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 건전성 확충에 비상등을 켠 시중 은행들이 정부의 금융정책에 압박을 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은행을 압박하기 보다는 여러 채널을 통해 정책 시행에 나서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5일 은행권에 따르면 미국발 금융위기로 국내 은행들의 자본 건전성이 크게 악화되어 12.31%(2007년 말 기준)였던 BIS(국제결제은행) 자기자본비율은 올 들어 10.79%(9월 말 기준)까지 떨어졌다.
은행들은 BIS비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올들어 2007년(2조9000억)의 2배에 이르는 6조1000억~6조5000억 원의 후순위채를 발행했거나 발행할 예정이다. 상황에 따라서는 10조 원까지 규모가 확대될 전망이다.
삼성경제연구소는 "기업대출을 줄이지 않으면서도 현재 여건에서 자기자본을 늘리기 위해서는 은행들이 후순위채를 발행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서 "금융시장 악화로 증자를 통한 기본자본 증액에 나서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최근 경제 여건이 나빠 증자가 여의치 않아진 은행들이 채무부담을 져야하지만 자기자본에 포함되는 후순위채에 열중할 수 밖에 없다는 얘기다.
하지만 정부는 은행의 생존노력에 금융정책과 기업대출을 이유로 압박을 가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 1일 채권안정펀드 조성을 위해 은행에 총 8조 원의 분담금을 낼 것을 지시했다. 1차로 시중은행이 내야할 금액은 국민 1조300억, 우리 8700억, 신한 7900억, 농협과 하나가 각각 7500억, 5000억 원으로 적잖은 부담을 떠안게 됐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중위권 은행이 부담하는 채안펀드 출자액은 증권사 전체 출연금보다 많다"며 "한국은행이 50%를 지원한다고 해도 채안펀드 출자가 부담되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금융통화위원회는 기준금리를 지난 10월 1%, 11월 0.25% 인하해 시장 유동성 확보에 나섰지만 은행들이 신속하게 대출금리를 낮추지 않자 대통령이 직접나서 은행을 비난하며 여러 차례 구두압박에 나섰다.
이에 신한은행 관계자는 "기준금리를 낮춰도 시장에 반영이 되는 데에는 시간차가 생길 수 밖에 없고 기준금리 인하가 반드시 대출금리 인하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반발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정부가 은행에 분담금을 요구하거나 중소기업 대출을 강요하고 있다"며 "은행들은 생존 기준인 BIS비율 10%를 맞추기 위해 대량의 후순위채를 발행하고 있는데 정부가 발목을 붙잡고 있다"고 불만을 나타냈다.
정부와 금융당국은 은행의 부실채권을 환매조건부채권(RP) 형태로 매입해 자본 건전상을 지켜준다며 중소기업 대출을 확대하라는 입장이지만 은행권의 불만은 가시지 않는다.
정부가 은행들의 BIS 비율을 높이기 위해 공적자금을 투입하면 과도한 경영 간섭, 대외 신인도 하락이 불보듯 뻔한 일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도 은행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강문성 하나금융연구원 금융산업팀 연구원은 "정부가 중소기업 지원을 이유로 은행을 압박하는데 중소기업을 직접 지원할 수 있는 장치들을 이용해야지 정부가 은행을 압박하는 것은 옳지 않다"면서 "정부가 모든 책임을 떠 안을 것도 아니면서 정책적인 부분으로 압박해서는 안 된다"고 최근 정부 행보를 지적했다.
임승주 교보증권 연구원도 "은행의 자체적으로 BIS 비율 확충을 하기도 어려운 마당에 중소기업 대출을 해주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며 "정부가 중소기업 부실채권 매입이나 실물경제에 직접지원하는 것이 오히려 빠를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또 "정부가 은행을 걸쳐 자금 흐름을 유도하고 있는데 다른 채널을 통해 자연스레 기업들에 돈이 들어갈 수 있도록 해야한다"며 "이런 흐름이 활성화되면 은행도 따라오게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전효찬 삼성경제연구원 거시경제실 수석연구원은 "정부가 중소기업진흥공단 등을 통해 중소기업을 지원할 수도 있겠지만 은행을 통해 하는 것이 보다 폭 넓은 기업을 대상으로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정부입장에 수긍하면서도 "하지만 은행에 막무가내로 중소기업 대출을 압박하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유경 기자 ykkim@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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