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율 칼럼] '내각제에 대한 편견' 이제는 버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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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율 명지대 교수
입력 2025-02-24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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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 대한민국 새판짜기] 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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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율 명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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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대한민국 새판짜기] ⑬

현재 시점으로 보면, 조기 대선이 있을지, 있다면 언제 있을지 알 수 없다. 대통령에 대한 탄핵 여부가 결정돼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일 조기 대선이 있을 것이라고 가정하면, 이번 대선에 바라는 점은 있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이번에야말로 개헌을 약속하고 그 약속을 지켰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개헌을 바라는 이유는, 대한민국 국민 절대다수가 반대하는 비상계엄 사태와 같은 일이 다시는 반복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번 계엄령 사태의 핵심은 ‘대통령의 권한’ 문제와 직결된다. 윤 대통령 측은 비상계엄은 대통령의 ‘고도의 통치 행위’라고 주장한다. 이것이 바로 문제의 핵심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통치’라는 단어가 등장하는 것도 말이 안 되거니와, 이런 주장을 할 수 있는 제도적 문제도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고도의 통치 행위’라는 것은, 대부분의 국무위원들이 반대해도 대통령 혼자의 판단으로도 극단적인 정치 행위가 가능하다는 논리를 성립시키는데,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최고 권력자의 자의적 판단을 막기 위해서라도 제왕적 대통령제를 바꾸는 개헌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그런데 문제는 대통령제를 하면서, 제왕적 대통령 출현을 막을 수 있는가 하는 데 있다. 일각에서는 대통령의 권한을 분산시키면 가능하다는 주장을 편다. 그런데 이런 주장은 권력의 속성을 도외시한 주장이다. 권력의 가장 중요한 속성은 ‘집중’에 있기 때문이다. 권력 집중은 권력의 속성상 피할 수 없다는 말이다. 이런 차원에서 대통령제를 평가하면, 대통령제는 근본적으로 ‘제왕적’일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이는 대통령제의 역사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미국이나 비교적 일찍 독립에 성공한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은, 자신들의 독립을 쟁취한 이후 고민에 빠졌다. 독립을 한 것까지는 매우 좋았지만, 식민지 시기 이전의 권력 구조, 즉 왕정으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했기 때문에, 어떻게 할 줄 몰랐었다는 것이다. 식민지 과정에서 기존의 왕조는 몰락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온 것이 ‘임기가 있는 왕’을 ‘선출’하자는 것이었다. 여기에서 알 수 있는 것은, 대통령제는 왕정을 모델로 만든 권력 구조라는 점이다. 일종의 ‘변형된 왕정’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인데,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대통령은 권력 분립에 입각한 제도이기 때문에, 모든 권력이 집중돼 있는 왕정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주장을 펼 수 있다. 이것도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대통령제하에서의 권력 분립이라는 것이 진짜 권력을 나눈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는 데 문제가 있다.

우리나라만 보더라도 그렇다. 철저한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는 사법부를 두고도 말이 많고, 사법부의 수장이 어떤 정권하에서 임명된 사람인지를 두고 사법부의 성향을 따지는 것을 보면, 대통령제하에서의 권력 분립이라는 것이, 진짜 권력을 나눈 것으로 볼 수 있는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또한, 미국 대통령 이름은 모두 알아도 미국 대법원장 이름을 아는 우리 국민은 거의 없음을 보더라도, 권력 분립이 진짜 대등한 권력의 분립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그래서 독일의 헌법학자들은 일찍부터 사법부와 같은 권력은, ‘추상적인 권력’이라고 정의한 것이다. 결국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존재는 대통령제의 태생적 속성에서 비롯되는 존재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일부에서는, 미국 대통령은 우리나라 대통령보다 제왕적 성격이 덜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런 주장에도 쉽게 동의하기 어렵다. 현재 트럼프 대통령의 행태를 보면, 미국 대통령은 세계를 뒤흔들어 놓을 정도의 제왕적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 대통령이 상대적으로 제왕적 요소가 덜하다고 볼 수도 있는데, 그 이유는 미국은 우리와는 달리 연방제를 실시하기 때문이다. 미국이나 독일과 같이 연방제를 실시하고 동시에 양원제를 실시하면, 권력이 일정 수준 중앙과 지방에 분산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 대통령들은 상대적으로 덜 제왕적으로 ‘보인다’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트럼프는 제왕적 권력을 마구 휘두르고 있는데, 이는 어떤 제도적 장치도 대통령의 제왕적 권력을 제어하기는 어려울 뿐 아니라,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대통령제하에서의 ‘제왕’의 출현은 필연적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이런 차원에서 지적할 수 있는 것은, 현재 우리나라에서 나오고 있는 대통령의 권력을 총리 등과 나누자는 주장은 그냥 주장으로 머물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대통령의 권력을 총리와 나누자는 주장은, 총리는 내치에 전념하고 대통령은 외치나 국방에 전념하게 하자는 것인데, 얼핏 보면 설득력 있어 보이지만, 이런 권력 분할이 현실에서는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우리나라가 외국과 FTA를 체결하려고 한다면, 이는 외치의 영역에 속하는 것일까? 아니면 내치에 속하는 것일까? 이런 문제에 쉽게 답하기란 불가능하다. 더구나 지금과 같은 세계화 시대에는 이런 식의 권력의 구분은 더더욱 불가능하다. 이렇듯 구분이 모호한 상태에서 대통령의 권력 분산을 시도하면, 또 다른 정국 불안 요소가 발생할 수 있다. 지금 대통령과 총리의 권한을 ‘이론적’으로 분리하고 있는 프랑스의 경우를 보더라도 그렇다. 과거 총리와 대통령이 각각 다른 정당 소속이었을 경우, 두 사람의 권력 투쟁으로 프랑스는 상당한 혼란에 빠졌었다. 현재는 이런 불안이 발생하지는 않는데, 대선 직후에 하원 선거가 있기 때문이다. 즉, 대선에서 승리한 정당이 의회의 다수당이 될 가능성을 매우 높였다는 것인데, 이럴 경우, 대통령과 총리는 거의 같은 정당 소속이 된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혼란은 발생하지 않겠지만, 대통령과 총리의 권력 분산은 의미가 없게 된다. 즉, 총리가 대통령에 종속될 수밖에 없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 국민이 현재 프랑스 대통령의 이름은 알지만 총리는 누구인지 모른다는 것을 보더라도, 이원집정부제 역시 변형된 대통령제임을 알 수 있다. 결국, 대통령제를 실시하면서 제왕적 대통령의 출현을 막겠다고 말하는 것은,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들 자신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런 차원에서 4년 중임 대통령제를 개헌안으로 제시하는 것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8년짜리 제왕’을 뽑는 결과가 도출될 확률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들을 종합하면, 현재 시점에서 제왕적 권력자 출현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내각제밖에 없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내각제는 의회의 다수당이 행정부를 꾸리게 돼 있기 때문에, 대통령제와 같이 명목상의 ‘권력 분립’에 기초한 권력구조가 아닌, ‘권력 융합’에 근거한 권력 구조다. 권력은 나눠야 부작용이 덜할 텐데, 권력을 융합하는 권력구조가 무슨 민주주의냐고 주장할 수도 있다. 하지만 권력의 속성이 ‘집중’되는 것이라고 할 때, 집중될 수밖에 없는 권력을 말로만 분산시킬 것이 아니라, 권력의 속성을 인정하면서도, 대신 언제라도 권력을 빼앗을 수 있다는 두려움을 주는 것이 권력 전횡을 막는 데 합리적이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 현재 우리 상황에서 볼 수 있듯이 대통령을 하야시키기 위해서는 상당한 혼란이 생기는데, 이는 대통령의 임기가 ‘헌법’에 보장돼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각제 하의 수상의 임기는 ‘헌법 사안’이 아니라 ‘법률 사안’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임기 중간에 총선을 실시해 권력을 바꿀 수 있다. 만일 자신들이 권력을 내놓기 싫으면, 여론에 대한 반응성을 높여야 한다. 여론을 충분히 국정에 반영해야,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말이다. 즉 ‘통치’ 혹은 ‘계몽’ 운운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우리도 이제는 내각제 도입을 깊이 고민해야 한다. 여기서 반드시 고려해야 할 점은, 왜 유럽의 절대다수 국가가 내각제를 권력 구조로 가지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이제는 내각제에 대한 편견을 버려야 한다. 만일 국회의원들이 싫어서, 이들이 행정부를 꾸리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나라 대통령제하에서도 다수 의원들이 장관직을 수행하고 있음을 상기해야 한다. 또한 이번에 ‘사고 친’ 대통령은 국회의원을 한 적이 한 번도 없음을 기억해야 한다.

개헌은 항상 대선에서 상대적으로 약한 후보가 내놓는 주장이다. 강한 쪽은 개헌을 주장할 이유가 없다. 내가 막강한 권력을 잡게 생겼는데, 굳이 권력을 약화시킬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국민들이 생각해야 할 점은, 이들 후보들의 말에 끌려다니지 말고, 계엄 당시 받은 충격을 항상 기억하며 개헌의 절박성을 적극 주장해야 하는 것이다. 여론의 압력을 통해서만 개헌을 이룰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필자 주요 이력 

▷프라이부르크대학교 정치학 박사 ▷한국국제정치학회 부회장 ▷전 통일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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