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지난 60년동안 건국과 산업화, 민주화를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달성하고 이제 선진화의 초입에 들어섰다. 선진화 의제에 대해서는 대다수가 동의하고 있다. 그러나 선진화의 진정한 모습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다양하다. 대한민국이 진정한 의미의 선진국가가 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향후 새로운 60년의 비전을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표현과 강조점에 다소 차이는 있으나 전문가들의 의견은 대부분 '복지국가'와 '녹색성장'으로 모아지고 있다.
◊ 대한민국이 선진국가가 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유종일 KDI 국제대학원 교수(경제학)는 선진국가 진입의 과제로 세 가지를 꼽았다.
첫째,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이 보장되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부정부패가 없고 투명해야 하며 법치주의가 확립되어야 한다. 대기업들의 불공정 거래와 경쟁제한 행위를 엄단하는 등 경쟁질서를 확립하고 경제적 약자에 대한 보호를 제대로 해주어야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이 된다. 이것이 효율적인 시장경제 확립의 전제이며 선진화의 기본 요건이다.
둘째, 창의와 혁신이 만발해야 한다. 한국은 지금도 근로시간이 OECD국가들 중 압도적 최장이다. 건설산업의 GDP비중이 현재 OECD국가들 중 최고인데 계속 건설투자와 물적투자로 성장하겠다는 것은 안 된다. 이런 건 개도국이 하는 것이다. 창조형 인적자본 육성이 필요하고, 진정한 기업가 정신이 필요하다.
셋째, 약자 보호를 제대로 해야 한다. 선진국에 가면 느끼는 것은 장애인에 대한 배려 등 약자를 배려하는 마음과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는 것이다. 사회안전망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는 나라는 선진국이 아니다. 국민소득이 높다고 선진국이 되는 것이 아니다. 쿠웨이트를 선진국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인권과 약자보호가 훨씬 개선되어야 한다.
정무권 연세대 교수(행정학)는 성장과 분배가 조화를 이루는 경제시스템과 사회복지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복지가 낭비이며, 성장에 저해된다는 이분법적 인식을 극복해야 한다. 진정한 선진국은 탄탄한 복지를 바탕으로 우수한 인적자원의 개발, 사회적 합의를 통한 거시적, 장기적 문제해결, 그리고 지속적인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이를 위해서는 대기업-중소기업간, 노사간, 지역간, 계층간의 상생을 이룰 수 있는 정치, 경제,사회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경제학)도 최근 '선진국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라는 주제의 대한상의 특강에서 흔히 유럽은 복지병 때문에 경제가 안된다고 하지만 복지지출이 높은 핀란드, 노르웨이가 고성장 국가라면서 고정관념을 버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복지지출이 높은데 어떻게 고성장을 하는지 의아해 하지만 복지제도와 노동자 재교육제도를 잘 연결하면 생산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스웨덴, 핀란드 등은 실직이 돼도 수당으로 임금의 70~80%가 나오고 재교육을 통해 취업을 알선하기 때문에 개방경제나 구조조정에 대한 저항이 적다고 설명했다.
이제민 연세대 교수(경제학)는 “산업화와 민주화를 완성하는 것이 선진화이지 따로 선진화가 있을 수 없다” 며, “선진국가 진입을 위해서는 성장동력 회복과 양극화 해소에 주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화적 품격, 국각의 격(格)을 높여야 한다는 견해도 제시됐다.
정용덕 서울대 교수(행정학)는 "선진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경제력과 민주주의에 더하여 사회구성원의 기본적인 수준의 삶의 질이 유지되고, 문화적인 품격을 갖추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민전 경희대 교수(정치학)도 "선진화로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해서는 경제적 성장도 중요하지만 정치 선진화, 복지 선진화, 사회 선진화가 필요하다"며, "정부는 전반적인 국가의 격(格)을 어떻게 높일 것이냐에 몰두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더 나은 풍요를 강조하는 의견과 더불어 선진화의 기준이 분명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손경식 대한상의 회장은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경제적으로 더 풍요로워야 한다"며 "작년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이 2만달러를 달성했으나, 하루 빨리 선진국 수준이 3~4만 달러로 올라서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황상민 연세대 교수(심리학)는 " ‘선진화’에 대해 ‘‘지금보다 잘 사는 것’ 과 같은 막연한 느낌만 있다"고 지적하고, “ ‘선진화’를 말하기 전에 우리 사회가 현재 어떤 상태에 있는지 알고 스스로 ‘선진화’에 대한 기준을 세우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며 성찰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권 율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국제사회에서의 역할 증가를 중요한 과제로 꼽았다. 개도국의 지위를 벗고 선진국 진입을 위해서는 국제사회의 책임과 역할을 성실히 수행하고, 대외원조를 확대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 MB정부 '저탄소 녹색성장' 의제 적절한가
글로벌 이슈로 떠오른 에너지, 식량위기는 지구가 신음하고 있다는 의미이며, 친환경 성장을 하지 않고는 인류의 생존이 위협 받게 된다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이명박 대통령이 8.15 경축사를 통해 새로운 60년의 비전으로 제시한 저탄소 녹색성장은 지속가능 성장(sustainable development)의 구체화된 표현이라 할 수 있다. 녹색성장은 온실가스와 환경오염을 줄이는 지속가능한 성장이며, 녹색기술과 청정에너지로 신성장동력과 일자리 창출하는 새로운 국가발전 패러다임이라는 것이다.
기후변화협약에 따라 2013년이면 한국도 온실가스 감축 의무를 이행해야 하기 때문에 저탄소 정책은 피할 수 없는 길이다. 한국의 연간 이산화탄소 1인당 배출량 전세계 6위, 총배출량 10위로 지금부터 대비책을 강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한국의 에너지 대외의존도는 97%에 달하는 데도 에너지 효율은 일본의 1/3, 미국의 1/2 수준에 그친다. 에너지기술 개발 예산규모는 일본의 1/17이고, 신재생에너지 보급률은 선진국과 비교가 안되는 불과 2%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MB정부의 '저탄소 녹생성장'에 대해 압축적 산업화 이후 전지구적 과제에 동참하면서도 국가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정책방향 설정이라며 큰 방향에 있어서는 동의하면서도 준비부족과 진정성에 대해선 의문을 제기했다.
황상규 환경운동연합 정책실장은 환경규제 완화를 내세워 상수원 보호지역과 환경영향평가제도를 대폭 축소하여 무분별한 개발을 조장하는 정책을 편 것이 불과 최근의 일인데, 갑작스럽게 ‘저탄소 녹색’을 제시한 것은 그럴듯해 보이는 정책이면 던져놓고 보자는 식이 아니냐고 반문했다.
유종일 KDI국제대학원 교수는 "당장 정부가 준비하고 있는 국가에너지기본계획부터 재생에너지 개발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대폭 수정하고, 장식품으로 전락한 지속가능개발위원회의 위상과 역할을 강화하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이웃나라 일본은 '저탄소사회 구축'이라는 글로벌 과제를 일본경제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활요하기 위해 이미 여러 차례 '저탄소사회(Low Carborn Society)'에 대한 비전을 발표하고, 강력히 추진 중이다. 특히 지난 6월 후쿠다 총리가 발표한 '후쿠다 비전'은 저탄소 사회에 대한 일본의 비전을 집약한 것으로 2050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현재보다 60~80% 감축한다는 목표를 국제사회에 약속했다.
이어 7월 29일 '저탄소 사회구축을 위한 행동계획'을 통해 △이산화탄소 포획.저장 기술 상용화 △태양광 발전 △연료전지 △하이브리드 및 전기자동차 △원자력 발전 △에어콘 등의 에너지효율 규제강화 △배출권 거래제도 △환경세 도입 검토 등의 세제개혁 △탄소배출량 표시제도 등을 책정 발표했다.
그린카와 그린홈 백만호 프로젝트 등을 통해 "2020년 3천조원에 달할 녹색기술 시장의 선도국이 될 것"이라는 MB정부의 목표가 좀더 체계적이면서도 구체적으로 추진되어야 할 이유이다.
허 욱 기자 wugih@, 김준성 기자 fre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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