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계실 때 연락을 못 드리다가 병상에 계시다는 말을 듣고 이번 주에 찾아뵐 생각이었는데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너무 안타깝고 송구스러웠어요. 숨 쉬고 계실 때와 돌아가신 뒤에 뵙는 게 의미가 많이 다른데 빈소로 가게 돼 마음이 너무 이상합니다." (탤런트 최수지)
"처음 비보를 접했을 때 믿기지 않았습니다. 워낙 정정하셨기 때문에 깜짝 놀랐어요. 생전에 한 번 더 찾아뵙지 못해 죄스러울 뿐입니다."(이종한 PD)
5일 타계한 '문단의 어머니' 박경리 선생은 대표작인 '토지'를 통해 안방극장 시청자들에게 26년의 세월 동안 세 차례 진한 감동을 안겨줬다. '토지'는 1974년에 영화로 한 번 제작됐고 KBS가 1979년과 1987년 두 번에 걸쳐 드라마로 제작했다. 1979년 한혜숙이 주연을 맡은 '토지'는 박경리 선생이 3부를 집필하고 있을 때 전파를 탔고, 1987년 최수지 주연의 '토지' 역시 4부가 집필되고 있을 때 방송됐다.
그리고 2004년 11월27일부터 2005년 5월22일까지 SBS를 통해 세 번째로 전파를 탔다. 이 때는 '토지'의 5부 21권이 완결된 후다. 이들 드라마를 만들었던 제작진과 배우들에게 박 선생의 타계 소식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세 번째 드라마 '토지'를 연출했던 SBS 이종한 PD는 6일 전화통화에서 "오늘 오후에 문상을 다녀왔다. 2대, 3대 '윤씨 부인' 역을 맡았던 반효정 씨, 김미숙 씨와 동행했다"며 말문을 열었다.
"드라마를 만들기 전 '길상' 역의 유준상 씨와 함께 원주 토지문화관을 찾아 1시간 정도 얘기를 나눴어요. 그때 고령이신데도 참 건강하시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어제 비보를 접하고 깜짝 놀랐습니다. 유준상 씨는 어제 밤에 먼저 문상을 다녀왔더군요. 빈소에 다녀왔지만 여전히 믿기지 않네요."
두 번째 드라마 '토지'에서 주인공 '최서희' 역을 맡았던 최수지는 타계 소식을 접하자마자 조화를 보내 선생을 기렸다. 그는 매우 착잡한 심경으로 전화를 받았다.
"'토지'에서 서희 역할을 하면서 굉장히 많이 배우고 연기자로 성장할 수 있었기 때문에 서희라는 인물에 대한 애정이 정말 남달라요. 당시 막 데뷔해 아무 것도 모르던 20살이었는데 박경리 선생님이 저를 서희 역에 캐스팅해주시고 연기자로 만들어주셨습니다. 당시 촬영 전에 원주로 선생님을 뵈러 갔을 때 손을 꼭 잡아주시며 '걱정마라. 흐르는 대로 잘 타고 가면 잘 될 것'이라고 말씀하시며 굉장히 편하게 대해주신 기억이 납니다. 선생님께서 토닥거려 주신 생각이 많이 나고 그 때 받은 용기로 작품을 잘 할 수 있었죠."
그는 "지금은 고인이 되셨지만 좋은 곳에 가셨으리라 믿는다"며 "선생님의 좋은 작품과 책에 깃든 선생님의 영혼이 남아 많은 이들과 함께 할 것이다. 역사에 획을 그은 분이 타계하신 것은 슬픈 일이지만 선생님의 업적과 좋은 작품은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고 말했다.
'토지'는 세 편의 드라마를 통해 강산이 세 번 바뀔 때마다 그 시대에 맞는 모습으로 태어났다. 역사소설이지만 드라마는 당대를 대표하는 스타들과 시대에 맞는 드라마적 해석을 통해 매번 다른 모습으로 시청자들을 찾아왔다.
그중 세 번째 '토지'는 소설 '토지'가 완결된 후에 선보인 작품이라는 점에서 더욱 주목을 받았다. 기존에 드라마를 통해 선보였던 등장인물들의 캐릭터 변화와 함께, 최서희의 딸을 비롯한 이후 세대의 활약상을 담으며 새로운 '토지'를 선보였다.
이를 연출한 이종한 PD는 "앞서 1979년과 1987년에 만들어진 '토지'는 원작 소설이 완결되기 전이었기 때문에 작가가 생각하는 작품의 주제가 나타나기 전이었다. 그런 점에서 다소 '부분적'인 점이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 이를테면 주인공 서희의 성격이 '찢어죽이고 말려죽일테야'라는 대사로 대표되는, 강하고 독살스럽게만 그려졌지만 사실 서희는 그렇게 악착스러운 여성이 아니다"고 말했다.
"서희는 땅과 같은, 땅이 포용할 수 있는 위대한 어머니의 모습입니다. '땅의 신'과 같은 크고 원대한 인물인데 아무래도 소설이 완성되기 전에 선보인 두 드라마에서는 서희의 이런 성격 대신 악착스러운 면만 강조될 수밖에 없었죠. 세상에 생명 있는 것은 뭐든지 소중하다는 작품의 주제 속에서 서희라는 캐릭터도 창조되는 것이거든요. 세 번째 드라마 '토지'는 그런 면에 포커스를 맞췄습니다."
이 PD는 "이로 인해 드라마 방영 초반에는 앞서 만들어진 두 편의 드라마와 성격이 너무 다르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이야기를 풀어갈 때 인간에 중점을 두는 방식으로 예전의 '토지'와 차별성을 뒀다"고 밝혔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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