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오바마와 친아버지 버락 후세인 오바마 시니어 |
오바마 의원은 1961년 8월4일 하와이주 호놀룰루에서 케냐 출신의 흑인 아버지와 캔자스주 출신의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자신을 스스로 '아프리카계 미국인'이라고 하는 오바마의 어린 시절은 순탄치 않았다. 부모의 결별로 친척들의 손에서 자라기도 했고 어머니가 인도네시아인과 재혼한 이후 유년시절의 4년 간을 인도네시아에서 살기도 했다.
그는 자신이 30대 초반에 쓴 회고록 '내 아버지로부터의 꿈'을 통해 청소년 시절 인종 문제로 정체성의 갈등을 겪기도 했다고 털어놓았다.
어릴 때 그는 혼혈아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아버지가 없다는 사실 때문에 좌절한 그는 “10대 때 내가 누구인지 잊기 위해 술과 마리화나, 코카인을 사용했다”고 자서전에서 밝혔다. 이에 논란이 되기도 했지만 그의 목소리로 녹음된 자서전 오디오북은 2006년 그래미상 시상식에서 ‘최고 육성 앨범’상을 받았다.
오바마 의원은 고교 졸업 후 로스앤젤레스로 건너가 2년간 옥시덴털대학에 다니다 뉴욕의 컬럼비아대로 옮겨 국제정치학을 공부했다. 1983년 대학 졸업 후 시카고의 저소득층을 위한 시민운동을 시작하면서 사회문제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사진: 오바마의 학창시절 |
컬럼비아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한 후로 그는 하버드 법대에 들어갔고 권위있는 법률 학술지 '하버드 법률 리뷰'의 첫 흑인 편집장을 지냈다.
뉴욕 할렘과 시카고의 빈민지역에서 활동가로 일하기도 했던 그는 1990년대 초에 일리노이주의 인권 변호사로 명성을 높이며 지역에서 기반을 다진 뒤 1996년 일리노이주 주 상원의원에 당선되면서 정치에 본격 발을 들여놓았다.
케냐 출신 흑인 아버지와 미국 백인 어머니, 호놀룰루와 자카르타에서의 유년기, 아이비리그 교육 등 복잡한 배경을 가진 그는 1960년대 흑인 지도자들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정치력을 키워왔다.
주 상원의원을 3번 연임한 그는 2004년 여름 보스턴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인종에 관계없이 미국인은 모두 하나라는 내용의 기조연설로 전국적인 지명도를 얻었고, 이후 일리노이주 연방 상원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해 70%의 기록적인 득표율로 당선되면서 중앙 정치무대에 화려하게 등장했다.
그는 미 역사상 5번째 흑인 상원의원이며, 유일한 흑인 현직 상원의원이다.
사진: 오바마는 유일한 흑인 현직 상원의원이다. |
한편 오바마는 시카고대학병원 대외업무 담당 부원장인 부인 미셸(44)과의 사이에 두 딸을 두고 있다.
프린스턴대에서 사회학을 전공한 뒤 하버드 법대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은 미셸 오바마는 남편의 선거자금 모금에 발벗고 나서는가 하면 오바마 의원의 강력한 경쟁자인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을 맹렬히 공격하기도 하는 등 다른 정치가 아내의 틀을 벗어나는 신세대 미국 여성상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김나현 기자 gusskrla@ajnews.co.kr< '아주경제' (ajnews.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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