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금고의 작은 틈 사이로 소리 없이 들어와 노인의 노후자금을 강탈해 간 것이다. 그렇다면 흰개미들은 지폐와 채권을 어디로 옮긴 것일까? 바로 자기 뱃속으로 옮겼다. 먹어 치운 것이다.
개미와 달리 흰개미는 지폐를 좋아한다. 지폐는 단순한 종이가 아닌 면섬유로 만든다. 물론 흰개미가 주식으로 삼는 것은 돈이 아니라 오래된 나무 기둥이다.
경남 양산의 통도사 약사전에 있는 지름 50cm, 높이 3m의 기둥 여덟 개 가운데 다섯 개가 이미 흰개미의 습격을 받았다. 두드려보면 ‘퉁’ 소리가 나고 주먹이 들어갈 정도로 기둥에 구멍이 나 있다.
전남 무위사, 전북 선운사, 충남 마곡사, 충북 법주사, 경북 은해사, 강원도 오죽헌 등 국보와 보물로 지정된 목조 문화재 69 곳 가운데 33곳이 피해를 입었다. 건축물의 나무기둥뿐만 아니라 고문서와 서적까지도 마구잡이로 먹어치운다.
흰개미는 종-속-과-목-강-문-계의 체계로 분류할 때 곤충강 흰개미목에 속하고, 개미는 곤충강 벌목에 속한다.
흰개미가 섬유질을 좋아하는 까닭은 소화기관 속에 살고 있는 미생물 때문이다. 최근 과학자들은 흰개미의 소화기관에서 셀룰로오스를 당분으로 분해하는 효소를 배출하는 박테리아를 발견하고 효소의 유전자를 분석했다.
과학자들은 이 효소의 메커니즘을 정확히 이해하면 목재를 분해해 에탄올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흰개미 창자 속의 미생물을 우리가 키울 수 있다면 목재에서 많은 양의 바이오 에탄올을 생산할 수 있다.
흰개미는 약 2억 년 전 지구에 나타났다. 바퀴벌레같이 흰개미 역시 살아있는 화석이라고 할 수 있다. 흰개미는 원래 죽은 나무를 먹어치우는 생태계의 청소부 역할을 하는 이로운 존재다. 인간이 그들의 영역을 침범한 이상, 흰개미와 사이좋게 지내는 방법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