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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이후 중국의 산업정책 변화(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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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09-07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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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환우(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

세계화와 독자적 개발 능력 제고의 병행

‘세계화와 독자적 능력 제고의 병행 추진’, 일견 모순돼 보이는 이 말로 현재 중국이 추진하고 있는 산업정책을 요약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이를테면 세계화 추세에서 벗어나지 않되 대표적인 세계화의 희생양으로 거론되곤 하는 독자적인 발전능력을 포기하지 않고 추격 전략을 병행 추진하겠다는 의미다.

과거 1990년대에 중국이 산업정책을 실시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당시의 산업정책은 대체로 탐색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당시 산업육성의 대상에는 기초 농업, 수출을 위한 경공업, 신흥 첨단산업, 원재료 에너지 등 거의 모든 산업이 망라돼 있었다. 모든 산업을 육성한다는 것은 모든 산업을 육성하기 않는다는 말과 마찬가지다.

정책의 테크닉, 즉 정책 지표의 선정과 정책 추진에서도 한계가 많았다. 예를 들어 1990년대 대표적인 산업정책인 자동차산업정책의 주요 목적은 국산화율 제고와 기업 통폐합이었다.

그러나 폭스바겐, 아우디, 시트로앵등 국제 자동차 회사들은 값비싼 자국산 핵심부품과 자기 모델을 중국에 들여와 값싼 중국산 일반 부품과 섞어 생산한 뒤(즉 국산화율 규정을 채운 뒤) 중국에서 판매하는 전략으로 맞섰다. 업체 통폐합 계획도 수백개의 자동차 업체를 나눠 소유하고 있는 지방정부의 비협조로 성공할 수 없었다.

2001년의 WTO 가입, 2002년 후진타오 지도부의 등장 이후 중국은 그간 추진해 온 산업정책에 대한 숙고와 조정을 거쳐 <11차 5년 계획>(2006-2010년)을 통해 새로운 산업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한편으로, 개방화로 특징되는 WTO체제하에서 정책을 추진할 수밖에 없게 됨에 따라 산업정책의 수단과 대상에도 상응하는 변화가 요구되게 됐다. 다른 한편, 2002년 새로 들어선 후진타오지도부도 그간 추진해 온 정책의 성공과 실패를 되짚어 보고 새로운 방향타를 제시함으로써 자신의 정통성을 입증할 필요가 있었다. 올림픽을 치르면서 얻어낸 국제적 위상 제고와 자신감 획득도 이러한 정책 변화의 폭과 속도를 넓고 빠르게 해 줄 수 있는 계기가 됐다.

기술, 개발능력, 브랜드 갖춘 기업 육성이 기본 목적

새로운 산업정책의 내용은 서너 가지로 세분될 수 있지만 핵심은 자생력 있는 국제적인 산업 및 기업 경쟁력을 키워 가겠다는 것이다. 그 첫 번째는 과학기술 개발능력의 개발이다.

<11차 5년 계획>에서 중국은 “자주적 혁신(自主創新)”과 이를 위한 ‘혁신형 국가’ 건설, 그리고 과학기술에 대한 지원을 대대적으로 강조했다. 이를 위해 우선 독자적 개발능력 제고를 위해 <국가 중장기 과학기술 발전계획> 프로젝트 실시하기로 했다.

또 ‘혁신형 국가’ 건설을 위해 ▲기초․선도․공익적 연구 지원 확대, ▲과학기술 관리체제 개혁, ▲지적재산권 전략 실시, ▲국제과학기술자원 이용 확대, ▲혁신 환경 개선, ▲세계 일류학자와 인재 육성 등을 추진한다는 방침을 천명했다. 이를 통해 기존의 투입증가형 성장을 혁신형 성장 즉 과학기술과 효율적 노동에 의한 성장 방식으로 바꾼다는 것이다.

또 중국 기업의 국제화 경영을 지원해 중국산 국제적 브랜드와 중국산 다국적 기업을 육성한다는 방침도 천명됐다. 이 연장선상에서 중국기업의 ‘해외진출(走出去)’을 적극 장려한다는 방침도 제시됐다. 이런 노력은 두 가지로 나타난다. 하나는 해외 기업에 대한 적극적인 M&A 전략이다.

2004년 10월 상하이자동차의 한국 쌍용자동차 인수를 필두로, LCD제조업체 징둥팡(京東方)의 한국 하이디스 인수, 2005년 9월 난징(南京)자동차의 영국 MG Rover 및 엔진 생산부문 인수, 그리고 2006년 5월 국영 해양석유총공사(CNOOC)의 미국 석유회사 유노칼 인수 시도 좌절에 이르기까지 끊이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다른 하나는 중국 기업의 ‘해외진출(走出去)’ 노력이다.

2006년부터는 아예 중국정부가 직접 나서서 해외 각지에 ‘해외경제무역협력단지’를 건설해 그곳에 중국기업의 투자를 지원하고 있다. 앞으로 전체 50-60개가량 건설될 계획인 이 ‘해외협력단지’는 2008년 초 이미 12개에 이르고 있는데 여기에는 우리나라의 전북 무안시에 건립이 추진 중인 ‘무안한중경제협력단지’도 포함된다.

지난 8월 말 한국을 방문한 후진타오 국가 주석은 경제 4단체와 가진 오찬 강연에서 “한국이 중국기업의 한국진출에 좋은 환경을 마련해 주기 바란다”고 언급했다.

주요국의 반발과 견제에도 멈추지 않을 것

그런데, 이러한 산업 추격전략이 산업정책을 금지(즉 특혜 대출, 기업 및 수출보조금 지급등)하고 있는 WTO체제하에서도 가능한 것일까? 답은 ‘그렇다’ 이다.

중국이 내세우고 있는 독자적 개발능력 제고와 독자적 브랜드 육성, 더 나아가 선별적 외자 도입(즉 외자의 연해지역 투자 제한과 중서부 지역 투자 장려, 환경 저해 및 에너지 고소비형 투자 제한, 기술 및 자본집약형 투자 장려 등)은 어떤 점에서 WTO로 상징되는 세계화의 틈새 활용전략이라고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WTO 규정에서는 산업 및 수출에 대한 정부 보조를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지만 과학기술 개발 지원과 낙후지역 개발은 예외로 인정하고 있다. 중국이 현재 내세우고 있는 ‘독자적 개발 능력’ 제고와 지역균형 개발정책은 이러한 WTO의 예외적 인정 규정 활용 전략인 셈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기존의 산업정책이 전부 폐기된 것은 아니다.

중국의 산업 및 수출 보조금 지원을 둘러싼 끊이지 않는 통상마찰이 그 증거다. 2006년 EU가 작성, 공포한 <대중국 신통상전략>에서는 대중국 무역투자의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로 기업에 대한 보조금 지금을 들고 있다.

또, 미국 철강업협회는 2006년 7월 중국정부의 철강산업에 대한 보조금 지금 관행을 WTO에 제소토록 미 행정부에 요청한바 있으며, 2007년 초에는 중국산 냉연강판에 대한 반덤핑 및 상계관세 제소를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지는 등 중국의 철강산업 지원 의혹을 둘러싸고 세계 주요국들의 불만이 팽배해 있다.

다만 중국이 산업정책을 실시하고 있다는 주요국들의 지적이 사실로 밝혀진 적이 별로 없고, 중국 정부 역시 산업정책 보다는 과학기술정책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강력하게 표명해 온 점으로 보아 최소한 WTO 가입 이전에 비해서는 정책의 목적과 내용면에서 상당 부분 바뀌고 있다고 봐도 될 것 같다.

중장기적 성공 가능성 높아

그렇다면 중국의 이러한 신형 산업정책은 성공할 수 있을까? 단기적으로는 몰라도 중장기적으로는 성공 가능성이 높다.

우선 독자적 개발능력을 강조한 새로운 산업정책에 따라 이미 GDP의 1.5%에 이르고 있는 중국의 R&D 비중이 더욱 늘어날 것이다. 2006년 현재 중남미 국가의 평균 GDP 대비 R&D 비중은 평균 1%를 넘지 못하고 있고 한국의 비중이 2.5%임을 감안할 때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정부의 이러한 R&D 강화 노력은 중국의 선진경제 추격 능력을 강화해 줄 것이다.

중국이 전 세계 투자의 중심지로 되고 있다는 점도 중국의 추격 전략이 성공할 가능성을 높여준다. 중국은 세계 최대의 잠재적 소비 규모를 가진 단일시장이기 때문이다.

이제 다국적 기업이 중국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각자가 지닌 선진 기술과 디자인을 있는 대로 쏟아 붓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중국이 세계 첨단 기술과 브랜드의 전시장으로 되면 될수록 중국이 갈구하는 독자적 개발능력의 습득은 더욱 쉬워지게 된다.

새로운 산업정책이 성공할 것이라고 예측케 해주는 마지막이자 가장 중요한 이유는 중국정부의 정책의지이다. 중남미와 동아시아, 좀 더 멀리 유럽지역 중소 규모 후발 국가들의 발전 경험을 비교해 보면 한 국가가 성장 궤도에 오르느냐 못 오르느냐 하는 문제는 결국 정치적으로(즉 국가(혹은 지배세력)가 외국세력(혹은 외자)에 매이느냐 아니냐) 결정됨을 알게 된다.

중국의 지도부와 통치세력은 현재 부강하고 독자적인 중화의 영광을 되살리는 과업을 자기 정통성의 기반으로 삼고 있다. 이러한 ‘사업’은 대체로 훌륭한 성과를 거두고 있으며 상당 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차별화와 적절한 협력전략으로 돌파구 찾아야

이러한 중국의 정책 변화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관련 국가에게 위기일까 기회일까?

일단 위기 요인으로서는, 해외시장에서 중국 기업 및 제품과의 경쟁 격화, 더욱 치열해질 지적재산권 침해 관련 분쟁, 중국 시장 진입장벽 강화, 중국시장의 비관세 장벽(고관세에 따른 관세장벽은 WTO 가입에 따라 대폭 약화되었으므로) 등을 들 수 있다.

그렇다고 커져 가는 기회를 간과해선 안 된다. 중국의 선택적 산업육성전략은 상응하는 고부가가치의 자본집약적 고기술 분야 시장을 확대시켜 줄 것이고, 이는 관련 산업에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특히 중국의 산업육성전략이 폐쇄적이 아니라 개방적으로 이루어질 것이므로 중국의 산업육성전략은 관련 산업간 협력과 제휴의 기회를 크게 해 준다. 중국이 산업육성전략의 일환으로 추진하고 있는 국제적 브랜드 육성과 기업 해외진출 확대 노력도 우리 관련 기업에게 제휴와 협력의 기회를 크게 해줄 뿐 아니라 우리의 외자유치에 큰 도움을 줄 것이다.

이상을 종합하면 우리의 대응 방안도 자연스럽게 찾아진다. 우선 기업 차원에서 제품과 브랜드 차별화의 고삐를 늦춰서는 안 된다. 이를 위해 기술집약적 핵심 제품 개발과 브랜드 인지도 제고에 적극 나서야 한다. 중국처럼 거대국가의 거대 기업에 대해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차별화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길 수도 있겠다.

이 대목에서 개방경제를 유지하면서도 탄탄한 제품 및 브랜드 경쟁력을 갖추고 독일, 영국 등 EU내 강대국들에 뒤지지 않는 경쟁력을 자랑해 온 스웨덴, 덴마크, 핀란드 등 북유럽 강소국들의 경험으로부터 영감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정부차원의 과제와 관련해서는, 중국의 새로운 산업정책의 내용으로 보아 가장 중요한 대중국 경제협력 전략의 목표는 우리 기업이 중국 시장에서 중국기업과 동등한 비지니스 환경을 누리도록 해 주는데 있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이점에서 조만간 개시될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한중 FTA 협상에서 대중 투자 및 재중 비즈니스 환경 개선 문제를 협상의 의제로 올리는 일이야 말로 가장 중요한 과제 중 하나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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