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화대출자 전방위 압박에 한 발 물러서
한국은행이 외화대출 상환기한 제한을 폐지하기로 했다.
원·엔 환율 폭등과 한은의 대출 만기 규제로 피해를 본 엔화대출자들이 한은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하고 이성태 한은 총재의 퇴진을 요구하는 등 집단행동에 나서자 이를 무마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한은은 운전자금 명목으로 외화대출을 받은 대출자에 한해 상환기한 제한을 없애기로 했다고 2일 밝혔다. 이에 따라 대출자들은 은행과 맺은 계약대로 대출 만기를 자유롭게 연장할 수 있게 됐다.
이원준 한은 국제기획팀 과장은 "그동안 외채가 급증하는 바람에 외화대출에 용도 제한을 두고 만기를 규제해왔다"며 "용도 제한 덕분에 외채가 많이 줄어든데다 최근 환율이 비정상적으로 올라 만기 규제를 없애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이 과장은 "지난 10월27일 외화대출 만기를 1년 연장하기로 했지만 그 정도로는 부족하다고 판단해 11월 중순부터 만기 규제를 철폐하는 방안을 검토하기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금융권에서는 한은이 엔화대출자의 집단행동을 막기 위해 외화대출 상환기한을 폐지한 것으로 보고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엔화대출자들이 온라인 상에서 모임을 만들고 소송 제기와 한은 총재 사퇴 시위 등을 준비하자 한은 측이 당황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동안 엔화대출자 모임은 당초 만기를 10년까지 연장할 수 있다는 조건으로 은행과 대출 계약을 맺었으나 한은이 대출 만기 연장을 규제하는 바람에 큰 손실을 입었다며 한은에 만기 규제 철폐를 요구해왔다.
원·엔 환율이 1년 동안 2배 가량 급등해 상환해야 할 원금과 이자가 크게 늘어난 상황에서 만기를 연장할 수 없게 되자 피해를 봤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한은은 엔화대출 만기를 이미 2년 정도 연장했기 때문에 추가 연장 계획은 없다며 소송을 건다면 법적 대응까지 불사하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엔화대출자들이 이성태 한은 총재 퇴진을 위한 시위까지 계획하자 지난달 27일 엔화대출자 모임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집단행동 자제를 요청하는 등 회유에 나선 끝에 결국 상환기한 폐지를 결정하게 됐다.
한편 엔화대출자들은 한은의 결정에 대해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엔화대출자 모임을 이끌고 있는 정종철 공동대표는 "원금과 이자가 크게 불어난 상황에서 대출 만기를 연장할 수 있게 돼 다행"이라며 "한은이 대출자들의 요구사항을 들어줘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재호 기자 gggtttppp@ajnews.co.kr
< '아주경제' (ajnews.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