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2' 모기지업계에 대한 구제금융 지원안이 기정사실화되면서 신용위기가 '제2라운드'로 돌입하고 있는 가운데 투자은행 업계의 악재가 그치지 않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주요 투자은행의 절반 이상이 사라질 수 있다는 비관론을 제기하고 있다.
미국 투자은행 업계의 실적이 5분기 연속 부진을 면치 못할 것이며 이에 따라 증시는 물론 금융시장에 미칠 타격이 상당할 것이라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6일 내다봤다.
8월 마지막주 메릴린치를 비롯해 투자은행 4개 중 3개가 부진한 실적과 예상보다 늘어난 상각 전망을 밝힐 것이 확실시되고 있는 상태다.
<사진설명: 미국 투자은행 업계가 대대적인 통합 바람에 휩싸일 것으로 전망됐다. 사진은 지분 매각 협상을 진행 중인 리먼브라더스> |
이미 최근 수분기에 걸쳐 리먼브라더스를 비롯해 골드만삭스, 모간스탠리 등 주요 투자은행들은 수십억달러에 달하는 자산을 상각한 바 있다.
특히 경영 악화를 타개하기 위해 지분 매각을 추진 중인 리먼브라더스는 추가로 30억달러의 상각을 단행할 것으로 업계 관계자들은 내다보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투자은행들의 자산 매각 역시 쉽지만은 않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비즈니스 회복을 위한 발걸음 자체에 족쇄가 채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씨티그룹은 756억달러로 추정되는 리먼브라더스의 모기지 관련 자산을 매각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시장조사기관 톰슨로이터는 리먼브라더스의 주당손실이 1.83달러에 달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불과 한달 전만 해도 전문가들은 리먼이 27센트의 주당순이익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모간스탠리 역시 한달전 주당순익 전망치 95센트에서 81센트로 순익이 줄어들 것으로 전망되고 있으며 골드만삭스의 주당순익 전망치 역시 한달여 만에 3.80달러에서 2.63달러로 줄어들었다.
문제는 올해는 물론 내년까지 투자은행업계의 상각 행진이 마무리될 지가 확실치 않다는 것이다.
하테 전무이사는 "내년에도 투자은행들의 상각이 완료될 것이라는 확신이 없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최악의 경우 주요 은행 가운데 절반이 없어지는 '업종 통폐합'이 일어날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모기지 관련 채권의 손실이 이어지고 있는데다 투자은행들의 주 수입원인 기업 인수·합병(M&A)을 비롯해 차입매수거래(LBO) 시장이 급격히 위축되는 등 돈을 벌 수 있는 기회 자체가 없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M&A 시장은 지난해 4조8400억달러로 사상 최대를 기록한 뒤 올들어 30% 가까이 규모가 위축된 상태다.
전문가들은 투자은행의 돈줄이 마르면서 업계 환경 악화가 지속될 경우 생존을 위한 '합종연횡'이 불가피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고 WSJ는 전했다.
신용위기 위기가 부실은행을 대거 양산하고 있다는 사실도 업종간 '통폐합'은 물론 생존 자체에 대한 우려로 이어지고 있다.
블룸버그 통신은 신용위기로 미국의 부실은행이 5년래 최다 수준으로 급증했다고 보도했다. 미국 연방예금보험공사(FDIC)는 예금보헝 대상인 8500개 은행 및 저축은행 중 117개의 은행이 자산건전성 기준을 맞추지 못했다면서 부실 금융기관으로 분류됐다고 밝혔다.
이는 전분기 90개에서 대폭 늘어난 것으로 지난 2003년 이래 최대 수준이다. 은행 및 저축은행의 2분기 순이익도 평균 50억달러에 그쳤다. 전년동기 368억달러의 7분의1 수준으로 급감한 것이다.
<사진설명: 지난 3월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JP모간체이스에 인수된 베어스턴스> |
신용위기로 부실 자산이 쌓이면서 금융기관이 2분기에 모기지와 기타 대출의 손실에 대비해 쌓은 충당금도 500억달러를 돌파했다. 이는 전년 대비 4배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같은 기간 부실 금융기관의 자산은 783억달러를 기록했다. 전분기에는 263억달러를 기록한 바 있다.
FDIC는 파산 위험에 처할 은행들이 더욱 늘어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같은 상황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신용위기에 따른 금융권의 혼란은 내년까지 이어질 수 밖에 없는 상태다.
부실금융기관 리스트에 포함된 은행들은 대부분 부동산 관련 대출의 비중이 높았으며 특히 건설과 부동산 개발 대출에 집중돼 있다고 FDIC의 존 코스턴 대형 금융기관 감독 부문 책임자는 말했다.
FDIC의 셀리아 베어 회장은 이날 워싱턴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이같은 결과는 분명 우울한 것"이라면서 "당분간 금융권의 높은 순익은 기대하기 힘들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부동산 지표가 개선되고 있다는 신호가 포착된 것은 긍정적으로 해석되고 있다. 미국의 주택가격 하락속도가 둔화된 가운데 신규주택판매 역시 17년래 최악의 수준에서 벗어난 것이다.
최근 월가가 가장 주목하고 있는 주택가격지표인 케이스-쉴러 지수에 따르면 지난 2분기 주택가격은 전분기 대비 2.3%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전분기의 6.8%에 비해 3분의1 수준으로 줄어든 것이다.
20대 대도시의 주택가격 역시 전년 대비 15.9% 하락했지만 월가가 예상한 16.2%에 비해서는 양호한 수준을 나타냈다.
7월 신규주택판매 역시 전월 대비 2.4% 증가해 연율 51만5000채를 기록했다. 주택재고가 5.2% 감소한 41만6000채를 기록해 1963년 11월 이후 가장 큰 하락률을 기록한 것이 특히 긍정적으로 해석되고 있다.
이에 따라 25년래 최악의 상황에 직면한 주택경기가 바닥에 근접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기대섞인 목소리가 나왔다.
월가가 가장 신뢰하는 주택가격지표인 S&P 케이스/쉴러 지수에 따르면 2분기 주택가격은 전분기대비 2.3% 내려 전분기 하락률인 6.8%에 비해 개선됐다.
지난 6월 20대 대도시 주택가격은 전년대비 15.9% 떨어졌으나 월가 전망치인 16.2% 보다는 좋았다.
케이스/쉴러 지수의 공동 개발자인 웰슬리 칼리지의 칼 케이스 교수는 "지난 3개월간 주요 도시의 상황이 개선됐다"면서 "이는 고무적인 결과"라고 평가했다.
<사진설명: 주택가격 하락률이 낮아지는 등 부동산시장 개선 기대감이 대두되고 있는 것은 긍정적이라는 평가다> |
최근 유가 하락과 함께 소비심리가 개선되고 있다는 사실도 긍정적이라는 평가다. 민간 경제연구기관인 컨퍼런스보드는 이날 8월 소비자신뢰지수가 전월 51.9에서 56.9로 상승했다고 밝혔다. 이는 월가가 전망한 53을 웃돈 것으로 지난달 부터 유가가 하락한 것이 주효한 것으로 풀이된다.
6개월 뒤 경제가 악화될 것이라고 답한 응답자 역시 전월 32.4%에서 25.8%로 줄었다.
그러나 고용시장에 대해서는 여전히 우려의 목소리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일자리를 구하기 어렵다'라고 답한 응답자는 전월의 30.2%에서 32%로 상승했다고 컨퍼런스보드는 밝혔다.
미국 경제가 본격적인 회복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경제의 3분의2를 차지하고 있는 소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고용시장을 살려야 한다는 주장이 확산되고 있는 것도 바로 이때문이다.
민태성 기자 tsmin@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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