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찌민리포트] 베트남 경기침체로 교민사회 '불똥'

베트남에서 조그마한 제조업체를 운영 중인 A씨. 평소 잘 알고 지내던 거래처 B씨와 사이가 틀어진 건 단돈 150달러 때문이다.

B씨가 납품대금을 차일피일 미루자 화가 난 A씨는 B씨의 가게로 찾아가 크게 싸웠다. 경기 불황이 계속되며 가뜩이나 수금이 되지 않는 마당에 B씨가 적은 금액이라는 이유로 대수롭지 않게 내뱉은 말이 화근이 됐다.

B씨 역시 매상이 크게 떨어진 상황에 얼마 되지 않은 대금을 직접 매장까지 찾아와 다짜고짜 내 놓으라고 하니 기분이 크게 상하긴 마찬가지.

   
 
베트남 경제가 침체를 지속하면서 한국 교민들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인이 운영하는 기업에 직원이 모여있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그냥 넘어갔을 법한 일이지만 한번 상한 마음은 쉽게 누그러지지 않았다. 결국 A씨는 총영사관에 이 같은 내용을 질의한 뒤 B씨와 법적 소송을 벌이기로 마음을 먹고 있다.

베트남의 경기 침체가 계속되며 교민사회가 갈수록 각박해지고 있다.

일상에서 지나칠 수 있었던 소액 분쟁이 크게 늘어나고 민사 사건으로 처리 될 사안이 형사 사건으로 확대되는 등 이역만리에서까지 교민들끼리 서로 법적 다툼을 벌여야 하는 참담하고 안타까운 현실이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

경기 불황으로 인해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소규모 금전 문제로 인한 다툼이 늘고 있다는 것.

대한민국 주 호찌민 총영사관에 따르면 최근 금전 문제로 인한 각종 민원 건수가 본격적인 경기 침체 이전인 지난 4월의 하루 평균 10여건에 비해 크게 늘어난 80여건의 상담 및 접수가 이어지고 있다.

민사 사건으로 해결이 가능한 1천 달러 미만의 소규모 금전 문제까지 형사 소송으로 비화되는 데는 베트남 현지의 경기 침체가 크게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총영사관측은 보고 있다.

즉 경기 침체가 곧바로 매출 감소로 이어지자 자금난에 허덕이는 영세업자들의 경우 채무 불이행 또는 대금 미결제 사례가 잦아지고 이로 인해 채권자 등 관련 업체의 사정도 같이 나빠지는 악순환이 계속됨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한마디로 자그마한 돈에도 서로 악다구니를 써야 할 만큼 현재 극도의 자금난에 허덕이고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지난해부터 베트남 진출을 모색해 온 C업체의 경우 호치민 인근에 부지를 마련하고 공장 건물은 물론 기계까지 들여 놓았지만 최근 이 업체는 한국으로 잠정 철수 했다.

철수 이유는 운영자금 부족. 초기 공장 설립 자금은 한국에서 마련했지만 공장 운영 자금은 베트남 현지 은행에서 대출받아 조달했다. 하지만 최근 베트남 시중은행의 대출 이자가 최고 20%까지 오르며 도저히 이자 감당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업체는 일단 한국으로 철수한 뒤 상황을 봐서 다시 베트남에 들어온다는 계획이지만 현재 베트남 경제 분위기를 감안했을 때 완전 철수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베트남에서 한국인의 위상은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사진은 베트남 최대 쇼핑몰인 다이아몬드플라자 외부 전경.

C업체에 설비 기계를 시공했던 D업체 역시 어려움을 겪기는 마찬가지. 특히 공장 설비와 관련한 기계를 납품하고 수리하는 D업체의 경우 거래 기업들의 자금사정 악화가 계속되며 당장 매출감소로 이어지고 있다.

D업체에 따르면 지난 4월부터 주문 감소가 이어져 지난달에는 기존 매출액 대비 20~30%가 감소한 상태다.

D업체 대표는 “수리부분의 주문 감소에다 거래 기업들의 자금 사정 악화로 대금 회수가 원활하지 않은 실정”이라며 “베트남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기계를 들여놓은 일부 업체들의 경우 이자 부담으로 회사운영에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최근 베트남의 각종 경기 지표가 다소 호전되고 최악의 상황은 벗어나고 있다고는 하지만 실 경기에 반영되기까지는 상당기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여 이 같은 상황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호찌민총영사관 김종철 경찰영사는 “예전에는 일상생활에서 그냥 지나칠 수 있었던 사소한 금전 문제도 최근에는 서로간의 분쟁으로 비화돼 법적으로 해결하려는 상담 전화가 크게 늘고 있다”며 “경기 침체로 인한 불안 심리가 교민 사이의 불신으로 번지는 것 같아 안타까운 심정”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교민사회가 각박해짐에 따라 일각에서는 한인회와 영사관 등 교민사회를 대표하는  단체 등을 중심으로 교민들의 화합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장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호찌민한인원로회 정정부 부회장은 “경기 불안으로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내 것부터 챙기자’는 식의 이기주의가 팽배한 것 같다”며 “차제에 사소한 분쟁에 대해 원만한 중재 역할을 할 수 있는 민원 전담 창구 개설 등 교민단체의 보다 적극적인 대처가 필요한 시기”라고 강조했다. /호찌민 교민신문=황재경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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