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27일 임시 금융통화위원회를 소집해 기준금리를 전격 인하한 것은 실물경제 위기가 심상치 않은 수준으로 치닫고 있어 시장에 충격을 줄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대출금리 상승에 따른 가계와 중소기업의 이자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금리 인하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한은의 과감한 금리 인하가 금융시장 불안 해소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면서도 최근 실물경제 위기가 대외적인 요인에 기인한 만큼 제한적인 효과를 거두는 데 그칠 수 있다는 우려도 지우지 못하고 있다.
◆ 실물경제 '빨간불'…금리인하 카드 꺼내 = 한은의 임시 금통위 개최를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금통위 개최가 결정된 후에도 시장이 전망한 최대 금리 인하폭은 0.50%포인트 수준이었다.
한은이 파격적인 금리 인하에 나선 것은 예상을 뛰어넘는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시장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만큼 최근 실물경제는 심각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코스피 지수는 지난 24일 1000선이 무너졌고 원·달러 환율도 5거래일 동안 127.50원 오르는 등 폭등세를 이어가고 있다.
한은이 발표한 '3분기 실질 국내총생산' 통계에 따르면 전기 대비 성장률은 0.6%로 2004년 3월 이후 가장 낮았고 민간 소비도 0.1% 늘어나는데 그쳤다.
지난 9일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하했음에도 불구하고 대출금리가 계속 올라 가계와 중소기업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는 점도 금리 인하의 배경이 됐다.
이성태 한은 총재는 "경제활동이 빠르게 둔화되고 있고 고용도 급격히 줄고 있으며 가계와 중소기업의 원리금 상환 부담이 많은 상황"이라며 "한은이 더욱 확실하게 적극적으로 움직일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 추가 금리인하 시사 = 한은은 앞으로 기준금리를 추가로 인하할 가능성이 높다.
한은 관계자는 "금리를 0.75%포인트 내렸다고 금융시장과 실물경제가 안정을 찾을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며 "시장 상황에 따라 추가로 금리를 내릴 수 있지만 시기나 규모는 결정된 바 없다"고 말했다.
이 총재도 이날 금통위 개최 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내수가 상당히 빨리 둔화되고 있다"며 "수출도 계속 잘 될 것으로 자신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금융시장 불안이 완전히 가시지 않은 상황이어서 중앙은행이 여러가지 위험에 대비하는 것은 옳다"며 "그 쪽에 관심을 갖는 것이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고 말해 추가 금리 인하 가능성을 시사했다.
장재철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이번 기준금리 인하로 시장이 당장 안정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세계 각국의 중앙은행들이 릴레이 금리 인하에 나서고 있는 만큼 한은도 금리를 추가로 인하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 금융안정 기대…실물경제는 '글쎄' = 전문가들은 한은의 파격적인 금리 인하 조치가 금융시장 안정에 기여할 것으로 내다봤다.
배상근 한국경제연구원 수석연구원은 "지난 9일 한은의 기준금리 인하에도 대출금리와 자본시장 흐름은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며 "그러나 이번 조치는 규모가 크고 과감해 금융시장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배 수석연구원은 "모든 약에 부작용이 있듯 물가나 환율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지만 시장에 상징적인 의미를 부여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내릴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금융연구실장은 "기준금리 인하와 함께 다른 유동성 공급 대책을 함께 내놔 시장의 불안심리를 잠재우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며 "무엇보다도 가계와 중소기업의 이자부담을 직접적으로 줄이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위기에 빠진 실물경제에 직접적인 효과를 미치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나왔다.
장보형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국내 경제 위기는 글로벌 신용경색과 전세계 경기침체에 기인한 측면이 크다"며 "정부 당국이 어떤 대책을 내놔도 효과가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홍성국 대우증권 투자분석부 상무는 "다른 나라도 0.5~1.0%포인트 가량 금리를 내린 상황에서 이번 금리 인하로 큰 효과를 보긴 어렵다"며 "세계 경제가 다시 회복세로 돌아서지 않는 한 국내 실물경제 위기의 근본적인 해결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고 지적했다.
이재호 기자 gggtttppp@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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