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패닉 상태에 빠진 금융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해 연일 대책을 발표하고 있지만 시장은 미동도 하지 않고 있다.
실물경제가 장기 침체로 접어들 것이라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정부가 유동성 지원 등 금융위기 진화에만 초점을 맞춘 대책을 쏟아내 시장의 신뢰를 잃고 있다는 분석이다.
23일 원·달러 환율은 3거래일 연속 폭등하면서 전일 대비 45.80원 오른 1408.80원으로 장을 마감했다. 환율이 종가 기준으로 1400원을 넘어선 것은 지난 1998년 9월23일 이후 10년 만에 처음이다.
증시도 연중 저점을 경신하는 등 혼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날 코스피 지수는 84.00포인트(7.48%) 떨어진 1049.71을 기록해 1000선 붕괴 초읽기에 들어갔다. 코스닥 지수도 26.85포인트 하락한 308.95로 마감됐다.
코스피 시장에서는 오전 9시49분 프로그램 매도 호가를 5분간 정지하는 사이드카가 발동됐으며 코스닥 시장도 오전 10시44분 올 들어 10번째로 사이드카가, 오후 1시5분에는 주식 거래를 20분 동안 중단하는 서킷브레이커마저 사상 세번째로 발동됐다.
이날 환율과 주가는 아르헨티나와 파키스탄이 국가부도(디폴트)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과 함께 전날 뉴욕 증시 폭락까지 겹치면서 하루 종일 출렁였다.
그러나 금융시장의 불안이 가라앉지 않는 더욱 근본적인 원인은 실물경제 하강 속도가 예상보다 빨라 글로벌 경제가 장기 침체로 빠져들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최원근 하나금융경영연구소 금융시장팀장은 "경기침체로 기업들의 실적이 악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주가 하락은 불가피한 현상"이라며 "기업의 수익성 개선을 위한 추가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 팀장은 "주가가 경기에 6개월 선행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빨라도 내년 4분기 이후에나 회복세가 나타날 것"이라며 "환율과 주가의 추세적인 회복을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정부가 현재 위기의 실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헛다리 짚는 대책을 내놓고 있다는 지적도 일고 있다.
이날 정부는 한국은행의 총액한도대출 규모를 6조5000억원에서 9조원으로 2조5000억원 증액하고 이를 다음달부터 적용키로 했다고 발표했다. 은행과 기업들의 자금난 해소를 위한 조치다.
이에 앞서 정부는 은행의 대외채무에 대한 지급보증, 건설사 유동성 지원 등 금융시장 안정대책을 하루가 멀다하고 발표했지만 시장의 반응은 언제나 기대 이하였다.
이에 대해 최 팀장은 "정부가 금융시장 쪽 위기를 심각하게 인식하고 금융위기 진화를 위한 대책을 내놨지만 사실 문제는 실물경제"라며 "정부가 시장의 신뢰를 잃고 있어 백약이 무효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고 말했다.
이대기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유동성 위기는 외환시장과 외화자금시장 양쪽에서 모두 발생했지만 정부 대책은 외화자금시장 안정에만 초점이 맞춰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긴급 유동성 공급으로 금융기관 간 거래로 이뤄지는 외환자금시장 위기는 급한 불을 끄게 됐지만 외환시장 위기는 여전히 진행 중이라는 것이다.
외환시장의 달러 공급 주체인 기업들이 글로벌 실물경제 침체 여파로 어려움을 겪고 있고 이같은 현상이 장기간 이어질 것으로 예상돼 환율 급등세를 단기간 내에 해결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 연구위원은 "실물경제 위기는 글로벌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어 정부 대책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며 "신용경색 위기도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만큼 언제든지 실물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재호 기자 gggtttppp@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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