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후보가 미국의 대권을 거머쥐고 민주당 정권이 들어서면서 한국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당장은 금융위기의 진원지에 새로운 리더십이 등장함에 따라 정책의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경제 살리기에 진력하면서 긍정적인 영향이 기대된다.
세계 최대시장인 미국 경제가 신속하게 금융시스템을 복구하고 체력을 회복하면 한국은 물론 세계경제가 바닥을 차고 올라갈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시간이 흐를수록 정책의 색깔이 뚜렷해지면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재협상론이 힘을 받는 것은 물론 과거 만큼은 아니겠지만 보호주의 무역 성향이 제한적으로나마 고개를 들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정치적으로는 북미 관계가 속도를 낼 경우 북핵 문제의 진전과 한반도 정세의 해빙으로 이어지면서 외국인 직접투자를 끌어들이고 우리 국가신인도를 높이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섞인 관측도 적지 않다.
◇ 금융시장 안정에 도움될 듯
8년만에 민주당 정권이 재등장했지만 현재로서는 경제 정책의 급격한 변화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로부터 촉발된 금융위기에 대한 뒤처리가 우선시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정치적 불확실성을 해소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권력의 무게추는 힘빠진 조지 부시 대통령으로부터 오바마 당선자로 빠르게 이동하면서 금융위기 돌파를 위한 정책에 힘이 실리게 된다. 그만큼 경제위기의 수습을 최대한 앞당길 수 있다.
박재하 한국금융연구원 부원장은 "금융위기를 만든 정권이 수습까지 도맡아 하면 신뢰성에 문제가 생기는데 새 정권이 들어서면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며 "그동안 국내 은행들이 해외에서 돈을 빌리지 못해 유동성 문제가 발생했는데 신용경색이 완화되면 이런 문제들도 개선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문가들은 특히 오바마가 부시 정권의 유동성 지원 정책들을 이어가되, 바꾼다 하더라도 미세조정에 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민주당 측이 지난달 구제금융법안 추진에 더 적극적이었다는 점은 이런 관측에 무게를 실어준다.
더욱이 오바마 당선자가 금융시장에 대한 감시 강화 등 정부 개입을 통한 시장 안정 및 개선에 강한 의지를 갖고 있고 이에 따라 제한적이나마 추가 구제조치가 나올 가능성은 우리 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한미 간 300억 달러 규모의 통화 스와프 체결 이후 서서히 활기를 되찾고 있는 국내 금융시장의 회복세도 빨라질 수 있으며 증시에도 호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이영곤 하나대투증권 연구원은 "미 대선과 관련된 불확실성이 해소된다는 점에서 기본적으로 증시에도 호재"라며 "다만 미국의 보호무역이 강화할 가능성이 있어 수출기업의 주가에는 부정적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오바마 당선 효과는 금융시장에 미리 반영됐기 때문에 그 효과는 제한적이라는 분석도 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오용협 국제금융팀장은 "금융부문에서는 지금까지의 흐름을 크게 벗어나는 정책이 나올 것 같지 않다"며 "오바마 당선이 기정사실화돼 먼저 반영된 측면이 있어 큰 변화는 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 강달러.긴축재정 변수
금융위기가 진정 국면으로 들어설 경우 오바마 정부의 거시경제 정책방향은 부시 행정부와 뚜렷한 차이를 드러내면서 우리 실물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달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과거에 비해 줄어들기는 했지만 지난해 우리나라 전체 수출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12.3%로 중국에 이어 두 번째다. 여전히 미국 경제가 우리나라에 미치는 영향은 막대한 상황이다.
문제는 오바마 행정부가 내세우는 공약이나 민주당의 성향이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복합적이라는데 있다.
민주당이 전통적으로 달러 강세 입장을 고수해오고 있는 만큼 가격 경쟁력 측면에서 국내 수출 기업에 유리하게 작용할 가능성도 높은 것으로 분석된다.
다만 금융위기로 안전자산에 대한 선호현상이 발생하면서 글로벌 달러 강세가 지속되고 있고 원.달러 환율 역시 급등하고 있는 만큼 강 달러 현상이 과거처럼 국내 수출기업에 유리하게 작용하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반면 눈덩이처럼 불어난 재정적자는 부정적 요인이다. 미 의회예산처에 따르면 미국의 재정적자는 이미 4천억 달러가 넘었고 8년 전 3조4천억 달러였던 부채도 5조 달러를 넘어서 향후 10년 간 8조 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오바마 정부가 증세와 긴축을 통해 재정 건전성을 높이려 하면 우리에겐 부정적이다. 공격적인 경기부양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허리띠까지 졸라매면, 미 경제의 성장률이 당분간 낮은 수준을 유지하면서 우리 경제에는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 보호무역 재등장 우려
가장 부담스러운 대목은 민주당의 보호무역주의 성향이다.
이런 성향은 과거 클린턴 정부가 직전 공화당 정부에서 폐기한 '슈퍼 301조'를 부활시켰고 반덤핑 관세 및 상계관세 징수액을 미국내 제소당사자에게 나눠주는 내용의 버드 수정법이 민주당 측에서 입안된 점만 봐도 알수 있다.
더욱이 노조에 기반을 둔 오바마 당선자의 경우 자동차 산업에 있어서 한미 간 무역불균형 해소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온 점은 특정 시기에 자동차 교역 불균형이 한미 통상현안으로 재등장할 가능성을 시사해준다.
특히 실물경제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미국내 자동차, 철강, IT(정보기술) 등 주요산업에서 대량 해고나 구조조정 바람이 불 경우 인기에 영합하기 위해 바깥으로 화살을 돌릴 가능성도 우려되고 있다.
아울러 오바마의 섀도 캐비닛 가운데 상무장관이나 무역대표부 대표의 후보군에 비교적 젊은 학자들이 거론되고 있다는 점도 우려되는 대목이다. 아무래도 관료보다는 현실감각이 떨어지지 않겠느냐는 분석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이 다시 보호무역 경향을 띠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많다.
정부 관계자는 "자유무역이 대세로 굳어진 상황에서 보호주의로 돌아가면 전세계 경제가 더욱 가라앉게 될 것"이라며 "일부 품목에서 보호주의 성향이 드러날 수 는 있지만 보호무역으로 돌아갈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 북미 관계 속도 내면 국가신인도에 청신호
대북 정책의 평화적 해결을 추구하는 오바마 후보의 당선은 한반도 정세 안정, 지정학적 리스크 감소 등으로 우리나라의 국가신용등급에도 긍정적 효과를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 직전 민주당 정권 말기인 2000년에는 북한의 조명록 특사가 워싱턴을 찾아 빌 클린턴 대통령과 회담 이후 북미 공동코뮈니케가 발표되고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면서 한반도에 데탕트 바람을 몰고왔었다.
오바마 당선자도 대북 직접 대화를 강조하고 있는 만큼 정체상태인 북핵 문제에 급진전이 이뤄질 경우 북미는 물론 남북관계도 개선될 가능성이 높다. 결과적으로 우리 경제를 짓눌러온 한반도 리스크가 크게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실제 과거에 비해 부각되는 정도는 줄었지만 여전히 스탠더드앤푸어스(S&P), 무디스, 피치 등 국제 신용평가사들은 우리나라의 신용등급을 결정하는 핵심 변수로 북한 리스크를 꼽아 왔다. /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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