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각국 정상들은 5일 미국의 대선에서 버락 오바마 후보가 당선되자 유럽과 미국 간의 동반자 관계를 일제히 강조했다.
조지 부시 대통령 집권 8년 동안 미국의 일방주의 외교로 대서양 양안 관계에 냉기류가 흘렀던 점을 감안한 반응으로 풀이됐다.
특히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계기로 영국을 제외한 유럽 각국은 미국과 소원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자크 시라크 전 프랑스 대통령은 4년 전 재선에 성공한 부시 대통령에게 일주일 뒤에야 축하 전화를 했었다. 그런 프랑스는 작년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 취임 후 미국과의 관계개선에 나섰다.
유럽의 정상들은 오바마 후보의 당선을 계기로 이런 미국의 일방통행식 외교가 막을 내리고 유럽과 미국의 협력관계가 크게 강화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미국 주도의 외교무대에서 뒷전에 밀리곤 했던 유럽이 더 이상 종속적인 역할에 머물지 않고 미국과 대등한 입장에서 적극적인 리더십을 발휘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도 보인다.
EU 소속 27개 회원국 외무장관들이 4일 미국의 새 행정부와 EU 사이에 새로운 협력관계를 강화하는 내용을 골자로 6쪽 분량의 서한을 채택한 것도 미국의 일방주의 외교에 쐐기를 박고 함께 협력하자는 기대와 의지의 표현으로 여겨졌다.
EU 순회의장국인 프랑스의 베르나르 쿠슈네르 외교장관은 "이제 세월은 변해 한 나라가 독자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나갔다"면서 "EU는 더 이상 부수적인 역할에 그치기를 바라지 않는다"라고 말해 이를 뒷받침했다.
당장 EU 측은 오는 15일 워싱턴에서 열리는 G20회의에서 글로벌 금융시장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국제 금융체제의 개편안을 제시, 목소리를 높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EU는 또한 미국이 자국산업 보호에 관심을 기울이느라 지구온난화에 대처하기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에 적극성을 보이지 않는데 대해서도 압박을 가할 것으로 보인다.
EU의 이런 기류는 최근들어 러시아와 서방 간에 신냉전 구도가 형성되고 있다는 관측과 맞물려 향후 국제질서의 재편 여부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이와 관련, 유럽외교관계이사회(ECFR)의 대니얼 코르스키 선임연구원은 "오바마 당선자도 유럽과의 관계에서 우호적인 입장을 견지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프랑스의 한 외교관은 "유럽은 다극적 세계 질서 속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주역으로 자리매김하려고 한다"면서 "이는 새로운 현상"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유럽은 오바마 당선으로 미국의 대외 정책에 급격한 변화가 나타날 것으로 성급한 기대는 해서는 안된다고 정치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오바마 당선인이 아프가니스탄 사태와 관련해 동맹국들의 추가파병을 요구하고 있는 데서도 이런 기류를 읽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오바마는 지난 7월 유럽을 순방하는 자리에서 "프랑스와 독일,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동맹국들이 아프가니스탄에 더 많은 군대를 파견하는 것이 미국과 서방에 도움을 줄 것"이라고 추가파병 필요성을 언급했다.
사르코지 대통령도 "우리는 아프간에서 실패하는 것을 받아들여선 안된다"라면서 아프간 파병 확대를 결정했지만 다른 유럽국가들은 추가파병을 거부하고 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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