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준의 Indonesia Story] 역대급 비대한 몸집 프라보워號 군부독재 회귀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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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준 강원대 문화인류학과교수
입력 2024-11-27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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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준 강원대 문화인류학과교수
[김형준 강원대 문화인류학과교수]


지난 10월 20일 프라보워 수비안토(Prabowo Subianto) 인도네시아 대통령 당선자의 취임식이 열렸다. 2009년 부통령 후보, 2014년과 2019년 대통령 후보로 출마했으나 낙선한 바 있는 그는 73세 나이로 임기 5년인 대통령에 취임하게 되었다.
취임사에서 프라보워는 인도네시아 국민을 두려움, 배고픔, 빈곤, 무지, 억압, 그리고 고통에서 해방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했다. 그는 국가 통합 강화, 식량과 에너지 자급 실현, 비동맹 노선 유지라는 비전 역시 제시했다. 보다 구체적으로 그는 8000만여 명의 아이와 학생, 임신부를 대상으로 한 무료 급식 시행, 300만가구 주택 건설, 국방 예산 및 공무원 임금 인상, 원자재 수출 제한 및 광물 자원의 1차 가공 의무화, 신수도의 지속적 건설 등을 거론했고, 이를 위해 연간 8% 경제 성장률 달성을 공언했다.

프라보워의 취임 연설에는 이전 정부와의 정책적 연속성과 강력한 민족주의적 기조가 표출되었다. 하지만 주요 내용 대부분이 대선 과정이나 당선 확정 후 이미 발표되었기에 취임사보다 더 큰 관심을 끈 문제는 내각 인선이었다. 인도네시아 국기의 색상에서 영감을 받아 ‘적백 내각’이라 명명된 새 내각은 조코위 행정부보다 14개 부처가 늘어난 48개 부처로 구성되었다.
우리나라의 행정 부처는 19개, 미국과 중국은 각각 15개와 21개이다. 조코위 정부의 내각조차 그 수가 과도하다는 평가를 받는 상황에서도 프라보워는 자신이 표현하듯 ‘비대한’ 행정부를 선택했다.

내각 확대의 주요 방식은 기존 부처의 세분화였다. 예를 들어 교육문화부를 초중등교육부, 고등교육 및 과학기술부, 문화부로 나누었으며, 법무인권부는 법무부, 인권부, 이주 및 교정부로 분리했다. 이처럼 7개 기존 부처가 분화되어 16개 부로 확대 개편되었다.
세분화는 조정 역할을 하는 부처에도 적용되었다. 정치, 법, 안보 문제를 조정하는 장관은 정치·안보 문제 조정 장관, 법·인권·이주·교정 문제 조정 장관으로 나뉘었다. 인적 자원 및 문화를 담당하던 조정 장관 역시 둘로 쪼개졌다. 여기에 더해 인프라와 지역 발전을 담당하는 조정부와 식량 문제 전담 조정부가 신설되고 두 개의 위원회가 부로 격상되면서 전체적으로 14개 부가 신설되었다.
유례가 없을 정도로 확대된 행정부에 대해 프라보워는 강력한 정부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다문화적이고 다원적이며, 다양한 이해관계가 공존하는 인도네시아 사회를 통합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행정부가 필수적이라고 그는 역설했다. 다양성이 갖는 잠재력 발휘를 위해서는 전문화된 거버넌스가 요구되며, 이는 확대된 정부를 요구한다는 것이다.
학계와 시민단체에서는 비대한 내각 구성의 원인으로 여러 정치 집단의 이해관계를 충족시킬 필요성을 지목했다. 프라보워가 대통령이 되는 과정에서 도움을 받은 집단에 보상을 해야 했다는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신임 장관의 배경이 거론되었다.

먼저 주목할 측면은 조코위 정부에서 장관직을 수행한 인사 다수가 유임되었다는 점이다. 새 내각에 기용된 장관 중 17명이 전임 장관이었는데, 이는 조코위 전 대통령이 프라보워에게 보낸 전폭적 지지에 대한 응답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들 중 상당수가 경제 부처의 수장이라는 사실에서 이들의 선임을 경제 정책 계승 의지의 천명으로도 평가할 수 있다.

대선 과정에서 자신을 지지한 정당에 대한 보은 인사도 이루어졌다. 48명의 장관 중 25명이 정당 소속 인물인데, 이들 대다수는 8개 원내 정당 중 프라보워를 지지한 5개 정당 출신이었다. 나머지 3개 정당 중 ‘번영정의당(PKS)'은 당원이 아닌 민간 전문가를 장관 후보로 추천했기에 ‘인도네시아 투쟁민주당(PDI-P)'과 ‘국민민주당(Nasdem)'만이 장관을 배출하지 않은 셈이었다. 대선 과정에서 자신과 경쟁했음에도 프라보워는 이 두 정당에 각료 추천을 요청했다. 이 제안을 수용하지는 않았지만 이들 정당이 프라보워에 대한 지지 의사를 그 대신 표명했기 때문에 내각 인선을 정치 통합의 수단으로 활용하려던 그의 전략은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내각 인선을 통한 통합 시도는 이슬람 세력과의 관계에서도 나타났다. 조코위 정부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되었던 제2의 이슬람 단체 무함마디야(Muhammadiyah)는 이번 내각에서 2명의 장관과 3명의 차관을 배출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단체 내부에서는 프라보워의 행보에 찬사를 보내는 목소리가 강하게 대두되었다. 같은 상황은 5명의 활동가가 장관직에 오른 이슬람 단체 나흐다툴 울라마(Nahdlatul Ulama)에도 적용되어서 이 단체의 주요 지도자들은 프라보워 정부에 대한 지지를 명확히 했다.
이처럼 증가한 장관 자리를 더 많은 집단에 배분하는 전략을 통해 프라보워는 주요 정치·종교 집단을 만족시켰고, 정치 통합과 정치적 영향력 강화라는 목표를 위한 첫 단추를 성공적으로 끼울 수 있었다.

그러나 확대된 내각에 대해 모두가 지지를 표한 것은 아니며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우려와 비판이 제기되었다. 누구나 쉽게 생각할 수 있지만, 주류 미디어나 정치 집단에서 거의 제기되지 않은 문제점은 비대한 내각이 초래할 고비용과 저효율이었다. 한 시민단체는 신설 부처 유지를 위해 매년 약 20조 루피아(약 1조8000억원)의 비용이 추가되리라 추산했다.
부처 간 업무 분담을 효율화하기 위해서도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리라 예상되었다. 기존 부처가 둘 혹은 셋으로 쪼개졌을 때 각 부처가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2년 이상 소요될 것이라는 평가가 시민단체에 의해 제기되기도 했다. 또한 조정 역할을 하는 장관직이 7개로 증가함에 따라 부처 간 정책 조율에 오히려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요구될 것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행정부 확대를 전문화와 연관 지은 프라보워의 시각 역시 비판받았다. 부패가 만연한 현재 상황에서 장관직 확대는 부패의 확대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조코위 정부에서 6명의 장관이 부패 혐의로 기소되었음을 고려할 때 이러한 문제 제기의 적절성을 부정하기는 쉽지 않다.

비대한 내각이 초래할 고비용·저효율보다 더욱 심각한 측면은 그것이 정치 과정 일반에 미칠 부정적 영향이다. 내각 확대를 통해 프라보워는 자신과 협력하면 그에 상응하는 혜택을 받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명확하게 전달했다. 두 정당이 장관직을 고사하고 정치적 입장을 확실하게 드러내지 않았지만 표면적으로 이들이 지지 의사를 표명했음은 앞으로 의회가 뚜렷한 야당 세력 없이 운영될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한다.
내각 인선을 통해 야당을 여당으로 전환하는 방식은 프라보워 정부 이전에도 활용되었다. 이는 정치적 안정이라는 명분과 입각을 통한 정당 이익의 극대화라는 목적이 야합한 결과였다. 그러나 프라보워 정부에서 이 관행은 더욱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데, 이는 특전사 사령관 출신이라는 그의 배경과 관련된다.

프라보워가 군부를 가장 중요한 국정 파트너로 간주하고 있음은 내각 인선을 통해서도 드러났다. 장관 중 과반수가 군 경력을 가진 인물로 채워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프라보워는 핵심 국정 과제로 국방력 증강을 내세웠으며, 식량과 에너지 자급 역시 군부와 밀접하게 연관될 수 있다. 이는 조코위 정부에서 시행된 식량 생산 증대 프로그램에 군부가 적극 참여했던 사례와 맥락을 같이한다. 당시 이를 주도한 인물이 바로 국방부 장관이던 프라보워였다.
조코위 정부 후반기에 발의된 군 관련 법안 개정안에는 현역 군인의 역할을 민간 영역으로 확대하려는 조항이 포함되었다. 시민사회의 반대에 부딪혀 논의가 진전되지 않았지만 프라보워 정부에서 해당 개정안이 통과될 가능성은 매우 크다. 이는 과거 수하르토 독재 시절 군부가 수행한 ‘이중 역할’을 부활시키고 군부의 정치 참여를 정당화할 개연성을 갖는다.

두 차례 임기를 거치며 조코위 전 대통령은 권위주의적 성향을 강하게 드러냄으로써 민주주의의 정체 혹은 후퇴를 가져왔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럼에도 민간인 출신이라는 조코위의 정체성은 독재 체제로 전환될 가능성을 어느 정도 불식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수하르토의 사위이자 특전사 사령관 출신이라는 프라보워의 정체성은 그를 독재와 쉽게 연결할 수 있도록 한다. 취임 후 군부의 중요성을 거리낌 없이 강조하고, 정치적 시혜를 통해 반대 세력을 통합하려는 그의 모습은 군부에 기반한 권위주의적 독재 체제로 회귀할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증폭시킨다.
30여 년 전 수하르토 독재에 반대했고 그 종식에 앞장섰던 인도네시아 민주투쟁당은 프라보워에 대해 우호적인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내각 인선 과정에서 장관 후보를 추천하지 않았으며 곧 있을 자카르타 주지사 선거에 독자 후보를 내세워 여당 연합과 경쟁하는 모습을 취하고 있기도 하다. 따라서 원내 제1정당의 위상을 확보한 인도네시아 투쟁민주당의 행보는 강력한 시민사회나 비판적 언론이 부재한 상황에서 민주주의의 향방을 결정할 핵심 변수로 작용할 듯하다.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인류학과(학사·석사 수료) ▷호주국립대학(박사) ▷강원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전 강원대 사회과학원 원장 ▷전 한국동남아학회 회장 ▷인도네시아 팟자드자란 대학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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