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들은 기업 구조조정에 나서야 하는 상황이지만 적극적이지는 않은 상황이다.
8일 금융계에 따르면 은행들은 기업구조조정에 대비해 조직 개편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적극적으로 옥석을 가리는 작업에 나서지 않고 있다.
한계기업을 퇴출시켰다가 도미노 부도 사태가 발생하면 은행의 수익성과 건전성에 타격이 오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기업 지원에 적극 나서는 것도 아니다. 경기상황이 어떻게 될지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자금 공급은 위험도를 높이기 때문이다.
◇ 은행권 구조조정 전담반 속속 신설
은행들이 기업 구조조정을 위한 조직 개편에 속속 나서고 있다.
기업은행은 이달 중 중기유동성지원반과 중소기업애로상담반, 워크아웃을 전담하는 체인지업 팀을 하나로 묶어 가칭 `중소기업지원센터'를 만들 예정이다.
중소기업금융 전문가 20여 명으로 구성된 기업개선센터는 중소기업 지원관련 대외 창구 일원화와 기업구조 개선 작업 추진을 위한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하게 된다.
구조개선팀과 기업회생팀, 유동성지원팀 등으로 구성될 예정이며 중소기업 지원 관련 부서를 통합해 패스트트랙(Fast-Track)과 워크아웃, 일반 대출까지 한 번에 처리한다.
신한은행도 기업구조조정 업무를 전담할 가칭 `기업구조개선본부'를 신설할 계획이다.
약 30여 명의 베테랑 심사역과 산업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이 본부는 기존의 ▲중소기업 유동성 지원반 ▲중소 건설사 지원 전담반 ▲무역금융 애로 상담반 ▲중소기업 금융 애로 상담반 ▲기업회생 전담반 등의 기능을 총괄, 담당하게 된다.
농협은 종전 8명이던 워크아웃 담당팀을 25명으로 구성된 기업개선단으로 확대 개편해 내년부터 가동키로 했으며 우리은행도 기업금융단을 부활시키는 것을 검토 중이다.
앞서 국민은행은 최근 베테랑 심사역 등 44명의 전문가로 구성된 가칭 `기업 가치향상 지원본부'를 꾸렸다. 이 지원본부는 중소기업에 대해 신속하고 원활한 지원과 구조개선 작업을 통해 기업 부실화를 사전 예방하고 조기 회생을 유도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하나은행은 중소기업의 워크아웃을 맡은 기업개선부와 별도로 중견 기업의 워크아웃을 담당하는 `워크아웃 특별대책팀'을 지난 10월 꾸렸다. 하나은행은 관련 기업 구조조정 업무가 늘어나면 조직 확대를 검토할 방침이다.
◇ 은행들 "기업퇴출 부담스럽다"
은행들이 구조조정 전담 부서를 만들고 있지만 상태가 양호한 기업에 대한 지원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적극적으로 부실기업을 솎아내겠다는 의지는 강하지 않다.
개별 금융기관이 기업 퇴출에 앞장설 경우에는 책임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면서 몸을 사리는 것이다.
게다가 연말 결산을 앞둔 시점에 구조조정을 실시했다가 그 충격에 기업들이 무더기로 쓰러지는 사태가 벌어지면 이익이 줄어들 뿐 아니라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 등 건전성 지표를 관리하는데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
또 전반적으로 고용이 감소하고 내수가 위축되는 상황에서 부실 기업을 도려내다가 경제에 타격을 줄 수도 있다.
이런 이유로 기업들의 대출금 연체가 늘고 있지만 은행들은 이를 묵과하거나 추가적인 지원을 해주고 있다.
한 국책은행 관계자는 "지금은 어음부도가 많지 않기 때문에 외환위기 때에 비해 쓰러지는 기업들이 적은 것처럼 보이는 것"이라면서 "기업들은 연체에 대해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것같고 은행들도 연체한다고 해서 기업을 퇴출시키기는 곤란하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건설사 지원을 위한 대주단에서 100대 건설사를 대상으로 신청을 받았을 때도 은행들은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대주단의 한 관계자는 "부동산 경기 침체와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우려 등을 감안하면 많은 건설사들을 탈락시켜야겠지만 퇴출을 단행했을 경우 기업이 도미노로 쓰러질 우려가 있고 그렇게 되면 연말결산에 큰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대부분 받아주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자금지원 방안에는 이견
금융권이 대대적으로 대출자금을 회수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신규자금 지원에 적극 나서는 것도 아니다.
워크아웃을 신청한 C&그룹의 경우 C&중공업에 대한 긴급 운영자금 지원안이 지연될 처지에 놓였다.
당초, 채권단은 C&중공업이 요청한 150억원을 지원할지 여부를 1주일 내로 결정키로 했지만 자금 분담에 대한 이견으로 늦어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의결권 비율이 각각 51%와 21% 수준인 메리츠화재와 수출보험공사가 업무 범위를 벗어난다는 이유로 자금 지원을 할 수 없다고 버티는 반면 채권은행들은 채권비율만큼 분담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5천억원에서 1조원 가량의 지원을 검토하고 있는 하이닉스 주식관리협의회(옛 채권단) 역시 아직 자금 분담에 대해 의견일치를 보지 못하고 있다.
주주 은행들은 하이닉스 지원이 정부의 결정에 따른 것인 만큼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이 상당액을 부담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산업은행은 의결권 비율대로 부담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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