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목 칼럼] 베트남, 고속철도시대 개막에 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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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목 대구가톨릭대학교 영어학과 교수
입력 2024-12-04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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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목 대구가톨릭대학교 영어학과 교수
[서정목 대구가톨릭대학교 영어학과 교수]


베트남의 남북고속철도 건설계획이 공개되었다. 2027년에 공사가 시작되어 2035년에 완공할 예정이라고 한다. 하노이(Hà Nội)시 응옥호이(Ngọc Hồi)역부터 호치민(Hồ Chí Minh)시 투티엠(Thủ Thiêm)역까지 그 길이는 1541 km에 이르고, 20개 성(省)과 시(市)를 통과한다. 하노이에서 호치민에 도착하는데 5시간 20분이 소요된다고 한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400km에 2시간 30분으로 보면, 거리는 4배인데 소요 시간은 2배 정도이니 정말 빠르다. 속도보다 더 놀라운 것은 중국의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통해 중국의 차관을 제공받은 국가들이 부채의 덫에 빠진 것을 보고, 베트남 정부가 남북고속철도를 건설하는데 외국 자본에 의존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조달할 계획이다. 독립과 자주정신으로 충만한 베트남다운 발상이다.
 
현재 하노이에서 호치민까지 철도는 약 1,700km에 달한다. 나라 자체가 인도차이나반도의 동쪽에 남북으로 약 1,650km로 걸쳐 길게 뻗어 있으니, 철도 또한 이와 같은 모양이다. 베트남의 남북 철도는 프랑스 식민지 시절인 1899년부터 공사가 시작되어 1936년 하노이-사이공 철도가 개통되었다. 베트남이 남북이 분단된 시절, 당연히 철도가 분리되었고, 1975년 이후에 남북 철도는 다시 연결되었다. 베트남 남북 종단철도 노선에는 150여 개에 이르는 기차역이 있다. 이 남북 종단철도를 ‘통일특급열차’가 달리고 있다. 이름하여 ‘Đường sắt Bắc Nam’이다.
 
지금의 남북철도는 하노이에서 출발해서 중부지역의 옛날 참파왕국의 수도인 후에(Huế)와 프랑스 식민지 시절에 만들어진 남중부 지방의 최대 상업도시이자 항구인 다낭(Đà Nẵng), 아름다운 고풍의 호이안(Hội An)을 지나 남부의 관광도시인 냐짱(Nha Trang)을 거치면 호치민에 이른다. 기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때로는 도심지 주택가를 아슬아슬하게 통과하기도 하고, 때로는 끝없이 펼쳐진 해안선을 따라 달리기도 하고 때로는 계곡을 지나치기도 한다. 이렇게 2박3일, 36시간을 달린다. 영국 여행잡지, '론리플래닛(Lonely Planet)'이 베트남의 남북철도가 세계에서 가장 놀라운 "기차여행 8선(8 of the world's most incredible train journeys)" 중의 하나로 발표하기도 하였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다고 했던가? 새로 만들어질 베트남 남북 철도의 전체 구간은 교량 60%, 터널 10%, 지상 30% 등으로 이루어진다고 한다. 그러면 고속철도를 타고서는 지금과 같은 아름다운 자연풍광을 볼 수는 없을듯하다. 우리나라도 KTX가 없던 시절에는 '비둘기', '통일', '무궁화', '새마을'이라는 기차가 있었다. 아마 지금 86세대(八六世代) 이상의 한국인들은 저 기차들을 타 보았을 것이다. 부산에서 서울을 갈라치면, 부산에서 밀양을 지나 대구에서 구미, 김천까지는 조금씩은 경상도 지역 사투리가 다르기는 하지만 큰 차이는 없다. 사람들이 기차에서 경상도 사투리로 왁자지껄 떠들다 소백산맥만 넘어 충북 영동으로 접어들면, 언제 그랬냐는 듯, 경상도 사투리는 사라지고 충청도 사투리로 싹 바뀐다. 그러다 서울에 가까워질수록, 점점 서울말다운 말이 들린다. 이제는 서민들이 이용하는 정감 어린 비둘기 완행열차와 보통의 통일호는 사라졌다. 당시 고급에 속하던 무궁화가 이제는 가장 하위의 기차가 되었고, KTX는, 경부고속도로와 새마을 기차가 만들어 놓은 전국 일일생활권을 반나절 생활권으로 변화시켰다. 반면에 KTX는 지방소멸을 가속화한 원인 중의 하나가 아닐까 한다.
 
남북으로 뻗은 베트남의 북쪽과 남쪽 양단에는 각각 하노이와 호치민이 자리 잡고 있다. 그 머나먼 길이만큼이나 대표적인 두 도시 사람들의 성향, 음식, 날씨는 많은 차이를 보인다. 하노이를 정치 중심의 도시라 하고, 호치민을 경제 중심의 도시라고 부른다. 마치 미국의 워싱턴과 뉴욕, 중국의 북경과 상해와 같다고나 할까!
 
여기 이곳에도 베트남어로 ‘cục bộ địa phương’, 즉, 한자로는 ‘局部地方’, 지역정서, 내지 지역감정에 해당하는 것이 존재한다. 그 지역을 지역답게 하기도 하고, 서로 갈등하기도 한다. 기원전 111년, 한나라가 베트남의 북부지역인 남월(南越)을 정복한 이후, 베트남은 약 천년의 세월을 중국의 지배를 받았다. 중국의 지배에서 벗어난 이후 베트남은 18세기까지 ‘남띠엔(Nam tiến, 南進)’ 정책으로 중남부 참족과 남부의 크메르족이 거주하던 남쪽으로 영토를 확장하여 오늘날의 호치민이 위치한 지역을 차지하게 된다. 그래서 베트남 북부의 사람들은 중국, 한국 사람과 별반 차이가 나지 않는 경우가 많고, 남부지역은 동남아시아 사람과 비슷한 경우가 많다. 하노이는 오랜 기간 중국의 영향을 받으면서 유교의 영향을 받아서 전통적인 유교적인 사고방식과 예를 중시하는 반면, 외국과의 활발한 교류로 호치민은 개방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게 되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베트남은 음식도 지역마다 다르다. 북부지방은 짠맛, 중부는 매운맛, 남부는 단맛이 특징이다. 북부는 중국의 영향을 받았고, 중부는 궁중음식이 발달했고, 남부는 중국과 인도, 프랑스 영향을 모두 받았다.
 
한국보다는 베트남이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인종의 구성에 있어서나 더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베트남은 말 그대로 베트남이 위치한 인도차이나반도의 어원이 보여주듯이, 인도와 중국의 합성어이다. 베트남의 남과 북은 이렇게 차이가 나지만, 지금 36시간이 걸리는 이동 시간이 고속철도의 등장으로 5시간대로 이동이 가능해진다면, 그래서 일일생활권이 된다면, 베트남의 수도와 지방이 어떤 식으로 발전할지 궁금하다. 호치민의 인구는 900만 명이고, 하노이의 인구는 800만 명이다. 한국처럼 서울 집중화가 될지, 양극화가 되고, 고속철도 중간의 다른 도시들이 침체를 맞이할지 지켜볼 일이다. 베트남에는 하노이에 지하철이 등장하였고, 내년에는 호치민에도 지하철이 곧 개통될 예정이다. 이곳 호치민에서 몸소 느끼는 것이지만, 과거보다 교통의식 수준이 개선된 것 같다. 베트남 지인들의 말에 따르면, 아이러니하게도 자동차 대수가 늘어나서 신호등을 더 잘 지키게 된 것이라고 한다. 고속철도, 지하철, 자동차로 이곳 베트남도 점점 삶의 방식과 생활 수준은 향상되고 있다. 이렇게 현대 문명은 바로 과학과 기술의 문명임을 실감하고, 인간의 문명은 차례로 지역을 달리하며 진화한다.



필자 주요 이력

부산대 번역학 박사 - 미국 University of Dayton School of Law 졸업 - 대구가톨릭대 영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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