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들이 연말 결산을 앞두고 연체율 관리에 `올인'하고 있다.
대부분 은행이 연체율 관리 전담반을 운영하는 한편 영업점 업적 평가 때 연체대출금 관리 실적의 배점을 높이는 방법 등을 동원해 연체율 낮추기에 나서고 있다.
통상 대출 이자나 원금을 내야 하는 날로부터 한달이 지나면 연체율로 잡히는데, 연체율이 높다는 것은 자산 건전성이 나쁘다는 것을 의미해 은행의 신인도에 타격을 줄 수 있다.
또 대손충당금을 많이 쌓아야 하기 때문에 당기순이익이 감소하고 국제결제은행(BIS)기준 자기자본 비율 하락에도 영향을 미친다.
앞으로 경기침체와 기업 구조조정이 가속화할 경우 부실채권이 늘어나고 은행의 건전성이 나빠질 것을 대비해 선제적으로 연체율을 관리할 필요가 있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은행들의 지나친 연체율 관리는 실물경제에 돈이 잘 돌지 않는 `돈맥경화' 현상을 부추기고 신용등급이 낮은 중소기업이나 서민들을 2금융권으로 내모는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는 지적이다.
◇ 은행들, 연체율 관리 전담반 가동
17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민은행은 지난달부터 여신관리부 내 `집중관리반'을 신설해 특별관리가 필요한 여신을 집중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내년부터는 영업점 업적 평가 때 연체대출금 관리 실적에 대한 배점도 높이기로 했다.
또 중소 건설업 등 경기민감 업종과 조선업종, 키코 등 외환파생상품 거래가 많은 업체에 대해 신용등급 적정성 점검을 강화한 상태다.
신한은행도 연말 연체 발생을 최소화하기 위해 각 사업그룹에 연체 감축을 독려하고 있다. 우리은행도 연말까지 개인과 중소기업 대출에 대한 연체 감축 캠페인을 벌이고 있으며 하나은행은 이달 들어 14개 가계영업본부에 연체관리 전담반을 파견했다.
외환은행은 최근 여신관리 총괄반을 신설, 부실 발생 위험이 큰 업종부터 주제별로 정밀 진단을 해 그 결과를 각 사업본부와 영업점에 통보할 예정이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연말 결산을 앞둔 데다 최근 은행의 자산 건전성 문제가 화두로 떠오른 만큼 철저한 연체율 관리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모 은행 영업점 직원은 "아침에 이자나 원금 상환 기일이 도래한 고객들의 리스트를 뽑아 문자 메시지나 전화로 만기일임을 주지시키고 빚 상환을 독촉하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며 "연말 결산을 앞두고 연체가 생기지 않도록 상환일 이전부터 관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9월 말 기준 국내 은행의 원화대출 연체율은 0.97%로 1년 새 0.08%포인트 상승했고 기업대출 연체율도 1.30%로 0.18%포인트 올랐다.
특히 원·달러 환율 및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중기대출 연체율은 1.50%로 작년 9월 말 대비 0.28%포인트 상승했다.
은행 영업점들은 가계와 기업 대출 가운데 연체가 3개월 이상 되거나 회수가 어렵다고 판단할 경우 이를 본점으로 이관하고 본점은 채권추심, 경매 등의 절차를 진행하는데 이러한 본점 이관 여신도 늘어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모 은행 관계자는 "내부 자료이기 때문에 정확한 규모를 밝힐 수는 없지만 기업 대출의 경우 지난해보다 늘어난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 은행 옥죄기에 중소기업.엔화 대출 기업 아우성
은행들이 연체율 관리를 지나치게 강화하면서 부작용도 나오고 있다.
연체율을 낮추려고 은행들은 부실 우려가 없는 우량 기업이나 신용도가 높은 개인들에만 대출을 해줘 일부 중소기업이나 신용등급이 낮은 개인들은 2금융권이나 사채업계에 손을 벌리는 상황이다.
모 중소업체 대표는 "통계로는 중소기업 대출이 많이 이뤄진 것으로 돼 있지만 우량 기업에만 집중적으로 투하되고 있을 뿐 정작 돈이 필요한 중소기업에는 돈이 하나도 안 풀리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특히 엔화대출을 받은 중소기업들의 고통이 커지고 있다.
한국은행이 원. 엔 환율의 폭등에 따른 엔화대출 기업의 상환 부담 증가를 고려해 운전자금 외화대출의 상환기한에 대한 제한을 폐지했지만 은행들이 대출 연장을 꺼리거나 높은 금리를 부과하고 있기 때문이다.
원. 엔 환율 상승으로 일부 기업은 이자가 초기 월 300만 원에서 현재 월 1천600만 원으로 불어나 도산 위기에 처해있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일부 은행은 금리를 높이거나 추가 담보를 요구하는 방식으로 대출 상환을 압박하고 있다. 몇몇 은행은 원. 엔 환율이 1년 새 두 배로 오른 점을 고려해 담보 가치를 절반으로 떨어뜨리고 대출의 절반을 신용대출로 돌려 고금리의 신용대출 이자를 부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엔화대출을 받은 업체들은 원.엔 환율이 하락했을 때 아무런 혜택도 주지 않던 은행들이 무리한 이자와 담보를 요구하면서 대출 상환을 압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엔화대출 중소기업은 "은행들이 영업비밀을 핑계로 금리 계산 방식을 공개하지 않은 채 고무줄 식 이자 조절을 하고 있다"며 "일부 기업은 불어난 이자를 내지 않은 채 버티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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