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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은행 소유 가능해져…'사금고' 전락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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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10-13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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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정부가 산업자본의 은행 지분 소유 한도를 확대하고 보험 및 금융투자(증권)지주회사의 제조업 자회사 소유를 허용하는 등의 금산분리 규제 완화 방안을 발표하자 시장에서는 이를 둘러싼 찬반 논란이 격화되고 있다.

정부는 은행 자본 확충과 금융공기업 민영화, 대기업집단의 지주회사 전환 촉진을 위해서는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특히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대형 금융기관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산업자본을 끌어들이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시민단체와 학계 일각에서는 금융산업에 대한 사후 규제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상황에서 금산분리 등 사전 규제를 풀어버리면 국내 금융시장이 대기업의 놀이터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 금융시장에 산업자본 대거 유입될 듯 = 정부는 산업자본이 소유할 수 있는 은행 지분 한도를 현행 4%에서 10%로 늘리기로 했다. 지방은행에 대한 지분 소유 한도는 현행 15%가 유지된다.

또 이해상충 가능성이 적은 연기금과 사모펀드(PEF)의 은행 소유를 허용키로 했다. 국민연금 등 연기금의 경우 금융당국의 승인을 받으면 금융자본으로 인정받을 수 있으며 PEF도 산업자본이 유한책임사원(LP)으로 30%를 초과해 출자한 경우(현행 10% 초과)에만 산업자본으로 인정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산업자본이 PEF를 통해 은행 투자 규모를 확대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금산분리 규제 완화를 반대하는 쪽에서 은행이 대기업의 사금고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를 하는 이유다.

외국계 은행의 국내 은행 인수 기회도 확대된다. 정부는 외국계 은행이 해외에서 지배하는 비금융회사의 자산이 2조원 이상인 경우 산업자본으로 분류하던 기존 규제를 개선해 대주주가 산업자본이 아닌 경우 해외 보유 자산을 산업자본 판단 기준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정부는 국내 은행이 자금을 차입할 수 있는 방법이 다양해져 대형화가 가능해지고 산업은행과 기업은행, 우리금융지주 등 정부가 지분을 가지고 있는 은행의 민영화에도 속도가 붙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다만 은행에 대한 산업자본의 영향력이 과도하게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한 방안도 함께 마련됐다.

산업자본이 은행 지분을 4% 초과해 보유한 최대주주이거나 경영에 참여할 경우 금융당국의 적격성 심사를 받아야 한다. 또 연기금이 은행을 인수하려면 은행과 제조업체를 동시에 소유하는 데 따른 이해상충 방지 장치를 마련해야 하며 금융당국의 검사권을 받아들여야 한다.

PEF가 은행 최대주주가 될 때도 금융당국의 사전 심사를 받아야 한다. PEF에 유한책임사원(LP)로 참여한 산업자본이 의결권 행사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할 경우에는 보유 중인 은행 지분을 1개월 내에 모두 매각해야 한다.

◆ 대기업 지주회사 전환 유도 = 정부는 보험 및 금융투자지주회사의 자회사 소유를 허용키로 했다. 이는 대기업의 지주회사 전환을 유도해 소유 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조치다.

보험 및 금융투자지주회사 전환 계획을 제출한 대기업은 금융회사의 비금융회사 지배금지, 순환출자와 공동출자 금지, 사업지주회사 금리, 자회사 최저 지분 보유 등의 규제를 7년간 유예받을 수 있다.

보험지주회사는 자회사 형태로 제조업체를 소유할 수 있다. 그러나 보험 자회사가 제조업체를 손자회사로 거느릴 수는 없다. 고객 자산을 제조업체에 쓸 경우 이해상충이 발생할 수 있고 보험사 건전성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금융투자지주회사는 증권 자회사가 제조업체를 손자회사로 둘 수 있도록 했다. 증권사의 경우 자기자본으로만 비금융회사에 투자할 수 있어 고객에게 피해가 전가될 가능성이 낮다는 판단에서다.

보험지주회사는 생명보험사와 손해보험사를 수직적 관계인 자회사와 손자회사로 둘 수 없으며 지분 100% 소유를 전제로 증손회사를 거느릴 수 있게 된다. 금융투자지주회사는 지분 100% 소유를 조건으로 증손회사와 고손회사까지 거느릴 수 있다.

금융지주회사에 적용되는 전반적인 규제도 완화된다.

자기자본의 100% 이내로 묶여있는 자회사 출자 한도가 폐지되며 금융지주회사의 해외 진출을 촉진하기 위해 해외 기업의 경우 지분의 30~50%만 보유해도 증손회사로 편입할 수 있게 했다.

자회사 지분 100%를 소유한 금융지주회사에 한해 적용되는 연결납세제도도 기준을 50% 이상으로 완화하기로 했으며 계열사 간 용역거래에 대해 부가가치세를 면제해주는 방안도 추진된다.

◆ "금융산업 위기 초래" 반대 여론 비등 = 정부의 금산분리 규제 완화 방안에 대해 금융산업의 건전성을 해칠 수 있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미국발 금융위기로 전 세계가 금융산업에 대한 규제 강화에 나서고 있는 시점에서 우리만 무분별하게 규제를 풀 경우 국내 금융산업의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김한기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경제정책팀 국장은 "지금은 미국발 금융위기로 실물경제까지 위협을 받고 있는 상황"이라며 "금융시스템과 감독체계에 대한 점검이 필요한 시점에서 무리하게 규제 완화에 나서는 것은 정부가 얼마나 이번 사태를 안이하게 인식하고 있는 지 보여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필상 고려대 교수도 "전 세계적으로 금융산업에 대한 구조조정이 이뤄지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제도 변화를 추진하면 시장의 혼란이 가중될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회사에 대한 산업자본의 영향력이 확대돼 금융산업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특히 금융산업의 중추인 은행이 대기업 자본에 좌우될 경우 자금 흐름이 왜곡되거나 부실화하는 등의 문제가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가 확대되고 있다.

이정희 민주노동당 의원은 "금산분리 규제가 완화됨녀 금융회사가 재벌의 사금고로 전락할 수 있고 경제 주체 간 형평성을 해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국내 은행은 지분이 분산돼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산업자본이 지분을 10%까지 보유하게 되면 사실상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문진영 기자 agni2012@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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