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3대 신용평가사 중 하나인 피치가 10일 우리나라의 국가 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Stable)에서 '부정적'(Negative)으로 하향 조정하자 국내 경제에 대한 우려가 다시 증폭되고 있다.
글로벌 경기침체가 본격화하면서 대외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로서는 신용등급 조정이 불가피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아시아 6개국 중 우리나라와 말레이시아만 등급 전망이 낮아진 것은 국내 경제의 기초체력(펀더멘털)에 대한 외부의 시각이 호의적이지 않다는 것을 나타낸다.
국내는 물론 전 세계 경제가 한동안 침체기를 겪을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내년 신용평가사들의 연례 평가에서 신용등급 자체가 하향 조정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실물경제 회복을 위한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 글로벌 경기침체 반영 = 피치는 이번에 17개국에 대해 신용등급 평가를 진행했다. 불가리아와 카자흐스탄, 헝가리, 루마니아 등 4개국은 신용등급 자체가 내려갔고 한국을 비롯한 7개국은 등급 전망이 하향 조정됐다.
우리나라의 신용등급 전망이 내려간 것은 미국과 유럽, 일본 등 선진국들의 경기가 침체 국면에 들어서면서 신흥 국가들도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피치는 세계경제 전망 보고서에서 선진국 경제가 침체기로 진입하면서 전 세계 무역이 위축되고 있고, 상품가격 하락으로 가계·기업의 소비 및 투자가 감소하고 있으며, 글로벌 유동성 축소로 이머징마켓으로 위험이 전이될 것이라는 점 등을 들어 글로벌 경제가 경기침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고 평가했다.
특히 중국과 대만, 태국, 인도 등 아시아 4개국은 등급 전망이 유지됐지만 우리나라와 말레이시아만 등급 전망이 하향 조정된 것은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피치는 우리나라에 대해 "풍부한 외환보유액을 감안하면 유동성 우려는 크지 않지만 금융권의 차입 감소와 자산건전성 악화로 대외 신인도가 나빠질 수 있다"고 평가했다.
◆ 정부 "문제 없다" = 정부는 피치의 이번 조치에 대해 실물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거의 없을 것이라며 진화에 나섰다.
최종구 기획재정부 국제금융국장은 이날 과천청사 기자실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신용등급 전망이 낮아진 것은 우리 경제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세계 경제 전망이 어둡기 때문"이라며 "신용등급 자체는 유지됐기 때문에 해외차입 비용에는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 국장은 "요즘 같은 상황에서 신용등급이 올라가는 국가는 없을 것"이라며 "그나마 신용등급이 유지되고 전망만 낮아졌다는 점에서 위안을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심리적으로 안 좋을 수 있지만 눈에 띄게 불리해지는 것은 없다"며 "지난 2003년 북한이 핵확산금리조약(NPT)을 탈퇴했을 때도 스탠더드 앤 푸어스(S&P)에서 등급 전망을 하향 조정했지만 나중에 원상복귀됐다"고 덧붙였다.
최 국장은 "신용등급이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거시경제의 안정을 유지하고 대외 부문의 건전성을 확보해야 한다"며 "환경이 어려워진 것은 사실이지만 앞으로도 주어진 여건에서 그 방향으로 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피치도 정부의 외화유동성 공급, 은행 대외채무 지급보증, 거시경제 부양책 등을 상당히 긍정적으로 평가했다"며 "이러한 조치들을 실효성있게 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 다른 평가사 특별한 동향 없어 = 무디스와 S&P 등 다른 주요 신용평가사들은 우리나라의 신용등급과 관련된 특별한 동향이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재정부 관계자는 "지난 10월 말 국가 신용등급 및 등급 전망을 유지하기로 한 후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며 "향후 이렇다 할 일정도 잡히지 않은 상태"라고 전했다.
다만 피치의 이번 조치가 매년 2~4월 이뤄지는 연례 평가 전에 나온 만큼 무디스와 S&P 등도 세계 경제의 변화를 반영해 우리나라의 신용등급 및 등급 전망에 대한 재검토에 나설 수 있다.
특히 대외 의존도가 높은 국내 경제의 특성상 글로벌 경기침체 여파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점은 이러한 전망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실제로 S&P는 지난달 우리나라의 신용등급을 유지하면서 "한국 은행들이 수익성과 자산건전성에서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다"며 "정부 정책이 실패한다면 한국 경제와 정부 재정이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상황에 따라 등급을 하향 조정할 수 있다는 의미다.
장보형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피치의 등급 전망 하향 조정이 당장 국내 실물경제에 큰 영향을 주지는 않겠지만 다른 신용평가사까지 등급 조정에 나선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재호 기자 gggtttppp@ajnews.co.kr
< '아주경제' (ajnews.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