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정유사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세계 최고 수준에 달하는 규모의 경제를 실현함과 동시에 천문학적인 비용에도 불구하고 지상유전이라 불리는 중질유분해시설을 확충함으로써 경쟁력 강화에 나서고 있다. 또한 자원 확보는 물론 단순한 정유회사가 아닌 석유회사로 거듭나기 위해 산유국을 중심으로 한 국영석유기업과 손을 잡는 한편,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이를 기반으로 초고유가 상황 지속에도 불구하고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성과를 내며 수출 주력산업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초고유가 상황과 치열해진 국제 석유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정유업계가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조명해 본다.<편집자 주>
총성 없는 자원전쟁
국제유가가 사상 최고가 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향후 유가가 어떻게 움직일지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현대사회의 번영은 안정된 에너지 확보에 의해서만 보장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석유가 없으면 단 하루도 사회·산업활동을 영위할 수 없다. 결국 안정적인 석유 확보는 전 세계적인 문제다.
고유가와 주요 산유국의 정치적 불안이 지속됨에 따라 해외 석유개발에 대한 관심이 과거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는 이유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에너지 자원이 없는 소비국들은 해외 에너지, 특히 석유자원을 자국 기업들이 직접 개발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에너지 안보 확보 방법이 된다.
하지만 석유시장은 그동안 세계 석유시장을 점유해 온 엑슨모빌, BP, 로얄더치쉘, 토탈, 쉐브론 등 글로벌 메이저들(IOCs : Internation Oil Company)과 아람코(사우디), 에녹(아랍에미레이트), KPC(쿠웨이트) 등 산유국을 중심으로 한 국영석유기업(NOCs)으로 양분돼 있어
시장 참여가 쉽지 않다.
우리보다 석유를 일찍 사용하기 시작한 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 등 거의 모든 주요 석유 소비국들은 세계 각지를 대상으로 오랜 기간 동안 석유개발 사업을 추진해 왔다.
우리나라도 해외 석유자원 개발에 대한 관심을 다시 가지면서 최근 들어 정책적 지원들이 마련되고 있고, 의미 있는 성과도 도출되고 있지만 여전히 미미한 수준에 불과하다.
석유공급 안보에 대한 인식이 재형성되면서 자원개발이 가장 유력한 대안으로 평가받고 있지만 기존 IOCs와 최근 자원민족주의 대두로 인한 NOCs의 견제가 심해져 우리나라 등 후발주자들의 시장 참여가 만만치 않다. 석유개발과 관련된 국제적 환경 역시 과거 어느 때보다 우호적이지 못하다.
우선 지난 2003년부터 시작된 고유가로 인해 산유국들의 국가 이기주의가 극단화되고 있다.
이미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베네수엘라 및 러시아와 같은 석유자원 보유국들은 외국기업의 석유개발 참여를 제한하고 있다. 베네수엘라는 외국기업의 지분을 일부 국유화했고, 러시아에서는 쉘이 운영하는 사할린 프로젝트-Ⅱ 지분을 러시아 국영가스 회사인 가즈프롬(Gazprom)이 반강제적으로 매입했다.
또 이란에서는 일본 인펙스(Inpex)가 추진했던 아자데간 유전 참여 지분이 대폭 축소되기도 했다.
이런 움직임은 여타 국가들에게도 영향을 미쳐 유망 자원에 대한 외국기업들의 접근을 제한할 뿐만 아니라 참여 조건도 까다롭게 변하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안정적인 에너지 확보를 위한 국가간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칼과 총만 들지 않았지 사실상 전쟁에 돌입한 상태다.
에너지 확보를 위해서는 적군, 아군의 경계도 사라졌다.
미국의 대표적 우방인 일본도 에너지 확보를 위해서 미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최근 핵문제로 국제사회 혼란을 야기하고 있는 이란과 손을 잡는다. 13억 인구를 대표하는 후진타오 주석이 서아프리카 오지까지 날아가 엄청난 자금을 쏟아붓는다. 에너지 확보가 곧 국력이 되는 시대가 도래했음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러시아는 에너지 대국으로 본격 부상하기 위해 민영화된 에너지 산업에 대한 국가 통제를 대폭 강화했으며, 베네수엘라 우고 차베스 대통령의 중남미 에너지정책 통합 움직임도 미국의 견제에 관계없이 차근차근 진행돼 현지에 진출한 서방 메이저들의 영향력을 약화시키고 있다.
아시아 지역에서도 중국과 인도의 해외 에너지자원 공동 확보 노력이 확대되고 있으며 OPEC의 2위 원유·천연가스 매장국인 이란도 ‘미국 극복’ 측면을 겸해 멀리는 중남미까지 포함한 주변국들과 에너지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석유로 앙숙들이 화해를 하기도 한다. 인도와 파키스탄의 관계 개선에는 총 70억달러가 투입된 양국간 송유관 건설이 한 몫을 했다. 이란이 깊이 개입되면서 미국이 견제를 했지만 에너지 자원 확보가 절실한 상황에서 프로젝트 실행을 막지는 못했다.
정유업계 한 관계자는 “대체에너지 개발에 전 세계 각국들이 총력을 기울이고 있고 차세대 에너지로 수소가 각광을 받고 있지만 석유 의존도를 획기적으로 줄이는 것은 매우 어렵다”면서 “아무리 좋은 대체 에너지가 개발되더라도 석유처럼 효율적인 에너지 탄생을 기대하기 어려워 자원 전쟁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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