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디딤돌대출 한도 축소 조치를 연기해달라고 은행권에 요청하면서 금융소비자들과 은행 영업점 일선이 혼란에 빠졌다. 가계대출 증가세 관리에 나선 정부가 좀처럼 갈피를 잡지 못하면서 ‘갈지자 행보’가 계속되자 시장에 잘못된 메시지가 전달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20일 금융권에 따르면 디딤돌대출 관련 규제가 시행을 3일 앞두고 돌연 연기되면서 은행 영업점 일선에 문의가 빗발치고 있다. 관련 조치를 14일부터 미리 시행했다가 접수를 잠정 중단했던 KB국민은행은 지난 14~17일 디딤돌대출을 신청한 고객을 대상으로 다시 신청받기로 했다.
디딤돌대출은 연소득 6000만원(신혼부부는 8500만원) 이하 무주택 서민들이 5억원(신혼부부 6억원) 이하 주택을 살 때 2~3%대 저금리로 빌려주는 정책대출 상품이다. 앞서 은행권은 21일부터 생애최초 주택 매수자의 담보인정비율(LTV)을 80%에서 70%로 축소하는 등 일련의 조치를 통해 디딤돌대출 한도를 축소키로 했다. 그러나 실수요자들이 강하게 반발하면서 여론이 악화하고 정치권이 가세하면서 시행을 3일 앞둔 지난 18일 관련 조치를 유보하기로 했다.
이와 관련해 금융권과 금융소비자들은 정부가 관련 정책을 성급하게 발표해 시장의 혼선과 실수요자 피해를 키웠다고 지적한다. 일각에서는 서민을 위한 정책대출 한도를 갑자기 제한하는 것을 두고 가계대출 증가세를 잡기 위해 애먼 서민들만 잡는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문제는 언제 바뀔지 모르는 대출 정책에 주택 실수요자들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는 점이다. 디딤돌대출 한도 축소 조치가 유예된다는 소식이 알려진 이후 국토교통부는 “중단, 전면 유예, 철회는 사실이 아니다”라며 “조속한 시일 내에 관계기관 협의를 거쳐 실수요자 불편이 최소화되도록 보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금융권 안팎에서는 지금처럼 가계대출 문턱이 높아지고, 주택가격이 불안정할 때 주택·대출 실수요자들이 혼란에 빠지면 가계대출 증가세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은행들이 빗장을 걸어 잠그면 실수요자들이 대출을 받지 못해 주택 매입의 적기를 놓칠 수 있다는 불안감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앞서 금융당국이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산정 시 가산금리를 적용하는 ‘스트레스 DSR’ 확대 시행을 7월에서 9월로 미뤘을 당시에도 가계대출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국내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7월 한 달 동안 7조5975억원 불어난 데 이어 8월에도 8조9115억원 폭증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최근 뚜렷한 목적 의식 없이 가계대출 정책이 수립되는 것 같다”며 “그러다 보니 설익은 규제를 섣불리 발표한 뒤 문제점이 지적되거나 반발이 세면 보류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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