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달러를 돌파한 국제유가의 고공행진으로 아시아 주요 국가들이 딜레마에 빠졌다. 인도네시아는 지난 주말 유가 급등의 압력을 버티지 못하고 기름값이 하루 동안 30% 가까이 급등하는 사태가 벌어졌으며 이웃국가들 역시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6일 보도했다.
인도네시아가 기름값을 전격적으로 30% 인상한 것은 유가 급등에 따라 정유업계에 지급하는 보조금 부담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의 푸르노모 유스지안토로 에너지 장관은 기름값 인상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정부가 더 이상 보조금을 지급할 수 없게 됐다"면서 "현재 인도네시아의 기름값은 미국의 절반 수준이며 이를 유지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기름값 인상을 통해 정부의 보조금 부담을 200억달러에서 150억달러로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중국과 인도를 비롯해 말레이시아 등 아시아 주요 국가들이 이와 비슷한 딜레마에 빠져 있다고 신문은 전했다.
국가 경제 운영을 위해서는 원유에 대한 보조금을 삭감하고 상품시장에서의 원유 가격 상승분을 반영해야 하지만 이는 인플레 급등이라는 결과로 이어진다.
선진국에 비해 아직까지 경제 수준이 낮은 아시아 국가들에게 인플레 급등은 사회적인 불안을 야기할 수도 있는 악재라고 WSJ는 설명했다.
스리랑카는 지난 25일 휘발유와 디젤 가격을 14%에서 최대 47% 끌어 올렸으며 방글라데시 역시 기름값을 80%까지 인상하는 방안을 심각하게 고려 중이다.
국민들의 물가 압력을 덜어주기 위해서는 기름값 인상을 억제해야 하지만 현재와 같은 상황이 이어진다면 정부의 재정적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밖에 없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실제로 인도네시아는 예산적자가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1%에 달하며 유류 보조금을 현재와 같은 수준으로 유지할 경우 적자가 확대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또 유류 보조금을 지급할 경우, 상대적으로 유류 소비가 늘어난다는 점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국제 상품시장에서 유가가 고공행진을 펼치고 있는 반면 국내 가격은 안정되면서 소비자들이 유가 상승 정도를 체감하지 못하게 되고 이는 다시 기름 소비가 증가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전문가들은 아시아 국가들의 유류 보조금 삭감이 피할 수 없는 것이기는 하지만 현재 상황이 과거와는 다르다는 사실도 무시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씨티그룹의 이핑후앙 이코노미스트는 "과거 아시아 국가들의 유류 보조금 지급 감축은 유가 급등 시기에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다"면서 "그러나 지금은 유가 급등에다 식품 가격의 고공행진이 겹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해 유류 보조금 삭감이 불가피하지만 식품 가격 급등까지 겹치면서 자칫 소비자는 물론 국가 경제에 미칠 파장이 예상보다 심각할 수 있다는 점이 문제라고 WSJ는 전했다.
한편 말레이시아는 연말 기름값을 20% 인상할 계획이며 중국과 인도는 아직 유류 보조금 삭감을 구체적으로 검토하지는 않고 있는 상황이다.
씨티그룹에 따르면 중국의 유류 보조금 프로그램은 GDP의 0.2%를 차지하고 있다.
민태성 기자 tsmin@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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