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가 국정과제인 ‘디지털 플랫폼 정부’ 정책에 맞춰 국가·공공기관 정보시스템 클라우드 전환·이용 계획을 새로 짠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했던 공공 주도의 클라우드 전환 정책을 사실상 폐기하고 민간 기업 참여를 독려하는 방식으로 클라우드 전환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계획도 보수적인 국가 재정 기조에 용두사미로 전락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8일 정부는 행정안전부가 총괄하고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NIA)이 주관하는 '디지털 정부 기반 업무프로세스재설계(BPR)·정보화전략계획(ISP)’ 사업 수행 업체 선정 절차를 밟고 있다. 이달 초 사업 제안요청서를 공고했고 곧 제안요청 설명회를 오프라인으로 진행한다. 입찰을 거쳐 선정된 업체는 5개월간 사업을 수행하며 관계·협조 기관, 전문가 자문단과 함께 △디지털 정부 서비스 개발·운영 방안 △법제·예산·인사·조직·문화·기술 등 총체적 관점에서 공공 정보화사업 추진 방식 개선 방안 △목표 시스템 설계와 통합 이행 계획 등 주요 과제·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사업 수행 업체는 특히 IT 인프라 영역에서 외국 공공부문 민간 클라우드 이용 현황과 관련 기술 적용 효과를 분석하고 국내 실정에 맞는 클라우드 전환 방안을 도출해야 한다. 외견상 새로운 사업을 추진하기 전에 공공기관 시스템을 사전에 분류·점검하는 것이 주요 목적이다.
하지만 새로운 사업이 문재인 정부에서 추진한 범부처 공공 클라우드 전환 계획을 사실상 백지화하기 위한 사전 작업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석열 정부 출범 뒤 관련 예산이 크게 삭감됐고 이 사업 주무 부처인 행안부 역시 사업 추진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어서다.
범부처 공공 클라우드 전환은 문재인 정부 때 행안부 주도로 시작됐다. 행안부는 2021년 7월 ‘행정·공공기관 정보자원 클라우드 전환·통합 추진 계획’을 발표했다. 2025년까지 5년간 예산 8600억원 규모를 투입해 모든 공공 정보시스템을 클라우드로 전환하겠다는 구상을 담았다. 그런데 작년 5월 ‘건전 재정’ 기조를 내세운 윤석열 정부가 출범했고 전 정부에서 시작한 주요 국책 사업 예산을 손질했다. 올해 공공 클라우드 전환 사업 예산은 당초 계획 대비 5분의 1 미만 수준(1750억→300억원대)으로 삭감돼 핵심 동력을 잃었다.
주무 부처인 행안부도 당초 계획을 추진할 의지를 접었다. 계획을 발표하고 만 2년이 지났지만 후속 조치에서 손을 뗐다. 유관 기관, 민간기업과 클라우드 전환 방향을 조율하기 위해 개최한 ‘공공부문 클라우드 민간협의회’는 2022년 2월 첫 회의가 곧 마지막이었고 그나마 클라우드 전환에 대한 견해차가 크다는 사실만 확인했다. 행안부는 2022년 업무보고에 정부 역량 강화를 위한 디지털 혁신 방안 중 하나로 공공 클라우드 전환 계획을 명시했지만 현 정부 출범 이후 대통령 업무보고와 2023년 업무보고에는 관련 내용을 뺐다.
현 정부의 공공 클라우드 전환 계획은 기존 ‘행안부 주도, 2025년 전환 완료’ 목표에서 ‘각 부처 자율, 2030년까지 전환 완료’로 바뀐 것으로 알려졌다. 클라우드 업체들은 혁신 기술 분야에서 ‘산업 성장 마중물’ 역할을 해야 할 정부가 보수적인 예산 집행 기조를 유지하려는 분위기에 유감을 표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공공 사업에 참여한 클라우드 업체들은 올해 물량이 줄어 상황이 좋지 않고 내년에도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한다”며 “거창한 계획을 세워 놓고 매번 실행하지 못한 채 정권이 바뀌어 버리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이번 디지털 정부 기반 전면 재설계 BPR·ISP 사업 제안요청 내용에 대해 “(클라우드 활용을 가로막는) 공공 정보화 사업 추진과 예산 집행 관련 법제 개선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는 점은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이 사업을 통해 (차세대 범정부 공공 클라우드 전환) 계획을 마련하고 필요한 예산도 전향적으로 반영되면 좋겠다”면서도 “이번에 도출한 전략은 (올해 편성하는) 2024년 예산에 반영하기 어려워 보이고 이 전략이 실현되려면 일러야 2025년 이후나 돼야 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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