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산한 리먼브라더스에 대한 인수 시도로 엄청난 비난 여론에 직면했던 산업은행이 대규모 외화 차입에 성공하면서 체면치레를 했다.
글로벌 신용경색 여파로 해외로부터 자금을 조달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는 가운데 산업은행이 국내 금융시장의 달러 가뭄을 해소하는데 일조할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28일 금융권에 따르면 산업은행은 최근 은행 간 론(loan) 시장과 머니마켓 시장을 통해 총 5억2000만달러(6000억원)의 외화를 차입하는 데 성공했다.
이번에 조달한 자금은 만기 1년짜리가 2억달러, 6개월이 2억2000만달러, 1개월이 1억달러 규모다. 산업은행은 오는 10월 초까지 자금을 전액 인출한 후 외화 자금 공급에 사용할 계획이다.
산업은행 측은 최근 한국물 스프레드가 2.0%포인트 이상인 것을 감안하면 양호한 수준의 금리가 책정됐다고 밝혔지만 구체적인 차입 조건은 공개하지 않았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기관 간 기존 거래관계 등을 토대로 이뤄지는 사모 방식으로 자금을 조달했으며 불특정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공모 시장은 여전히 막혀있는 상태"라며 "자금 차입처나 금리 조건 등을 공개할 경우 수요 쏠림 현상이 나타날 수 있어 비밀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시장에서는 이번에 산업은행이 리보(Libor)금리에 붙는 스프레드를 2.0%포인트 이내로 낮춰 자금을 조달했을 경우 향후 국내 금융기관이 해외에서 자금을 차입할 때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금융권에서는 단기 외화 차입도 어려운 최악의 상황에서 만기 1년짜리 등 중장기 외화를 조달했다는 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미국발 금융위기가 터진 후 외화 조달 시장은 완전 마비됐으며 가뭄에 콩 나듯 단기 차입 거래가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라며 "그나마도 외국계 은행이나 외은 서울지점 간 거래이며 국내 은행들은 아무리 높은 금리를 제공해도 자금을 차입하기가 어렵다"고 토로했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산업은행이 그동안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쌓아 온 신뢰도를 통해 자금 차입에 성공했다"며 "외화 추가 조달을 위해 다른 차입처와 접촉 중"이라고 전했다.
당초 이달 중 진행하려다 리먼브라더스가 파산하면서 발행이 연기된 10억달러 규모의 글로벌 본드까지 정상적으로 발행될 경우 산업은행이 국내 외화 차입의 첨병으로 부각될 전망이다.
이와 함께 수출입은행과 기업은행 등 다른 국책은행들도 산업은행보다 규모가 작긴 하지만 잇따라 외화 차입에 성공하면서 달러 가뭄에 시달리는 국내 금융시장의 숨통을 틔워주고 있다.
수출입은행은 지난주 머니마켓에서 만기 6개월짜리 채권을 발행해 6400만달러를 차입했다.
최성환 수출입은행 국제금융부장은 "이번 차입 외에도 사모 형태로 은행 간 론 시장을 통한 외화 차입을 준비 중이며 조만간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은행도 지난 15일 리먼브라더스 사태가 터지며 글로벌 금융시장에 신용경색 위기가 닥친 후 17일 예정대로 3500만달러 규모의 1년 만기 사모채권을 스프레드 1.10%포인트 수준으로 발행하는데 성공했다.
이재호 기자 gggtttppp@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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