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파일] 정부가 악역 맡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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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12-03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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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같은 경제위기 상황에선 정부가 앞장서 부실 기업 구조조정을 밀어붙어야 한다. 생존 가능성이 희박한 은행이나 건설사 구조조정을 업계가 반발한다고 미적거려선 안 된다."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직장인 둘 이상 모인 곳이면 이런 대화가 오가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너무 늦기 전에 정부가 악역을 맡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실제 정부가 아닌 대주단 주도 구조조정이 지지부진하면서 건설주와 조선주를 중심으로 주식시장도 무기력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건설주와 조선주는 11월초 정부 구조조정 방침 발표로 반짝 강세를 보였지만 이달까지 추진 실적이 기대를 한참 밑돌면서 일제히 약세로 돌아섰다.

대주단협의회에 따르면 대주단 가입을 신청한 건설사는 3일 현재 29곳에 불과하며 전달보다는 고작 5곳 늘어나는데 그쳤다. 업계는 이보다 훨씬 많은 건설사가 대주단에 참여해야 할 만큼 재무상태가 극도로 불안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어느 기업이 살아남고 어느 기업이 사라질지 확실히 정해져야 투자에 나설 수 있다. 구조조정이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함으로써 시장에 불확실성이 여전한데 투자를 권한다는 게 무리다.

이같은 시장상황을 고려한 것인지 전광우 금융위원장은 이번주 들어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당시와 유사한 기업구조조정위원회를 민간 중심으로 구성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만시지탄(晩時之歎)이란 느낌이 없지 않지만 지금이라도 부실 기업 구조조정에 속도를 낼 수 있다면 반가운 일이다.

시민단체인 경제개혁연대조차도 정부가 구조조정기구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고 발표하자 살릴 수 있는 기업과 그렇지 못한 기업을 가려 회생 또는 퇴출을 신속하게 결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며 반겼다. IMF 환란 당시처럼 기업 구조조정기구를 도입해 옥석을 가려낸다면 시장에 만연한 불확실성이 크게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가 부실 기업 구조조정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책임 소재가 불확실한 민간기구를 중심으로 기업구조조정위를 만들겠다는 것은 다시 검토할 필요가 있다. IMF 외환위기 무렵인 1998년에도 민간 기구인 기업구조조정위를 만들었지만 수많은 부실 기업에 대한 구조조정을 감당할 능력이 없어 결국 금융감독위원회 산하 구조개혁기획단이 워크아웃 작업을 주도했다.

경제개혁연대는 외환위기 시절 IMF가 구조조정기구를 청와대 산하에 설치할 것을 권고했을 때 당시 김대중 정부가 공식적인 개입을 부담스럽게 여겨 거절했다가 조정능력 약화로 막대한 사회적 비용이 발생했던 점을 상기시켰다. 이 결과 부실 기업주에 대한 책임 추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기업은 죽어도 기업주는 산다'는 도적적 해이 만연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금융위가 설립을 검토하고 있는 구조조정기구도 10년 전 기업구조조정위가 보여준 한계를 다시 드러낼 가능성이 높다. 민간인으로만 이뤄진 기구가 채권자와 채무자는 물론 다수 채권자 사이 이해충돌 문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하기는 어렵다.

근본적인 한계를 알면서도 정부가 뒤에 숨어 조정하는 실수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 강력하고 선제적인 구조조정 작업을 펼칠 때에만 얼어붙은 투자심리는 살아날 것이다.

조준영 기자 jjy@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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