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 3. 비상계엄 이후 국가비상사태를 극복하는 것은 모든 국민의 염원이다. 소용돌이 치는 상황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가장 기본적인 물음을 수없이 던져보며 스스로 답을 찾아보려고 한다. 우리는 세계 10위권의 경제발전을 이룩해내고 자유민주주의를 실천하는 나라의 국민이다. 이에 걸맞게 대한민국 공동체의 번영과 지속가능성을 위해 지혜를 모으고 이성적으로 살아야 할 것이다. 종교 성인과 철학자뿐 아니라 우리 선현들의 가르침 속에서도 살아가는 법을 배울 수 있다. 그것은 역사문화를 바르게 세우고 도의를 몸에 익히는 것이다.
1993년 2월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가 출범한 이래 재야 시민운동단체들 가운데 일부 단체들은 미래활동의 방향성을 잃고 답보상태에 머물고 있었다. 필자는 당시 문민정부 출범으로 정권의 민주성 내지 민주화에 대한 시비의 소지는 줄어들었기 때문에 환경운동과 교육운동으로의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환경운동이 필요하다고 본 것은 당시 산업화의 부작용으로 하천이 오염되고 대기질이 악화하는 등 공해문제가 심각했기 때문이다. 교육운동은 국가적 역사관이 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공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도의가 땅에 떨어졌기 때문이다.
필자는 현역 시절 방송 탐사보도를 통해 공해추방 캠페인에 열중했었다. 시민운동단체들도 동참해서 공해추방에 대한 시민의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었다. 이에 특정 시민운동단체 지도자에게 앞에 얘기한 두 가지 방향을 얘기하고 미래시민운동의 방향을 정하도록 조언했다. 이 과정에서 환경운동은 시급하고 운동의 효과가 빠르게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교육운동은 시민운동의 최종적이며 최고급 단계로서 절실하지만 환경운동 이후에 검토할 일이라고 덧붙였다. 물론 그 지도자는 환경운동에 열중해 오늘날 환경운동의 모범을 세웠다고 생각한다. 다만 개발과 환경 이슈가 대립될 때 유연한 접근의 필요성은 있다고 본다.
여기서 서론 부분을 길게 설명한 것은 시민운동의 방향성에 대해 간단히 살피기 위한 것이다. 국가적 비상상황이나 현재의 도의 실태, 공론의 수준 등을 고려할 때 이제 역사문화교육운동이 절실하다고 여겨진다. 국가적 비상상황을 살펴보면 민주적 소통 과정이 원활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원인 가운데 하나이다. 현재의 도의 수준은 매일 같이 언론보도에서 보는 것처럼 묻지마 식의 강력범죄가 잇따르고 있다. 공론과정 또한 진실과 사실의 구분 없이 자신이 보고 싶고 믿고 싶은 것만이 진실이자 사실이라고 주장하기 일쑤이다. 지금이 시민운동의 가장 고차원적인 역사문화교육운동의 전개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본다.
다음으로 문화정립과 향수이다. 역사와 문화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다양한 문화 장르 속에서도 특히 역사를 기반으로 하는 문화축제는 공동체 문화의 정수이다. 역사가 빠진 문화축제는 정신이 빠진 것처럼 공허하다. 지난해 가을 익산 마한의 소도제전 재현이나 전주 황룡제·황학제 등은 마한의 역사와 후백제, 조선의 역사자원을 시민단체와 관 등이 문화축제로 승화시키려고 하는 시도이다. 이들 문화축제는 춤과 음악, 시 낭송, 농악놀이 등 다양한 장르로 연출된다. 이 같은 문화축제는 지역공동체를 윤택하게 하고 구성원의 열정을 일깨우는 카타르시스 작용을 한다. 또한 K-pop 발전을 촉진하고, K-한류의 흐름을 지구촌 곳곳에 넘쳐나게 할 것이다.
이제 시민운동단체의 교육운동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교육운동을 주창하는 것은 예로부터의 전통에 기인하는 것이다. 퇴계의 예안향약이나 율곡의 서원향약 등처럼 마을공동체 주민의 도의교육에 초점을 맞추자는 것이다. 향약은 공론을 중시하고 공론으로써 마을공동체의 안녕을 유지하고자 하는 것이다. 주민이 공론에 참여하지 않으면 추방령을 내리고, 공론을 방해하거나 무시할 경우 곤장형에 처하기도 했다. 여기서 논하는 것은 시민단체 중심으로 역사문화 교육을 실시함으로써 도시 전체에 도의교육이 확산되고 인성을 바르게 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는 선현들만의 전유물이 아니고 우리 시대 모두의 의무이자 권리이다.
역사문화교육운동은 이 같이 선험적이고 연역적으로 시작했다. 그러나 역사학의 새로운 영역으로서 ‘공공역사(public history)’에 포함된다. ‘공공역사’ 개념을 처음으로 생각해낸 미국의 로버트 켈리는 “교실 밖에서 실천되는 역사”로 ‘공공역사’ 개념을 정의했다. 역사공장 이하나 공공역사문화연구소 대표가 정리한 내용을 소개하면 “공중을 위한, 공중에 관한, 공중에 의한 역사” 등으로 ‘공공역사’를 설명한다. ‘공공역사’는 지식의 민주화를 지향하며, 역사의 공적 활용 및 이에 대한 비평활동까지 포괄하고 있다. ‘공공역사’는 ‘올바른 역사’의 훈육적 전달이 아니라 역사와 기억의 사회적 소통과 포용에 그 목적이 있다. 그러나 연구실의 역사 전문가와 ‘공공역사’의 관계는 일방적이지 않고 상호적이어야 한다.
지금까지 역사문화교육운동을 살피면 시민의 각성의 필요성에서 출발해 시민의 도의교육으로 귀결된다. 역사관을 정립해서 역사적 지식이나 지혜를 바탕으로 공동체의 안녕과 구성원의 자아실현, 행복추구를 지향하려고 한다. 세계 10위권 경제강국으로서 손색이 없는 역사문화강국으로 서도록 하는 게 본 취지이다. 오늘날 대한민국을 세운 수 많은 엘리트들이 이 운동의 선두에 서기를 권한다.
이춘구 필자 주요 약력
△전 KBS 보도본부 기자△국민연금공단 감사△전 한국감사협회 부회장△전 한러대화(KRD) 언론사회분과위원회 위원△전 전라북도국제교류센터 전문 자문위원△전 한국공공기관감사협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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