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자유무역협정) 비준동의안의 연내 국회 처리가 더욱 불투명해지고 있다.
여야 의원들로 구성된 국회 외교통상통일위 방미단이 일주일간 미국내 분위기를 탐색하고 23일 귀국했지만 여야 이견이 전혀 좁혀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번 방미는 한국의 조기비준으로 미 의회의 인준을 견인해야 한다는 한나라당과 피해산업 대책을 마련한 뒤 처리해도 늦지 않다는 야당이 맞선 가운데 이뤄져 일정부분 `접점찾기'가 기대됐지만 각 당의 입장만 재확인한 결과를 낳았다.
이런 기류는 방미단에 속한 여야 3당 의원들의 진단에 고스란히 묻어나왔다.
한나라당 황진하 의원은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미국은 금융위기, 이라크 및 아프간 사태, 북핵 문제 때문에 FTA를 우선 처리하는 것은 어렵다는 분위기였다"며 "하지만 한국이 먼저 비준한다는 데 반대하는 인사는 거의 없었다"고 전했다.
그는 나아가 "한국이 먼저 비준해야 미국내 찬성론자들이 미 행정부와 의회에 독촉하지 않겠느냐고 말하는 인사들도 있었다"며 "피해산업에 대한 예산을 빨리 활용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부터 비준해야 한다"며 `선(先) 비준' 논리를 폈다.
그는 부시 정부가 오바마 측의 자동차업계 지원 요청을 수용하는 대신 한국 등을 상대로 한 FTA를 처리하는 `빅딜' 가능성이 미국 재계와 공화당, 대표적인 싱크탱크인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를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다는 점도 소개했다.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은 "저희가 만난 모든 의원들은 이구동성으로 한미 FTA는 반드시 비준돼야 한다고 했다"며 "하지만 지금은 금융위기 등으로 우선순위에서 밀리기 때문에 내년 상반기에나 논의될 수 있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박 의원은 "신뢰의 상실없이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점에 대해선 정파와 무관하게 일관되게 얘기했지만 우선순위에서 밀리기 때문에 미국에 시간을 주는 것이 오히려 한국에 더 나은게 아니냐는 목소리가 많았다"고 했다.
따라서 외통위 상정은 오바마 행정부의 `라인업'이 완료된 이후인 내년으로 넘겨야 한다는 입장이 이번 방미로 더욱 확고해졌다고 그는 밝혔다.
민주당 문학진 의원의 진단은 더 혹독했다. 문 의원은 "우리가 얘기를 꺼내니까 답하는 것이지 미국은 한미 FTA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었다"고 했다.
그는 "미국은 금융위기로 제 코가 석자인 상황으로, 우리가 비준하면 압박이 될 것이란 주장은 어불성설이었다"며 "재협상을 언급한 인사는 없었지만 우리로선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 준비하는 게 중요하지 선처리가 급한 건 아니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별도 특위구성을 통한 재논의 입장에는 변함이 없으며 외통위 상정에도 응할 수 없다는 게 문 의원의 생각이다.
결국 미국이 금융위기 등으로 한미 FTA 비준동의안 논의 시점을 일정기간 미룰 수 밖에 없다는 점을 공통으로 확인했지만 한나라당은 그와 무관한 조기 비준을, 민주당은 대책 마련이 우선되어야 함을, 선진당은 미국과 보조를 맞출 필요성을 제기하면서 3당간 엇박자가 계속되고 있는 셈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다급해진 건 한나라당이다. 박 진 위원장이 "우리가 먼저 비준하면 미국 인준에 모멘텀을 줄 것"이라고 힘을 실었지만 3당 간사 협의를 통해 일정을 조율해 나간다는 입장만을 밝히고 있을 뿐 뾰족한 수가 없는 형편이다.
특히 내년도 예산안의 원만한 처리를 위해선 야당의 협조가 필수인데다 한미 FTA 합의 처리를 공언한 마당에 `단독 처리'하기엔 부담이 적지 않기 때문에 이 문제는 당분간 지리멸렬한 공방만이 오갈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