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김건희 리스크'가 정부·여당을 옥죄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야권이 김건희 여사의 '공천개입 의혹'부터 '주가조작 의혹' 등 여러 논란에 대해 국정조사와 특검법 추진 방침을 밝히면서다.
당정은 출구 전략을 모색 중이지만, 여의치 않은 모양새다. 최근 대통령실과 국민의힘 지도부 만찬에서 출구 전략을 논의할 기회가 있었으나, '빈 손'으로 끝나며 적기를 놓쳤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여당 일각에선 윤석열 대통령과 김 여사가 '국민적 눈높이'에 맞는 처신을 해야 한다는 쓴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27일 정치권에 따르면, 윤 대통령을 비롯한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들과 한 대표 및 여당 지도부는 지난 24일 용산에서 만찬 자리를 가졌다. 당시 정치권에선 의료대란 문제부터 김 여사의 공천 개입 의혹 등 논의해야 할 현안이 산적한 상태라, 양측이 생산성 있는 결과물을 내놓길 기대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이날 자리에서 민감한 현안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지 않고, 한 대표가 줄곧 요청한 '윤 대통령과의 독대' 역시 성사되지 않으면서 빈손으로 끝나버렸다.
한동훈 대표는 윤 대통령과의 만찬 이튿날인 지난 25일 "만찬의 성과는 저녁 먹은 것"이라며 "소통의 과정이라고 길게 봐주시면 어떨까"라고 했다.
이어 "일도양단으로 (성과가) 있다 없다 이렇게 말할 게 아니다"라며 "대통령실에서도 중요한 문제에 대해 해법 찾으려는 생각을 하실 것"이라고 밝혔다. 현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했지만, 경색된 당정 관계를 풀어가는 과정이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친한동훈(친한)계 의원들은 같은 날 하나같이 불만을 토로했다. 김종혁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대통령실과 당이 상황에 대한 인식이 서로 다른 것 같다"며 "의료 개혁도 당 입장은 굉장히 심각하다는 것이고, 대통령실은 '개혁이니까 그냥 밀고 가야 한다'라는 입장인 것 같다"고 말했다.
또 "김 여사 의혹도 당에서는 근본적인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생각"이라며 "반면 대통령실에서는 허위 사실이니까 당에서 적극적으로 나서서 막아줘야 한다는 입장이 강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신지호 전략기획부총장 역시 같은 날 채널A 유튜브 방송에 나와 "실제 만찬 분위기는 썰렁했는데 대통령실이 화기애애했다고 해서 화기애애한 것으로 되지는 않을 것 같다"며 "애당초 만찬에서 현안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와 의미 있는 결정을 하기가 힘든 상황이었기 때문에 한 대표가 별도로 독대 요청을 했던 것"이라고 강조했다.
당정이 이처럼 엇박자를 내는 가운데, 민주당은 김 여사 의혹을 집중적으로 파헤치겠다는 입장이다. 황정아 민주당 대변인은 27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 직후 "김 여사와 관련해 매일 새로운 의혹들이 부각되고 있다"며 "당에서는 김 여사가 공천에 개입했을 가능성이 점점 더 짙어지고 있다고 판단 중"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은 김 여사의 각종 의혹을 파헤치기 위한 국정농단 관련 진상규명 TF 또는 조사단을 꾸릴 계획이다. 오는 10월부터 막을 올리는 국정감사에서도 김 여사의 각종 논란을 파고들어 의혹을 규명해내겠단 입장이다.
국민의힘 내부에선 대통령실과 당 지도부에 대한 성토의 목소리가 나온다. 야당이 이처럼 공세를 예고하고 있으나, 당정이 대응을 시작조차 못했기 때문이다.
강득구 민주당 의원은 이날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회 문턱을 넘은 '김건희 특검법'에 대한 수용을 압박하기도 했다.
국민의힘 한 중진 의원은 아주경제에 "용산(대통령실)에서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며 "그것도 아니라면 김 여사 이슈를 덮을 만한 민생 사안 등 다른 주요 현안을 해결해서 유능함을 내보여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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