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직불금-농심(農心)이 기가 막혀
-박기태(경주대교수, 정치컴)
필자는 지리산 부근의 서부 경남 농촌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고향에는 아직도 칠순의 부모님이 생존해 계신다. 얼마 전 부모님을 뵐 겸 고향을 다녀올 기회가 있었다. 늘 그러하듯 추수가 끝난 농촌은 한가롭고 한적하다. 다만 근래에 와서는 비닐하우스 같은 시설원예가 들어와 그나마 일부 젊은 층 주민들은 딸기, 수박, 취나물 등을 키워 내다 파느라 농한기가 없다. 이미 겨울딸기가 출하되기 시작하였으니 고향 친구들을 붙들고 한가로이 회포를 풀기도 민망할 때가 많다. 그래도 기왕 고향에 왔으니 한창 신문지상을 오르내리는 ‘공직자 쌀 직불금 부당 수령’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기어드는 목소리로 물었다. 마치 필자가 직불금을 타먹은 것만 같은 심정은 아마 농촌을 떠나 산다는 죄밑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대 대뜸 돌아오는 것은 ‘○○ 놈들’로 시작하는 격한 반응과 함께 조목조목 불합리한 제도, 부조리한 현실을 짚어 주었다. 28만 명 대상에 조(兆)단위 직불금의 규모와 그 중에서 1700억이 부당하게 지급되었다는 보도를 꿰고 있었다. 때 마침 텔레비전 심층취재 프로그램은 어느 지방의 시의원이 부인 명의로 농민들 몫으로 배당된 관리기를 차지했다고 성토하고 있었다.
그러나 농사짓는 이들의 반응은 그것이 무슨 뉴스거리나 되느냐고 시큰둥한 반응이다. 그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냐는 것이다. TV프로그램을 건성건성 보는 와중에도 정작으로 농촌의 심정을 아느냐는 듯 시종일관 냉소적인 표정이 역력하다. 양도세를 감면받기 위하여 직불금을 직접 수령한 것은 농사짓는 농민을 안중에도 두지 않고 책상물림으로 시행한 농정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필자도 언젠가 고향으로 돌아갈 때를 생각해 논 몇 마지기를 부모님 도움을 보태 마련해 두었다. 그런데 올 이른 봄에 주소지에서 직불금을 신청해 타가라는 연락을 받았다. 면사무소나 마을 이장이 부모님이 직접 농사를 짓는 것을 모르지 않지만 땅 명의자가 타야 한다는 것이다. 다행인지 언젠가 문제가 될 것이며,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신청하지 않았고, 그 직불금은 아마 잠자고 있을 것이다. 직불금을 땅주인이 직접 수령하면 향후 발생할 양도소득세를 면탈할 수 있는 세금제도의 허점과 이러한 부조리가 결합될 여지를 제대로 살피지 않고 졸속 시행한 농정이 이 난리를 빚어내고 있는 것이다. 돈이 된다면 공사가 구분되지 않는 오늘의 현실 또한 서글프기는 마찬가지다. 그런데 더 서글픈 현실은 직불금 불똥이 초가삼간에 옮겨 붙어 애타는 농사짓는 사람들의 심정이다. 전국 농지의 63%가 임차농지인 현실에서 농민들이 농사지을 땅이 없어진다는 것은 보통 문제가 아니다. 농업사회에서 가장 근본적인 원칙이 되어왔던 경자유전의 원칙은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서서히 무너져 내렸고 급기야는 농촌에서는 농사지을 사람은 없고, 농지를 팔려 해도 살 사람이 없어서 토지가격이 뒷걸음치는 기현상이 발생하자 도시민에게도 농지를 구입할 길을 열어준 것이 화근이 된 것이다. 여유 있는 돈쟁이들과 권력과 정보를 독점한 일부 못된 공직자들이 농지를 삽시간에 투기장으로 바꿔버린 결과이다. 그래서 도시주변 농지가 이렇게 난장판이 된 것이다. 국회에서 국정조사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벌써부터 농촌에는 농지를 회수하여 직영하겠다는 땅주인 나타나 내년 봄 씨 뿌릴 땅이 없어져버린 농민이 생겨나고 있다.
말이 직영, 즉 농업을 경영한다는 것이지 실상은 그나마 소작하던 그 농민을 일당이나 받는 임금 노동자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하다하다 안되면 농사나 짓지’라고 말한다. 세상에서 농사를 지울 수 있다면 못 할 일이 없을 만큼 농사가 얼마나 힘들고 고달픈 일인지를 알고나 하는 말인가.
쌀 직불금 타먹은 공직자 명단을 두고 정치적 득실을 따지는데 다 걸기를 하면서 정작으로 농지 임대차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에는 관심도 없는 정치하는 사람들, 정말 슬픔에 가슴 저린 상주격인 농민들은 뒷전에 두고 가짜 울음소리를 드높이는 곡쟁이들을 보는 농민들은 기가 막히고 억장이 무너져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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