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가 고민한 이유' 결정문 메시지 "분열 넘어 헌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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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준 기자
입력 2025-04-06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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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윗줄 왼쪽부터 이미선 김형두 정형식 조한창아랫줄 왼쪽부터 정정미 김복형 정계선 헌재 재판관이 이날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윤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에 입장해 있다 사진연합뉴스 사진공동취재단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윗줄 왼쪽부터), 이미선, 김형두, 정형식, 조한창(아랫줄 왼쪽부터), 정정미, 김복형, 정계선 헌재 재판관이 이날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윤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에 입장해 있다. [사진=연합뉴스, 사진공동취재단]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파면 결정을 선고하면서 낭독한 결정문 ‘결론’ 부분은, 당초 초안에 없던 내용을 재판관들의 뜻에 따라 추가로 작성한 것으로 6일 확인됐다. 헌재는 이번 탄핵심판의 결론에 헌법 제1조와 전문(前文)의 표현을 차용해, 법리 판단을 넘어 통합과 헌정 질서 회복의 메시지를 전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헌재 관계자들과 법조계에 따르면, 재판관들은 전원일치로 파면 결정을 내리기로 합의한 이후, 기존 결정문에 더해 결론 부분을 추가로 집필할 것을 헌법연구관 태스크포스(TF)에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실관계 인정과 법률 위반, 중대성 판단 등의 논리가 담긴 본문이 먼저 완성된 뒤였다.

추가 결론은 재판관들의 수차례 평의와 문구 수정을 거쳐 최종 확정됐고, 이는 선고 당일인 지난 4일 아침까지도 조율이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결정문 마지막 5쪽에 이르는 이 결론은, 일반적으로 3~4줄로 그치는 기존 탄핵심판 결론 형식과 비교해도 매우 이례적이다.

노 전 대통령 탄핵은 결국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기각됐고, 박 전 대통령 탄핵은 ‘헌법 수호의지 결여’를 근거로 간결하게 인용됐다. 반면 윤 전 대통령에 대한 결정문은 헌정사적 의미와 철학적 메시지를 전면에 내세운 선언문에 가까운 형식을 취했다.

재판관들 사이에서는 결정문이 “일상적인 판결문이 아니다”라는 공감대가 형성됐고, 민주주의 원리와 대통령의 헌법상 책무를 국민에게 직접 설명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힘을 얻었다. 정치적 대립이 ‘심리적 내전’ 수준에 이르렀다는 평가가 나오던 시점에서, 헌재는 사법적 판결을 넘는 헌정적 메시지를 선택한 것이다.

결정문의 도입부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헌법 제1조 제1항 문구로 시작된다. 그리고 마지막 문장에는 “민주공화국의 주권자인 대한국민의 신임을 중대하게 배반했다”는 표현으로 마무리된다. 앞뒤 문장에 각각 헌법 본문과 전문에서 가져온 문장을 배치한 ‘수미상관 구조’를 통해 헌정 질서의 상징성과 의미를 강조한 셈이다. 이는 헌재가 단지 한 정치인의 책임만을 따진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헌정질서 전체를 다시 세우는 선언적 의미를 부여하려 했음을 보여준다.

헌재는 결론부에서 “민주주의는 자율적 이성에 대한 신뢰와, 대등한 동료 시민 간의 존중과 박애를 바탕으로 하는 협력적 의사결정을 본질로 한다”며, 통합진보당 해산 사건 결정문에서 인용한 민주주의의 본질을 재차 확인했다.

재판관들은 윤 전 대통령이 겪은 국정 마비 상황을 부인하지 않으면서도 “그 책임을 특정 세력에만 돌릴 수 없으며, 해법 역시 민주주의 원리 안에서 찾아야 했다”고 지적했다. 헌재는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통해 병력을 동원해 국회와의 대립을 타개하려 한 점을 들어 “민주정치의 전제를 허무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헌재는 이어 “피청구인은 국가긴급권 남용의 역사를 재현해 국민을 충격에 빠트리고 사회·경제·정치·외교에 혼란을 초래했다”며, “국민 전체에 대한 통합의 책무를 위반했다”고 밝혔다. 최종 결론으로는 “헌법과 법률을 위배해 헌법수호의 책무를 저버리고 민주공화국의 주권자인 대한국민의 신임을 중대하게 배반했다. 그러므로 피청구인을 대통령직에서 파면한다”고 선언했다.

헌법 전문에 나오는 ‘대한국민’이라는 표현은 일상적인 용어가 아니라는 의견도 나왔지만, 헌법 문언을 그대로 사용하자는 재판관들의 논의 끝에 채택된 것으로 알려졌다.

문형배 헌재소장 권한대행이 낭독한 약 7200자 분량의 선고 요지에는 ‘민주’라는 단어가 9회, ‘국민’은 13회 등장했다. 결정문 자체가 하나의 헌법적 선언이자, 사회 통합을 향한 촉구의 메시지였다는 점에서 헌정사에 남을 판결문으로 평가된다.

<2024헌나8 대통령(윤석열) 탄핵사건 결정문 중 결론부 전문>

11. 결론

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헌법 제1조 제1항). 
민주주의는, 개인의 자율적 이성을 신뢰하고 모든 정치적 견해들이 각각 상대적 진리성과 합리성을 지닌다고 전제하는 다원적 세계관에 입각한 것으로서, 대등한 동료시민들 간의 존중과 박애에 기초한 자율적이고 협력적인 공적 의사결정을 본질로 한다(헌재 2014. 12. 19. 2013헌다1 참조).
피청구인이 취임한 이래, 국회의 다수의석을 차지한 야당이 일방적으로 국회의 권한을 행사하는 일이 거듭되었고, 이는 피청구인을 수반으로 하는 정부와 국회 사이에 상당한 마찰을 가져왔다. 피청구인이 대통령에 취임하여 이 사건 계엄을 선포하기까지 2년 7개월도 안 되는 기간 동안 22건의 탄핵소추안이 발의되었다. 야당이 주도한 이례적으로 많은 탄핵소추로 인하여 여러 고위공직자의 권한행사가 탄핵심판 중 정지되었다. 국회의 예산안 심사도 과거에는 감액이 있으면 그 범위에서 증액에 대해서도 심사하여 반영되어 왔으나, 헌정 사상 최초로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야당 단독으로 증액 없이 감액에 대해서만 의결을 하였다. 특히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대통령비서실, 국가안보실, 경찰청의 특수활동비, 검찰과 감사원의 특수활동비 및 특정업무경비 예산의 전액을 각 감액하는 의결을 하였는데, 이 가운데는 검찰의 국민생활침해범죄 수사, 사회적 약자 대상 범죄 수사, 마약 수사, 사회공정성 저해사범 수사, 공공 수사 등 수사 지원 관련 예산이 포함되어 있었다. 피청구인이 수립한 주요 정책들은 야당의 반대로 시행될 수 없었고, 야당은 정부가 반대하는 법률안들을 일방적으로 통과시켜 피청구인의 재의 요구와 재의에서 부결된 법률안의 재발의 및 의결이 반복되는 상황이 발생하였다. 그 과정에서 피청구인은 행정부의 수반이자 국가원수로서 야당의 전횡으로 국정이 마비되고 국익이 현저히 저해되어 가고 있다고 인식하여 이를 어떻게든 타개하여야만 한다는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게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 사건 계엄 선포 및 그에 수반한 조치들은 국정 최고책임자로서 피청구인이 가지게 된 이러한 인식과 책임감에 바탕을 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피청구인이 야당이 중심이 된 국회의 권한행사에 관하여 권력의 남용이라거나 국정 마비를 초래하는 행위라고 판단한 것은 그것이 객관적 현실에 부합하는지 여부나 국민 다수의 지지를 받고 있는지 여부를 떠나 정치적으로 존중되어야 한다.
다만, 피청구인 내지 정부와 국회 사이의 이와 같은 대립은 일방의 책임에 속한다고 보기는 어려우며, 이는 민주주의 원리에 따라 조율되고 해소되어야 할 정치의 문제이다. 이에 관한 정치적 견해의 표명이나 공적인 의사결정은 어디까지나 헌법상 보장되는 민주주의의 본질과 조화될 수 있는 범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나. 피청구인은 야당이 다수의석을 차지한 제22대 국회와의 대립 상황을 병력을 동원하여 타개하기 위하여 이 사건 계엄을 선포하였다. 
민주국가의 국민 각자는 서로를 공동체의 대등한 동료로 존중하고 자신의 의견이 옳다고 믿는 만큼 타인의 의견에도 동등한 가치가 부여될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헌재 2014. 12. 19. 2013헌다1 참조). 
국회는 당파의 이익이 아닌 국민 전체의 이익을 위하여야 한다는 점에서 소수의견을 존중하고, 정부와의 관계에서도 관용과 자제를 전제로 한 대화와 타협을 통하여 결론을 도출하도록 노력하였어야 한다. 피청구인 역시 국민의 대표인 국회를 헌법이 정한 권한배분질서에 따른 협치의 대상으로 존중하였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청구인은 국회를 배제의 대상으로 삼았는데, 이는 민주정치의 전제를 허무는 것으로 민주주의와 조화된다고 보기 어렵다. 

다. 우리 헌법은 기본적 인권의 보장, 국가권력의 헌법 및 법률 기속, 권력분립원칙, 복수정당 제도 등 국가권력이나 다수의 정치적 횡포를 바로잡아 민주주의를 보호할 자정 장치를 마련하고 있으므로, 피청구인으로서는 야당이 중심이 된 국회의 권한행사가 다수의 횡포라고 판단했더라도 헌법이 예정한 자구책을 통해 견제와 균형이 실현될 수 있도록 하였어야 한다.
우리 헌법은 대통령제에서 대통령의 권력 남용을 우려하여 대통령의 국회해산권을 규정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임기의 차이 등으로 인하여 대통령선거와 국회의원선거가 일정한 간격을 두고 치러짐에 따라 대통령으로서는 임기 중에 국회를 새롭게 구성하는, 즉, 국회해산과 마찬가지의 효과를 거둘 기회를 갖는 경우가 있다. 피청구인의 경우도 자신의 취임으로부터 약 2년 후에 치러진 제22대 국회의원선거에서 그와 같은 기회를 가졌다. 피청구인에게는, 야당의 전횡을 바로잡고 피청구인이 국정을 주도하여 책임정치를 실현할 수 있도록 국민을 설득할 2년에 가까운 시간이 있었다. 그 결과가 피청구인의 의도에 부합하지 않았고 피청구인이 느끼는 위기의식이나 책임감 내지 압박감이 막중하였다고 하여, 헌법이 예정한 경로를 벗어나 야당이나 야당을 지지한 국민의 의사를 배제하려는 시도를 하여서는 안 되었다. 
피청구인은 선거를 통해 나타난 국민의 의사를 겸허히 수용하고 보다 적극적인 대화와 타협에 나섬으로써 헌법이 예정한 권력분립원칙에 따를 수 있었다. 현행의 권력구조가 견제와 균형, 협치를 실현하기에 충분하지 않고, 국회의 반대로 인하여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을 실현할 수 없으며, 선거제도나 관리에 허점이 있다고 판단하였다면, 헌법개정안을 발의하거나(헌법 제128조),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을 국민투표에 붙이거나(헌법 제72조), 정부를 통해 법률안을 제출하는 등(헌법 제52조), 권력구조나 제도 개선을 설득할 수 있었다. 설령 야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우리 사회의 민주적 기본질서에 대하여 실질적인 해악을 끼칠 수 있는 구체적 위험성을 초래하는 데 이르렀다고 판단하였더라도, 정부의 비판자로서 야당의 존립과 활동을 특별히 보장하고자 하는 헌법제정자의 규범적 의지를 준수하는 범위에서(헌재 2014. 12. 19. 2013헌다1 참조) 헌법재판소에 정당의 해산을 제소할 것인지를 검토할 수 있었다(헌법 제8조 제4항).
그러나 피청구인은 헌법과 법률이 정한 계엄 선포의 실체적 요건이 충족되지 않았음에도 절차를 준수하지 않은 채 계엄을 선포함으로써 부당하게 군경을 동원하여 국회 등 헌법기관의 권한을 훼손하고, 정당활동의 자유와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광범위하게 침해하였다. 이는 국가권력의 헌법과 법률에의 기속을 위반한 것일 뿐 아니라, 기본적 인권의 보장, 권력분립원칙과 복수정당 제도 등 우리 헌법이 설계한 민주주의의 자정 장치 전반을 위협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피청구인이 이 사건 계엄의 목적이라 주장하는 ‘야당의 전횡에 관한 대국민 호소’나 ‘국가 정상화’의 의도가 진실이라고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민주주의에 헤아릴 수 없는 해악을 가한 것이라 볼 수밖에 없다. 

라. 민주주의는 자정 장치가 정상적으로 기능하고 그에 관한 제도적 신뢰가 존재하는 한, 갈등과 긴장을 극복하고 최선의 대응책을 발견하는 데 뛰어난 적응력을 갖춘 정치체제이다. 피청구인은 현재의 정치상황이 심각한 국익 훼손을 발생시키고 있다고 판단하였더라도, 헌법과 법률이 예정한 민주적 절차와 방법에 따라 그에 맞섰어야 한다. 그러나 피청구인은 국가긴급권 남용의 역사를 재현하여 국민을 충격에 빠트리고, 사회․경제․정치․외교 전 분야에 혼란을 야기하였다. 국민 모두의 대통령으로서 자신을 지지하는 국민의 범위를 초월하여 국민 전체에 대하여 봉사함으로써 사회공동체를 통합시켜야 할 책무를 위반하였다.
헌법과 법률을 위배하여, 헌법수호의 책무를 저버리고 민주공화국의 주권자인 대한국민의 신임을 중대하게 배반하였다.
그러므로 피청구인을 대통령직에서 파면한다. 이 결정은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에 따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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