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수 칼럼] '승자독식' 정치문화 …기본틀을 바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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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
입력 2025-04-0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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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민국 새판 짜기 2] ④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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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새판 짜기 2] ④
 
12·3 비상계엄과 12·14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 국회 통과로 시작된 정국의 혼란과 국정 공백이 지난 주말 헌법재판소가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 인용 결정을 내림으로써 일단락되었다. 그러나 상처 입은 민심을 달래고, 갈등을 봉합하는 것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이미 심각했던 진영 갈등은 지난 4개월 동안 극에 이르렀고, 탄핵 찬반의 집회⋅시위는 갈수록 날카로워졌다. 헌법재판소의 절차 진행에 대해 많은 논란이 있었고, 국회는 대통령에 이어서 한덕수 국무총리까지 탄핵소추하여 최상목 부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이어받으며 정국의 혼란이 극심해졌다.
윤 대통령이 파면됨으로써 새로운 국면을 맞았지만, 노무현⋅박근혜 대통령 당시와는 달리 국민적 갈등과 대립을 해소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정치적 대화와 타협이 실종된 여야 관계를 비롯하여, 국민들 사이에도 갈등의 골이 깊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를 근본적으로 해소하기 위해서는 장기간의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지만, 눈앞의 조기 대선 국면이 오히려 갈등을 부채질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점은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라는 요건 때문에 사실상 불가능할 것으로 생각했던 대통령 탄핵소추가 벌써 3번일 뿐만 아니라, 점차 그 주기가 짧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기각되었고, 2017년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인용되었다. 그리고 2025년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인용되었다. 이런 추이라면 다음 대통령 탄핵소추는 4~5년 후가 될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진영 갈등이 극단화되고 있다는 점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대통령 탄핵소추로 인한 국정의 혼란과 공백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대통령을 잘 뽑는 것도 중요하지만, 진영 갈등의 극단화 원인을 확인하고, 이를 해소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가장 큰 원인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은 제왕적 대통령과 제왕적 국회의 충돌, 그리고 이를 부채질하는 승자독식의 정치문화다.
민주화 직후에는 오히려 여야의 대화와 타협이 적지 않았다. 특히 민주화 과정의 동지였던 김영삼과 김대중 사이에는 공감대가 있었고, 그것이 여야의 극단적 대립을 막고, 당시 망국적이라고까지 평가되던 영호남 갈등을 완화하는 힘으로 작용하였다. 그런데 최근 10년간 진영 갈등의 극단화는 과거의 영호남 갈등을 넘어서고 있다.
 
진영 갈등이 보수와 진보라는 순수한 이념 갈등이라고 믿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진영 갈등의 본질은 집권 경쟁이라고 할 수 있으며, 승자독식의 정치문화 속에서 집권에 대한 욕구는 날로 커지고 있어서 진영 갈등도 극단화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조기 대선을 치르고, 새로운 대통령이 당선된다고 해서 진영 갈등이 완화될까? 대한민국의 기본틀이 바뀌지 않는다면 결국 진영 갈등은 더욱 심해질 것이고, 윤 대통령의 탄핵 찬반에서 형성된 상호 불신은 계속 대한민국의 안정과 발전을 저해할 것이다. 이런 문제들을 근본적으로 해소하기 위해서는 대한민국의 기본틀을 바꾸는 헌법 개정, 대한민국의 새 틀 짜기가 불가피하다.
그동안 개헌은 절박한 문제가 아닌,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선택사항으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이제는 더 미룰 수 없는 가장 시급한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 이대로라면 대한민국은 선진국에 진입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중진국으로 다시 미끄러질 위험성이 매우 높다. 곳곳에서 위기의 징후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
 
21세기가 시작되고 사반세기가 지났다. 글로벌 경쟁은 날로 치열해지고 있으며, 미국과 같은 초강대국조차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당선될 수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초기부터 관세를 앞세워 세계를 압박하고 있는데, 우리는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가?
국내 경제의 어려움은 접어 두더라도, 국익을 위해 힘을 모아야 할 여야 정치권은 집권 경쟁에만 몰두하고, 이를 위한 도구로 진영 갈등을 부채질하고 있는 것 아닌가? 이제부터라도 달라져야 한다. 국익을 위해서는 여야가 갈등과 대립이 아닌, 한 팀이 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럴 때 비로소 대한민국의 미래에 희망이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개헌을 통해 대한민국의 새 틀을 짜기 위해서는 제왕적 대통령도, 제왕적 국회도 없어야 하며, 진정한 분권과 협치가 뿌리내리도록 해야 한다. 제왕적 대통령은 없다는 주장도 있고, 제왕적 국회에 대해서도 그렇다. 하지만, 삼권분립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대통령이나 국회의 과도한 권한 때문이라면 이것이 제왕적 대통령, 제왕적 국회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대표적인 예로 대통령 중심의 사법부 코드인사, 그리고 국회의 탄핵소추 남발과 예산안의 과도한 삭감을 들 수 있다. 대통령이 사법 수뇌부에 대한 인사권을 앞세워 사법의 정치적 편향성을 낳고, 심지어 대통령이 임명한 대법원장까지 동조하여 특정 성향의 판사들을 우대하면 어떤 문제들이 나타나는지 국민들이 지켜보았다.
그 결과가 극심한 사법 불신이고, 윤 대통령 탄핵심판이나 이재명 대표 판결에 대한 국민의 불신으로 나타나고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사법 수뇌부가 바뀔 뿐만 아니라 사법 정책이 바뀌는 상황에서 재판의 공정성과 중립성이 크게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상대를 죽여야 내가 산다는 식의 극단적 정치투쟁은 민주주의의 본질과 맞지 않는다. 내부에서부터 독재화된 정당은 결국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위협하게 될 것이다. 이제는 어떻게 대화와 타협의 민주정치를 복원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말로만 상생할 것이 아니라, 서로를 인정하는 가운데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고민이 공유되어야 한다. 서로 발목잡기 경쟁을 할 것이 아니라, 상대의 장점을 인정하는 가운데 더 잘하기 위한 선의의 경쟁을 추구해야 한다. 상대를 악(惡)으로 몰아서 몰락시켜야 내가 집권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현명한 판단을 믿어야 한다.
대한민국의 미래는 주권자인 국민의 판단에 있다. 다만, 국민들이 모든 정당, 모든 후보자를 불신하는 최악의 상황은 정치권의 책임이며, 이런 상황은 막아야 한다. 눈앞으로 다가온 조기 대선에서 가장 강조되어야 할 점이다.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비상임위원 ▷경찰청 인권위원회 위원장 ▷전 국회 개헌특위·정개특위 등 자문위원 ▷전 대법원 사법정책연구원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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