20일부터 공식 판매에 들어간다. 이날은 애플의 첫 AI(인공지능)폰 아이폰16 판매가 시작되는 날이기도 하다. 화웨이는 앞서 애플이 신제품 발표회를 열었던 지난 9일 메이트XT를 공개하며 애플과의 정면 대결을 예고하기도 했다.
두 제품의 시장 내 포지션이 전혀 다르긴 하지만 같은 날 공개·출시되면서 화웨이는 이미 애플에 대한 시장의 시선을 어느 정도 뺏어오는 등 견제에 성공했다. 블룸버그는 “(화웨이가) 애플이 아이폰16을 출시한 지 불과 몇 시간 만에 트리폴드폰을 공개했다”면서 “이는 적어도 국내(중국) 시장에서는 애플의 신제품이 출시 이후 반짝 인기를 끄는 것조차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신호”라고 평가했다.
다만 가격 진입장벽이 높다. 256GB 제품은 1만9999위안(약 380만원), 512GB는 2만1999위안(약 410만원), 1TB는 2만3999위안(약 450만원)으로 책정됐다. 화웨이가 이 제품을 내놓은 목적이 대량 판매보다는 기술력 과시에 있다고 보는 이유다. 시장조사업체 카날리스의 주자타오 애널리스트는 중국 매체 차이신에 “메이트XT는 판매량을 노리지 않는다. 전체 재고도 많지 않을 것”이라면서 “트리폴드폰 출시를 통해 폴더블 분야 기술력을 입증하고 스마트폰 가격 상한선을 깨트리는 것이 화웨이의 주된 목적”이라고 분석했다.
화웨이가 판매량에 대한 걱정도 하지 않고 과감하게 초고가 제품을 내놓을 수 있었던 것은 프리미엄 시장에서 이미 입지를 잘 다져왔기 때문이다. 메이트XT는 화웨이의 첫 트리폴드폰이지만 폴더블폰으로서는 11번째다. 화웨이는 삼성전자가 세계 최초 폴더블폰인 갤럭시Z폴드를 내놓은 지 9개월 만인 2019년 11월 자사 첫 폴더블폰 메이트X를 내놨다.
화웨이가 폴더블폰 시장에 진출하면서 내세운 게 바로 고가 전략이다. 지난해 9월 출시된 폴더블폰 메이트X5 시리즈 출시가도 1만2999위안(약 244만원)에 달했다. 샤오미 등 다른 중국 브랜드들이 내놓은 폴더블폰 평균 가격 7000~9000위안을 훌쩍 웃돈다. 그럼에도 메이트X5는 공급 부족 현상을 겪는 등 인기를 끌었고, 이는 화웨이가 더 고가인 트리폴드폰을 내놓을 수 있는 기반이 됐다고 시장은 평가한다.
사실 화웨이의 전략은 중국 폴더블폰 시장 전체의 전략이기도 하다. 화웨이가 중국 폴더블폰 시장 성장을 이끌어왔기 때문. 폴더블폰이 막 출시됐던 2019년만 해도 중국 스마트폰 제조사들은 플렉시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힌지, 광학투명접착제(OCR), 편광판 등 폴더블폰 핵심 부품 대부분을 한국·일본 기업들에 의존했다.
하지만 이제는 거의 100% 국산화를 실현했다. 2019년에 플렉시블 OLED 생산 시설 자체가 없었던 중국 1위 디스플레이 업체 BOE(징둥팡)는 작년 4분기에는 업계 1위인 삼성디스플레이까지 추월했다. 시장조사업체 DSCC에 따르면 이 기간 BOE 플렉시블 OLED 시장점유율은 42%로 삼성(36%)을 앞질렀다.
BOE는 화웨이 주요 협력업체 중 한 곳으로 화웨이 폴더블폰은 대부분 BOE 디스플레이로 만들어졌다. 메이트XT 디스플레이도 BOE가 공급한다. 천옌순 BOE 회장은 최근 공개 연설에서 메이트XT를 언급하며 “연구개발에 있어 화웨이와 그 어느 때보다도 긴밀하게 협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업계에서 BOE와 양대 산맥을 이루는 비전옥스(웨이신눠)도 화웨이에 디스플레이를 공급한다. 비전옥스는 안쪽으로 접는 인폴딩과 바깥쪽으로 접는 아웃폴딩 폴더블, 3단 폴더블 디스플레이를 모두 생산하고 있다. 고사양 스마트폰에 적용되는 차세대 OLED 패널 LTPO(저온다결정산화물) 개발에도 성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디스플레이 외에 스마트폰 특수유리 업체 중에서는 란쓰커지가 화웨이 핵심 공급업체다. 중국 경제 매체 21세기경제망에 따르면 란쓰커지는 화웨이 폴더블폰 시리즈의 전면 유리를 공급해 왔으며 메이트XT에는 본체 후면 유리를 공급했다. 란쓰커지는 애플의 중국 내 협력사 중 한 곳이기도 하다.
화웨이가 이처럼 폴더블폰 시장에서 입지를 굳히려는 이유는 중국 스마트폰 시장이 내수 부진 여파로 둔화하고 있지만 폴더블폰 시장은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어서다.
지난해 중국 내 스마트폰 출하량은 2억8900만대로 전년과 비슷한 수준이었지만 폴더블폰은 115% 증가한 700만대 출하됐다. 더구나 현재 중국 스마트폰 시장에서 폴더블폰이 차지하는 비중이 2.4%에 불과하는 점을 감안하면 성장 잠재력은 더 크다. 중국 프리미엄 스마트폰 시장에서 폴더블폰이 차지하는 비중이 2023년 9%에서 2025년에는 20%까지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화웨이가 메이트XT를 출시하면서 트리폴드폰 시장에 도전장을 내미는 중국 브랜드들도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 중국 시장조사업체 시그마인텔의 왕샤오야 애널리스트는 "화웨이 외에 다른 스마트폰 브랜드들도 트리폴드폰 개발 계획을 갖고 있다"면서 "향후 2년 안에 다른 브랜드도 트리폴드폰을 출시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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