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화대출자들이 환율 상승에 따른 원금 및 이자 부담과 함께 대출을 알선해 준 보험설계사의 권유로 든 보험상품의 손실 확대로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조달 비용이 낮은 엔화로 대출해주고 높은 이자를 챙기고 있는 은행들과 대출 중개 과정에서 커미션을 받고 보험상품 가입까지 얻어 낸 보험설계사들 사이에서 대출자만 희생양이 됐다.
◆ 은행-보험설계사, 대출 확대 손잡아 = 지난 2005~2007년 저금리 엔화가 국내에 대거 유입되자 은행들은 예대마진(예금금리와 대출금리 간 격차)을 높이기 위해 엔화대출을 크게 늘렸다.
대출 확대를 위해 신용등급이 높은 개인 사업자를 대상으로 공격적인 영업 활동을 펼쳤다. 이 과정에서 보험설계사나 독립법인대리점(GA) 소속 모집인들에게 커미션까지 제공하며 대출 알선을 부탁하기도 했다.
엔화대출을 소개해주고 은행으로부터 커미션을 받은 한 보험설계사는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엔화대출 한 건당 대략 200만원 정도를 받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보험설계사 입장에서도 상품 소개를 빌미로 보험 가입을 유도할 수 있어 엔화대출 중개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양측이 모두 이득을 챙길 수 있는 윈-윈 시스템이었던 셈이다.
실제로 최근 한국은행에 행정소송 제기를 준비하고 이성태 한은 총재 퇴진 운동을 벌이고 있는 한 엔화대출 피해자 모임의 경우 400명 가량의 회원 중 95% 이상이 엔화대출 소개를 받고 보험상품에 가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모임 회원으로 가입한 정 모씨는 "보험설계사 소개로 엔화대출로 갈아타면서 이자를 250만원 가량 절감했는데 차액 만큼 보험에 가입해달라는 요구를 받았다"며 "월납 보험료가 200만원 가량인 변액 유니버셜 보험에 들었다"고 말했다.
◆ 환율 상승·보험 손실로 대출자 이중고 = 지난 9월 미국발 금융위기가 터진 후 원·엔 환율이 폭등하고 주가가 급락하면서 대출자들의 피해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지난해 말 800원대 수준이던 원·엔 환율은 올 들어 1000원대를 돌파한 후 최근에는 1600원에 육박하고 있다. 일년 동안 2배 가까이 뛴 셈이다.
환율이 오르면서 원금과 이자 부담이 가중되면서 상환을 앞두고 있는 대출자들은 파산을 걱정해야 할 상황이다.
특히 당초 10년 동안 만기 연장이 가능한 줄 알고 가입한 대출자들은 지난해 한국은행이 만기 규제를 강화하는 바람에 피해를 보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한 무역업체 대표는 "올 들어 한은이 만기를 2년 가량 연장해줬지만 2년 후에 환율이 얼마나 낮아지겠느냐"며 "가입 당시에는 만기를 10년까지 연장할 수 있다고 했는데 완전히 속았다"고 말했다.
실제로 하나은행의 엔화대출 상품인 '프리 커런시 론'의 대출 약관에는 1년 단위로 최장 10년까지 만기 연장이 가능하다고 명기돼 있다.
만기 연장시 은행이 추가 담보와 가산 금리를 요구하는 것도 문제다.
서울 동두천에서 섬유 관련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정 모씨는 "만기 연장시 은행이 추가 담보를 요구했지만 중소기업 운영하면서 추가 담보가 있을 턱이 있느냐"며 "한은이 은행들에 엔화 조기 상환을 압박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대출자들은 최근 주가 폭락으로 대출 가입시 함께 계약한 보험상품 손실이 커지면서 또 다른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엔화대출을 알선한 보험설계사들이 주로 판매한 상품은 변액 유니버셜 보험으로 보험료의 20~30% 가량이 펀드 등에 투자된다. 주가가 떨어지면 원금 손실이 발생할 수 있는 구조다.
엔화 대출자 모임 고문인 김 모씨는 "정액 지급되는 연금보험 가입을 원했으나 보험설계사가 임의대로 변액 보험을 계약했다"며 "대출만으로도 힘든데 보험 손실까지 커지니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이재호 기자 gggtttppp@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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