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선두로 세계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사상 최악의 금융위기를 맞아 긴급 공조에 나선 가운에 추가적인 금리인하 여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를 비롯해 유럽중앙은행(ECB), 영란은행(BOE), 스웨덴, 스위스, 캐나다 중앙은행은 8일(현지시간) 기준금리를 일제히 0.5%포인트씩 인하했다.
중국 인민은행 역시 기준금리를 0.27%포인트 인하하는 등 글로벌 중앙은행의 금융위기 사태 진정 노력에 동참했다.
◆연준, ECB 등 금융시장 안정에 총력...증시 약세=이날 세계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전격적인 긴급 금리인하에 나선 것은 지난 9.11 테러 이후 전례를 찾을 수 없는 것이다.
연준은 특히 오는 29일 정례 공개시장위원회(FOMC)를 불과 3주 앞두고 전격적인 금리인하를 단행해 금융시장 안정을 위한 의지를 적극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사진: 중앙은행들의 금리인하 행진에도 불구하고 금융시장의 불안은 이어지고 있다. 증시가 약세를 면치 못하면서 뉴욕증권거래소의 트레이더가 괴로운 표정을 짓고 있다. |
이날 금리인하로 미국의 기준금리인 연방기금목표금리는 기존 2%에서 1.5%로 낮아졌으며 ECB의 기준금리 역시 기존 4.25%에서 3.75%로 인하됐다.
연준은 금리인하 이후 발표한 성명을 통해 금융위기를 맞아 각국 중앙은행들이 긴밀히 협력해왔다며 일본은행(BOJ) 역시 이같은 금융시장 경색 완화 조치에 강력한 지지를 밝혔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날 전격적인 금리인하에도 불구하고 금융시장의 반응은 싸늘했다. 장초반 상승세를 나타내던 미국증시는 다우지수가 200포인트 가까이 하락했으며 S&P500지수와 나스닥 역시 각각 1.13%와 0.83%의 낙폭을 기록했다.
유럽증시는 미국보다 더욱 좋지 않았다. 영국 FTSE 100지수는 5%가 넘게 빠졌고 독일 DAX30지수와 프랑스 CAC 40지수 역시 각각 5.9%와 6.3%의 낙폭을 기록했다.
상품시장 역시 반응도 시원치 않았다. 국제 유가가 한때 연중 최저치를 경신하는 등 하락한 것이다.
◆추가 금리인하 불가피...연준 0.5%포인트 더 내릴 듯=전문가들은 사태가 진정되지 않고 있는 만큼 중앙은행들의 추가적인 금리인하가 불가피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전례없는 금리인하 공조가 이뤄졌지만 기대했던 반응을 보이기 위해서는 시간과 함께 추가적인 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이 프리퀀시 이코노믹스의 이언 쉐퍼드슨 이코노미스트는 "추가적인 조치가 있을 것"이라면서 "경제침체를 막기 위해서는 제로 금리까지 끌어내려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 연방기금목표금리 추이 (출처: FRB) |
이같은 전망이 맞는다면 미국의 기준금리는 4년래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하게 된다. 연준은 지난 2003년 6월부터 1년 동안 금리를 1%로 유지했다.
영란은행과 ECB 역시 연준과 함께 추가적인 금리인하에 나설 공산이 크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글로벌 인사이트의 하워드 아처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ECB가 연내 금리를 추가로 내릴 것"이라면서 "내년에는 유럽의 금리가 3%로 낮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또 BOE 역시 올해 2회에 걸쳐 0.25%포인트씩 금리를 끌어내릴 것으로 전망했다.
전문가들은 중기적으로 중앙은행의 금리인하가 금융시장 안정에 상당히 기여할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다이와증권의 마이크 모란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통화정책의 완화는 현명한 판단"이라면서 "시장의 두려움이 사라지고 투자에 매력적인 환경이 조성될 것"이라고 밝혔다.
◆자금시장 경색 지속...CP 금리 급등=전세계 중앙은행들의 전격적인 금리인하 조치에도 불구하고 증시가 약세를 면치 못한 가운데 금리인하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회의감이 대두되고 있다.
이는 자금시장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는 평가다. 8일(현지시간)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와 유럽중앙은행(ECB), 영란은행(BOE)를 비롯해 중국 인민은행 등 주요 7개국 중앙은행이 금리를 끌어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기업어음(CP) 금리는 오히려 상승세를 나타낸 것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이날 미국 CP 금리는 3.5%를 기록했다. 이는 전일 대비 56bp 상승한 것이다.
연준이 사상 처음으로 직접적인 CP 매입 계획을 밝힌데다 0.5%포인트라는 공격적인 금리인하를 단행했지만 시중에서 자금을 마련하는 것은 여전히 '하늘의 별따기'인 것이다.
로체스터의 매튜 코플러 펀드 매니저는 "위기가 한동안 이어질 것이라는 불편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면서 "지난 20여년 동안 처음으로 소비 침체가 다가올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중앙은행이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어도 자금시장에서 돈이 풀리지 않는 경색 사태가 이어지고 있는 것은 그만큼 시장 심리가 악화돼 있음을 반영한다는 평가다.
헌팅턴 애셋 어드바이저의 피터 소렌티노 머니 매니저는 "중앙은행들의 전격적인 금리인하는 상징적인 의미 이외에는 영향이 없다"면서 "문제는 신용의 가치가 아니라 신용이 회복하느냐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런던은행간 금리인 리보 역시 이날 144bp 오른 5.38%를 기록했다. 각국 중앙은행들의 전격적인 금리인하 조치가 시장상황을 개선하다는 기대감으로 이어지기보다는 시장이 아직 최악의 상황에 직면하지는 않았다는 불안감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로엔스 메이어 전 연준 이사는 "지금은 아주 특수한 상황"이라면서 "시장이 완전히 얼어붙은 상황이라면서 금리인하가 도움이 되지 못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민태성 기자 tsmin@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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