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명을 죽음에 이르게 한 이태원참사 발생 2년여 만에 책임자로 지목된 관계자들에 대한 1심 재판이 일단락됐다. 현장 경찰에게만 유죄가 인정되고 용산구청과 경찰 지휘부 등 윗선은 줄줄이 무죄를 받으면서 책임자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지 않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28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서부지법은 최근 업무상 과실치사상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박희영 용산구청장과 김광호 전 서울경찰청장 등 이태원 참사 당시 '윗선'들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반면 현장 책임자였던 이임재 전 서울 용산경찰서장은 유죄가 인정돼 금고형을 선고받았다. 함께 기소된 송병주 전 용산서 112치안종합상황실장은 금고형 2년을, 박모 전 용산서 112치안종합상황실 팀장은 금고형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이들의 혐의가 참사 당일 이태원 일대에 대규모 인파로 안전사고 발생을 예견할 수 있는데도 사고 방지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는 점에서 같지만 유·무죄에 대해서는 법원 판단이 갈린 것이다. 이태원참사 직후 "서울 치안을 총괄하고 있는 제게 책임이 무겁게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김광호 전 청장은 정작 책임에서 벗어난 것이다. "나는 신이 아니다"고 했던 박희영 구청장의 항변도 받아들여졌다.
일선 현장 경찰들에게만 책임을 묻는 결과가 나오자 "주요 책임자들에게 면죄부를 줬다"는 비판 여론이 빗발쳤다. 이정민 유가족협의회 위원장은 "'문제는 있어 보이는데 죄는 없다'는 게 대체 무슨 말이냐"고 따졌다. 또 다른 유가족은 "법원의 소극적 법 해석으로 참사 책임자에 대한 처벌이 지연됐다"고 토로했다.
현장 경찰과 용산구청 관계자 등이 대조적인 판결을 받게 된 핵심 쟁점은 주의의무위반과 인과관계, 예견가능성이다. 업무상 과실치사상죄는 안전사고 가능성을 예견하고도 주의의무 등 조치를 하지 않아 사람이 죽거나 다쳤을 때 인정되기 때문이다.
먼저 주의의무는 '법령상' 인정돼야 하고 신의칙이나 조리에 의한 것은 인정되지 않는다. 법원은 경찰조직운영법과 경찰관직무집행법은 경찰관의 구체적·직접적 주의의무가 규정돼 있다는 점에서 이임재 전 서장 등에게는 주의의무가 있다고 봤다. 반면 법령 미비로 재난안전법령으로는 박희영 구청장을 비롯한 용산구 관계자들에게 구체적·직접적 주의의무가 도출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인과관계 및 예견가능성 측면에서도 이임재 전 서장 등에 대한 업무상과실은 이태원참사의 직접 원인이 됐고 인관관계도 인정됐지만 용산구청은 구체적·직접적 과실이 없다고 봤다. 또 구청은 사고관련성이 없거나 사고예견이 어렵다는 것이 법원의 설명이다.
법조계는 이번 판결에 대해 "입법불비와 법원의 소극적 판단이 합쳐진 결과"라며 현재 법령상으로는 현장 경찰 '독박 책임'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천주현 형사전문 변호사는 "(구청에도 책임을 물을 수 있으려면) 재난안전법에 구청이 안전대책을 세울 의무, 그것이 구청의 권한범위에 속한다는 점 등 지방자치단체의 의무를 명백히 넣어야 한다"며 "압사사고 신고가 구청으로 들어가지 않았다는 점, 경찰과 소방이 위험징후를 알리지 않았다는 점 등이 구청장 무죄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데 구청이 소방 및 경찰을 보조하는 지위, 사고수습 행정조치 실시 지위에만 머무르게 한 것은 입법불비"라고 지적했다.
책임자를 처벌하기 위해 항소심 법원의 적극적 법령 해석과 검찰의 추가 증거 제시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밝혔다. 천 변호사는 "항소심에서는 목전의 급박한 행정상 장해의 제거 필요성을 따져 구청장이 행정상 즉시강제 처분을 내릴 위치에 있었던 것은 아닌지 새로 따져 검토돼야 한다"며 "김광호 전 청장은 예견가능성에 대한 불입증(증거불충분)이 무죄 판단 근거였다는 점에서 박희영 구청장과 다르다. 재판부는 (김 전 청장이) 보고 수신 즉시 부대 급파를 지시한 것을 유리하게 해석했는데 (항소심에서) 검찰이 추가 증거를 제시한다면 뒤집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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