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경제를 둘러싼 먹구름이 걷히기는 커녕 더욱 짙어지고 있다. 부동산시장과 신용시장이 악화되고 있다는 증거가 잇따라 공개되고 있는 것이다.
총체적인 위기감이 대두되면서 일각에서는 신용위기 사태가 내후년까지 지속될 것이라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먼저 신용위기 근원지라고 할 수 있는 부동산시장에서 회복의 조짐이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실제로 19일(현지시간) 미 상무부가 공개한 7월 신규주택 착공 건수는 연율로 96만5000건을 기록하는데 그쳤다. 전월의 108만4000건에 비해 11% 감소한 것으로 전년과 비교하면 29.6% 줄어든 셈이 된다. 17년래 최악의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이같은 주택 착공 악화는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면서 매매 자체가 정체된 가운데 대출 이자를 갚지 못해 시장에 나오는 압류 주택이 늘어나는 등 공급이 넘치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사진설명: 신규주택착공이 예상에 미치지 못하는 등 미국 부동산시장이 17년래 최악의 상황에 처했다] |
주택건설의 선행지표로 볼 수 있는 착공 허가 건수 역시 연율 93만7000건에 그쳐 전월 대비 17.7% 감소했다. 연 기준으로는 32.4%나 줄어들었다.
문제는 당분간 이같은 부동산시장의 침체가 개선될 가능성이 낮다는 것이다. 모건스탠리의 데이빗 그린로 이코노미스트는 "내년초까지 단독주택 착공이 15~20%까지 감소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근 공개되는 부동산시장과 관련된 지표는 총체적인 난국이라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일제히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전미부동산중개인협회(NAR)에 따르면 2분기 기존주택 판매는 연기준으로 491.3000채를 기록해 전년 대비 16% 감소했다.
경기침체가 이어지면서 집에 대한 권리를 상실하는 미국인 역시 늘고 있다. 주택압류 신청은 7월에만 27만2000건을 기록했다. 이는 전월 대비 8%, 전년 대비 55%나 늘어난 것이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물가 역시 미국 경제를 옥죄고 있다. 이날 노동부는 지난 7월 생산자물가지수(PPI)가 전월 대비 1.2% 올랐고 전년 대비 9.8% 상승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의 예상보다 물가가 2배 이상 상승하면서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통화 정책에도 큰 부담이 될 수 밖에 없다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중앙은행이 경기부양을 위해 금리를 내리기 위해서는 물가 안정이 뒷받침돼야 하지만 이날 결과는 오히려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를 올려야 하는 상황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향후 전망 역시 우울하다.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경제학 교수는 이날 싱가포르에서 열린 금융 컨퍼런스에 참석해 "미국 금융위기는 아직 최악의 상황이 오지 않았으며 곧 최악의 사태에 직면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2001년부터 4년간 국제통화기금(IMF) 수석 이코노미스트로 활동한 로고프 교수는 "수개월 내 중소형은행이 아닌 거대 투자은행들이 파산할 것"이라며서 "많은 금융기관들이 정리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신용평가기관인 스탠다드앤푸어스(S&P) 역시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S&P의 로드리고 퀸타닐라 북미 은행 등급 담당 책임자는 금융기관들이 추가 신용 및 유동성 위험에 직면해 있다면서 정부와 국부펀드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금융위기 상황이 언제까지 이어질 지 여부는 알 수 없다고 내다봤다.
그는 금융권의 위기는 내년까지 소비자 대출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망해 신용위기에 따른 소비 침체 역시 불가피하다는 점을 시사했다.
전세계 금융권이 이미 5000억달러 이상의 손실을 입는 등 신용위기 사태로 휘청거리고 있지만 본격적인 위기는 아직 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민태성 기자 tsmin@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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