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자본시장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 시장의 부실로 시작된 전세계적인 신용위기 여파가 개선되기는 커녕 악화일로를 걸으면서 전세계 금융시장이 뿌리채 요동치고 있는 것이다. 전세계 경제를 선도했던 미국식 자본주의에 대한 회의론까지 제기되면서 금융시장 메커니즘이 변화할 것이라는 주장도 힘을 얻고 있다. 본지는 앞으로 3회에 걸쳐 신용위기 사태의 현황과 근본적인 문제를 분석해보고 글로벌 자본시장의 흐름을 전망해본다>
上. 신용폭풍으로 증시 초토화
中. 신용폭풍 파장 어디까지?
下. 헤게모니 상실한 미국 앞날은?
지난 18일 미국 워싱턴. 주요 정책당국자들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흘렀다. 이날 헨리 폴슨 미 재무장관과 크리스토퍼 도드 상원 금융위원장, 민주당 소속 낸시 펠로시 하원 의장 등 의회 지도자들은 긴급 회동을 가졌다.
폴슨 장관은 의회 지도자들에게 "사상 최대 규모의 구제금융안을 마련하지 않을 경우 미국 경제는 1990년대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을 겪을 수 있다"고 실토했다.
폴슨 장관은 "과감한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경우 금융권의 줄파산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면서 "신용경색 사태는 더욱 악화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의회 지도자들에게 경고했다.
이 자리는 냉전시대 이후 글로벌 금융시장의 헤게모니를 장악했던 '팍스 아메리카' 시대의 종말을 고하는 현장이 됐다.
◆팍스 아메리카나 종말...미국 주도 자본주의시대 끝났다= 신용위기 사태와 함께 '팍스 아메리카나' 시대가 끝났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베어스턴스를 비롯해 리먼브라더스와 메릴린치 등 투자은행 '빅5' 중 골드만삭스와 모간스탠리만이 살아남은 상황에서 전세계 금융권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던 미국 주도의 자본주의는 더 이상 설 땅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그나마 골드만삭스와 모간스탠리 역시 생존을 위해 은행지주사로의 전환을 선언해 결국 미국 금융시장에서 투자은행은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미국 주도의 금융시장이 종지부를 찍었다는 것은 국제 신용평가업계의 움직임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스탠어드앤푸어스(S&P)는 지난주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미국의 신용등급이 강등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사진: 미국발 신용위기 여파로 달러화 위상이 흔들릴 것이라는 우려가 가중되고 있다. |
미국에 부여된 'AAA'의 신용등급이 하향될 경우 이는 금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자산으로 평가받던 미국 국채의 위상이 땅에 떨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의 자존심인 달러화 역시 불안한 상황이다. 전세계의 기축통화로써 전세계에서 통용되던 달러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지난 1944년 고정환율제 도입의 계기가 됐던 브레튼우즈 체제 이후 화폐주조 차익에 따른 '세뇨리지 효과'에 대해서도 회의론이 대두되고 있다는 주장이 확산되고 있다.
◆美 쇠퇴 vs. 중국 부상=아직 달러화에 대한 대안이 없다는 사실과 미국을 대체할 '세계 경제의 기관차'가 부재하다는 점이 미국 주도의 자본시장 체제를 유지시켜 줄 것이라는 낙관론도 제기되고 있지만 글로벌 자본시장의 흐름이 '미국의 쇠퇴'와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의 부상'으로 정리된다는 것에 이견을 다는 전문가들은 많지 않다.
실제로 중국은 미국발 신용위기 사태를 전화위복의 발판으로 삼고 있다. 중국은행(BOC)는 지난 18일 유럽의 거대 자본을 대표하는 로스차일드은행 지분 20%를 22억9700만위안(약 3500억원)에 인수키로 합의했다.
이는 유럽 은행권에 대한 중국 상업은행의 첫 전략적 투자로 BOC는 이번 거래를 통해 벤저민 로스차일드에 이어 로스차일드은행의 2대 주주로 도약하게 됐다.
주민 BOC 부행장은 "이번 합작은 글로벌 전략의 일부분"이라면서 "자산 관리와 프라이빗뱅킹 서비스 사업을 강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감을 표출했다.
세계 최대 외환보유고를 자랑하는 중국의 국부펀드 중국투자공사(CIC)의 해외시장 공략 역시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사진: 중국은행은 신용위기 사태를 맞아 유럽 로스차일드 은행의 지분을 인수했다. |
CIC는 투자은행 '빅5' 중 생존한 모간스탠리 인수전에 뛰어든 것이다. CIC는 이미 지난 12월 모간스탠리 지분 9.9%를 확보한 이후 49%로 지분을 확대할 계획을 밝혔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모간스탠리와 골드만삭스의 지주회사 전환 조치를 취한 것은 독자적인 미국 투자은행이 역사상 뒤안길로 접어들었다는 사실을 인정함으로써 자본시장의 리더로써 미국의 역할을 포기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미국발 신용폭풍이 중국에게 기회이면서 동시에 함정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을 제기하고 있지만 중국이 '세계의 공장'에서 글로벌 자본시장의 주축으로 도약한다는 것은 기정사실화되고 있는 분위기다.
게다가 다른 나라가 경제 위기를 겪을 때마다 시장주의를 강조하며 부실기관의 문을 닫아야 한다는 논리를 폈던 미국 정부가 정작 자국이 금융위기 사태를 맞자 베어스턴스와 AIG 등 거대 금융기관에 막대한 공적자금을 투입했다는 사실은 더이상 글로벌 자본시장에서 미국의 입김이 먹히기 힘들다는 것을 반증한다는 지적이다.
금융시장을 비롯해 투자자들에게 안좋은 선례를 남겼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 신용위기와 같은 사태가 다시 도래할 경우 막대한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방안에 대해 정부가 거부할 수 있는 명분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동남아를 중심으로 미국의 구제금융 지원에 대한 비판이 날로 확산되고 있다. 마하티르 모하마드 전 말레이시아 총리는 22일 "미국은 그동안 부실 금융기관을 구제하면 안된다고 강조했다"면서 "미국 정부가 모기지업체를 비롯해 수십개의 금융기관을 구제하고 있다는 것은 무엇이라는 말인가"라고 반문했다.
일각에서는 지난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당시 미국을 비롯해 국제통화기금(IMF)이 권고한 해결책에 대해서도 회의감이 대두되고 있다.
당시 바트화 폭락을 통해 아시아 외환위기를 이끌었던 태국의 부실채권을 사들이며 해결사 역할을 했던 것은 미국 투자은행 리먼브라더스였지만 리먼브라더스는 이미 역사속으로 사라진 상황이다.
◆美 구제금융에 대해서도 회의론 대두=미국 정부의 대대적인 구제금융안의 효과 자체에 대해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21일 정부가 부실 모기지 투자의 폐기물 저장소가 될 경우 시장의 위기가 진정될지 의문이라고 진단했다.
인스티튜셔널 리스크 애널리틱스(IRA)의 크리스토퍼 웰런 선임 부회장은 "내년 여름까지 110개 은행이 문을 닫을 수 있다"면서 "이들 은행의 자산 규모만 총 8500억 달러에 달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재무부의 구제 금융안을 낙관적으로 볼 이유가 없다"면서 "정부의 구제금융은 재무구조가 약한 은행에게는 큰 타격이 될 수 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사진: 일각에서는 미국 정부의 대대적인 구제금융에도 불구하고 내년 110개 은행이 문을 닫을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사진은 매각을 추진하고 있는 미국 최대 저축은행 워싱턴뮤추얼. |
유럽에서도 미국 신용위기 사태에 대한 쓴소리는 이어졌다.
이탈리아 정부의 줄리오 트레몬티 재무장관은 "미국 금융 시스템이 금융피라미드처럼 무너지고 있다"고 말했으며 호아킨 알무니아 유럽연합(EU) 경제ㆍ통화담당 집행위원은 스페인 일간 엘 파이스에 기고한 글을 통해 "미국 금융위기는 탐욕의 산물"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유럽 금융권 역시 미국의 나쁜 상품을 사들였다"면서 "미국발 신용위기 사태가 언제 끝날지 아무도 모른다"고 설명했다.
또 최근 미국 정부의 행보는 지난 1990년대 일본의 '잃어버린 10년' 사태를 겪지 않기 위해 미국 정부가 신속히 대처에 나섰다는 부분은 인정할 수 있지만 금융시장의 질서를 해치는 자충수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전문가들의 우려를 사고 있다.
윌리엄 아이작 전 연방예금보험공사(FDIC) 총재는 블룸버그통신과 가진 인터뷰를 통해 "연준의 이번 결정은 기존 월스트리트의 종언을 고한 것"이라면서 "미국은 그동안 월스트리트 투자은행으로부터 큰 혜택을 봐왔지만 이제 이같은 사실은 과거로 사라졌다"고 말했다.
민태성 기자 tsmin@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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