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산 저가 철강 제품의 공습이 국내 철강업계와 조선사들 간 갈등으로 번지고 있다. 10년여 만에 맞은 호황에 원자재 가격 인하를 통한 실적 개선을 기대하는 조선업계와 시장 불황에 따른 수익성 악화를 가격 인상으로 해결하려는 철강업계 입장이 크게 엇갈리면서다. 수십 년간 파트너 관계를 맺어온 두 업계 간 신경전이 고조되면서 반덤핑 제소전까지 이어지고 있다.
中 공세에 조선·철강 모두 '곡소리'
22일 조선·철강업계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가 이달 말 중국산 후판 반덤핑 조사 착수 여부를 결정한다. 지난 7월 현대제철이 산업부에 중국 업체들의 저가 후판 수출로 피해를 보고 있다면서 반덤핑 제소를 한 것이 배경이다.
후판은 두께 6㎜ 이상인 두꺼운 철판으로 선박 건조에 주로 사용된다. 반덤핑 제소는 ‘무역구제책’으로 통한다. 외국 수입 물품이 국내 시장 가격보다 현저히 낮은 가격으로 수입돼 국내 산업에 실질적인 피해를 끼칠 때 추진할 수 있다.
그간 국내 철강업계는 중국 철강업체들이 자국 유통가격보다 낮은 가격에 한국으로 제품을 수출해 국내 업체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고 피해를 호소해 왔다. 중국산 후판 수입 가격은 톤당 70만원 선으로 국내 후판 유통가격 대비 10만~20만원 저렴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업계에 따르면 국내 조선 3사가 사용하는 후판 중 80%가량이 국내산이었는데 중국산 제품과 국산 제품의 가격 차이가 커지며 국산 후판 사용 비중이 줄어들고 있다. 이에 철강업계는 중국산 철강에 대한 관세장벽을 높여 국내 유입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특히 최근 중국 조선사 시장 점유율이 70%에 육박하고, 일본 역시 오는 2030년까지 차세대 선박시장 1위를 천명한 만큼 국내 조선사들도 수익성 확보를 통해, 미래 선박시장 선점을 위한 투자를 지속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공급망 리스크도 우려 사항 중 하나다. 반덤핑 조치가 진행될 시 조선업체들이 다양한 공급망 확보가 어려워 후판 공급이 불안정해지고 이로 인해 선박 건조 지연 및 생산 차질 등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통상 자연 재해나 후판 공급 불안정 등으로 선박 생산에 차질을 빚을 경우, 최종 책임은 조선사가 진다.
조선·철강 오래 밀월 끝···후판가 놓고 갈등 고조
상황이 이렇게 되자 오랜 기간 협력관계를 유지해 온 조선업체와 철강업체 분위기가 급속도로 얼어붙었다. 더욱이 이번 중국산 후판 반덤핑 관세 결과가 하반기 후판 가격 협상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칠 것으로 예상돼 갈등이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조선사와 철강사는 올해 하반기 후반 공급가 협상을 진행 중이다. 조선사는 ‘중국산 저가 후판 유입’과 ‘원재료 철광석 가격 하락’ 등을 근거로 가격 인하을 주장하는 반면 철강사는 ‘업황 부진’을 내세워 가격 인상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통상 철강사와 조선사는 1년에 두 차례 후판 가격을 결정하기 위한 협상을 진행한다. 올해 상반기 가격 협상은 두 달 늦어진 7월에야 마무리됐다.
앞서 상반기 합의된 후판 가격은 톤당 90만원 초반으로, 지난해 하반기 90만원 중반대에서 가격이 내려갔다. 이는 철광석 가격 인하와 더불어 중국산 저가 후판 공급 확대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업계는 후판가에 대한 조선·철강업계 입장이 첨예하게 갈리는 만큼 관련 협상 결론이 해를 넘길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후판 가격이 자동차, 제강 등 철강수요산업 전반에 영향을 끼치는 만큼 이번 반덤핑 제소는 물론 하반기 후판 협상 역시 난항이 예상된다”며 “정부 역시 중국의 저가 공세에 조선·철강업계 모두가 위기에 놓여 있어 어느 한쪽 편을 들어주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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