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업계 구조조정 칼날이 본격적으로 휘둘러진다. 이에 따라 최근 신용등급이 위험수위로 하향 조정된 건설회사들의 입지가 좌불안석이다. 비록 대주단 자율협약에 가입되기는 했지만, 부실(D등급) 판정을 받을 경우 퇴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25일 금융감독원 및 업계에 따르면 그동안 건설업계 구조조정을 추진해 온 금융당국은 주요 은행의 심사역 등 관련 전문인력으로 '신용위험평가 태스크포스(TF)팀'을 구성, 곧바로 신용위험평가 기준 및 세부절차 마련에 들어가기로 했다. 이에 따라 이르면 내년 1~2월 중에는 회생 가능성이 불투명한 부실 건설사에 대한 퇴출이 가시화될 것으로 보인다.
▲연말까시 세부 심사기준 마련 = 심사대상 건설사는 우선적으로 금융권의 신용공여액 500억원 이상인 기업이다. 특히 대주단협약에 가입된 기업도 대상이 된다.
김종창 금융감독원장은 최근 "건설업체 및 중소 조선업체들을 대상으로 우선 구조조정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언급했다. 그동안 "개별기업 또는 그룹별로 추진하되 필요하면 산업별로 대응한다"는 원칙론에서 한 발 나아간 것이다.
TF팀에서 세부기준을 만들면 주채권은행이 이를 토대로 재무상황과 향후 산업전망 등을 반영한 신용위험평가를 실시, 건설사의 퇴출 또는 회생 여부를 신속하게 처리하도록 한다는 것이 금융당국의 방침이다.
심사항목은 해당 건설사의 부채비율, 시공사 보증 프로젝트파이낸싱(PF) 상태, 영업고정자산 등이 중점 평가대상이다.
이를 통해 정상(A), 일시적 유동성 부족(B), 부실징후(C), 부실(D)의 4단계로 분류, D등급은 곧바로 은행의 신규자금 지원이 중단된다. 따라서 스스로 회생 방안을 강구하지 못할 경우 퇴출이 불가피해진다.
주채권은행이 대주단 가입을 승인한 건설사도 신용위험평가 결과 D등급 판정을 받을 경우에는 주채권은행의 판단에 따라 만기연장 등의 유동성 지원이 중단된다.
▲'사느냐, 죽느냐' = 이에 따라 최근 신용등급이 하향 조정된 기업들은 노심초사하고 있다. 최근 한국기업평가의 신용평가에서 기존 투자등급(BBB-)에서 투기등급(BB+)으로 강등된 동일토건, 우림건설, 월드건설, 동일하이빌, 동문건설, 삼능건설, 우미건설 등은 신경을 곤두세우며 대책을 마련하고는 있지만 뾰족한 수가 없어 애를 태우고 있다. 이미 인력감축과 자산 매각 등 쓸 수 있는 카드는 다 쓴 상황이기 때문이다.
투기등급은 아니지만 향후 전망이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강등된 벽산건설, 남광토건, 진흥기업 등도 상황은 별반 다를 바 없다.
특히 이미 대주단 협약에 가입한 것으로 알려진 건설사들은 금융당국의 태도에 당혹스럽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대주단 협약에 가입하면 회생의 길이 열릴 것처럼 협약 가입을 종용해 놓고 이제 와서 퇴출 대상에 예외가 없다고 말을 바꾼 금융당국이 못마땅하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앞으로 어느 업체가 대주단 협약에 가입하려 하겠느냐는 불만 섞인 목소리도 들린다.
대주단협약에 가입한 것으로 알려진 중견 건설업체 A사 관계자는 "금융당국의 처분만 기다릴 뿐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채권 은행과 대책을 협의하고는 있지만 한동안 어려운 상황을 버텨 온 터라 또 다른 자구계획을 내놓거나 구조조정을 할 여력도 없다. 연말인데도 새해에 신규분양을 해야 할 지 여부도 결정을 못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중견 건설업체 B사 관계자 역시 "지금까지 마련해 온 자구 계획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을 뿐 금융당국의 구조조정 방침에 대한 새로운 대책은 없다"며 "자구노력에 대한 평가도 없이 등급이 낮으면 무조건 퇴출시키겠다는 금융당국의 방침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이미 일부 인력을 감축한 데 이어 본사 사옥을 매각키로 하는 등 자구노력을 활발히 펼쳐왔다.
중견 건설업체 C사 관계자도 "이미 조직개편을 단행했고 이제는 원가절감에 매진하고 있는 정도"라며 "건설업계 전반의 상황도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건설사들마다 이미 뼈를 깎는 자구노력을 기울여 왔기 때문에 더 이상의 여력이 남아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대주단 협약에 대한 기대감도 사라져 금융당국이 강제로 가입시키기 전에는 협약 가입에 나서는 업체도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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