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전문가들은 8일 정부가 부실 부문에 대해 과감한 구조조정에 나설 것을 주문했다.
어느 때보다 경기부양이 절실한 상황이지만 구조조정에도 명확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는 것이다. 건전성 악화에 직면해있는 금융기관에 부실 처리를 맡기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다만 상당수 기업이 연쇄적으로 무너졌던 외환위기와는 다른 상황인 만큼 옥석을 가리는 데 더욱 신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임영재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
건설업이든 조선업이든 문제가 있는 부분이 있다. 구제금융 자금이 그런 부분에 전달되는 과정에서, 부실기업을 연명시켜 경기부양 효과는 적고 구조조정만 지연시킬 수 있다는 점이 우려스러운 부분이다.
문제가 있는 곳과 일시적으로 자금경색이 있는 부분을 가려 정밀한 구조조정이 필요하다. 문제는 제대로 구분이 안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금융기관들이 구조조정 역할을 담당하려면 먼저 스스로 건전성에 대해 확신이 있어야 한다. 외환위기 당시에는 금융기관과 기업이 동반 부실화됐기에 먼저 은행에 공적자금을 넣어 국유화하는 방식으로 우량은행으로 만들었다. 그 이후에 은행들이 워크아웃 등을 통해 (기업부분을) 구조조정했다.
그런데 지금은 은행들이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 등으로 자신들도 구조조정이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논의만 무성한 채 실천이 없다. 무엇보다 정부가 전체적으로 큰 그림을 내놔야 한다.
◇ 허찬국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연구본부장
건설 부문이 얼마나 심각하고 어떻게 대처할지에 대해 생각이 다를 수 있다. 하지만,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당장 해결해야 하느냐, 좀 더 기다려야 하느냐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정부가 나서지 않는데 민간이 무슨 권한이 있겠는가. 여신을 가진 은행이 알아서 하라는 얘기인데 누군가는 `칼'을 잡아야 한다. 문제는 틀림없이 있고 그렇다면 정리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정리는 빠를수록 좋다.
정리를 하려고 하면 `나는 조금만 도와주면 살 수 있다','나와 저쪽이나 어려움이 크게 다르지 않다' 등으로 누구나 다 회피하려 한다. 정부든, 은행이든 누구나 하기 싫겠지만 누군가는 칼을 들어서 궂은 일을 해야 한다.
은행은 부실을 현실화시키면 건전성 자체에도 악영향을 받을 수 있다. 채권은행으로서의 이해관계도 있다. 그래서 정부가 우선 총대를 멜 것으로 기대했던 것이다. 이는 변함이 없다고 본다.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이 건전성을 책임지고 은행들이 가진 여신이 문제 있다고 판단되면 적극적으로 지휘에 나서야 한다.
◇ 김상조 한성대 무역학과 교수
두 가지 우려가 있다. 우선 경제현실에 대한 정부 인식이 너무 안이하다. 옥석가리기가 필요하다는 말만 해놓고 구조조정의 책임을 민간, 특히 은행에 떠넘기고 있다. 더욱 문제는 구조조정을 민간에 맡기겠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은행 뒤에서 `관치금융'을 하고 있다. 정부가 결정적 `키'를 쥐고 있다는 것을 시장이 알고 있는데도 전면에 나서지 않는 태도를 보이는 것은 괴리가 있다. 이러한 엇갈린 신호가 시장의 불안을 가중하고 있다.
과연 옥석을 가릴 의지와 능력이 있는지, 민간 금융기관이 자율적으로 퇴출시킬 용의가 있는지에 대해 시장이 불신하고 있다. 더욱 공식적인 절차를 통해 시장에 개입하고, 사전적 감시나 사후적 추궁 이뤄지도록 하는 게 바람직하다.
지금은 기업이나 금융기관이 일시적인 유동성 부족을 넘어 지급불능(solvency) 상태로 가고 있다. 구조조정이 불가피한데 그 필요성을 부인하거나 개입하면서 개입 사실을 부정하는 태도가 위기를 더 초래하는 것 아닌가 싶다.
◇ 김종년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가장 필요한 것은 `액션'이다. 구조조정이든 경기부양이든 확실해야 하고 중점이 뚜렷해야 한다.
구조조정은 기본적으로 정부가 주도하면 도덕적 해이 등 많은 문제를 낳을 수 있다. 정부의 능력이 시장을 뛰어넘을 수는 없다. 민간 채권단, 이해당사자들이 주도하고, 시장의 평가를 통해 구조조정이 이뤄지는 게 맞다.
다만, 구조조정에서는 시간이 곧 돈이다. 최대한 신속하게 해야 한다. 따라서 옥석을 가리는 과정이 더 신속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정부가 나설 필요는 있다.
경기부양책은 현재 상황에서 절실하다. 전 부분에 자금을 지원하는 `퍼주기' 방식은 문제가 있고 민간이 하기 어려운 성장 기반 부문 등에 집행해야 한다.
이러한 원칙을 지키면서 구조조정과 경기부양을 동시에 추진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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