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이 경기 불황으로 인해 극심한 침체의 늪에 빠져 헤어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새해를 맞아 증시가 반짝 상승했지만 ‘반짝’ 효과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가장 위태로운 분야는 자동차 산업이다. 초토화 분위기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심각하다. 우리 정부를 비롯한 각국 정부도 나서서 자동차 산업을 지원하겠다고 한다. 연관 산업을 비롯해 어려분야에 상당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좌시할 수 없어서다.
올해 경제를 보는 전문기관의 눈도 긍정적이지는 않다. 한국은행은 올해 국내 경제성장률을 3.7%로 잡았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내년 경제성장률이 지난해보다 수출증가율이 크게 하락하면서 3.3%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다. 2007년에는 5.0%였다. 녹록치 않은 한 해가 될 것이라는 말이다.
그런 가운데 지난해 국내 완성차 업체의 실적이 발표됐다. 유일하게 양호한 실적을 기록한 곳이 현대·기아자동차와 르노삼성자동차이었다.
고유가와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악재를 뚫고 선전한 것이다. 하지만, GM대우와 쌍용차는 부진을 면치 못했다. 어느 정도 예상된 결과여서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위기가 올 때마다 기업들은 다양한 해결방안을 내놓는다. 정몽구 회장의 올해 경영 화두는 ‘위기에서의 생존’이다. 구체적으로는 “국가별로 고객이 원하는 사양의 차를 경쟁업체 보다 한발 앞서 개발하고 공급해 시장을 선점해 나간다”는 것이었다.
지난해 국내 완성차 5사의 연간 판매실적은 535만2510대였다. 2007년의 522만5566대 보다 2.4% 늘었다. 실적 상승을 이끈 것은 현대·기아차다.
현대·기아차의 호실적 뒤에는 다양한 라인업이 있다. 소형차와 신차를 잇달아 내놓으며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기민한 움직임이 주효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현대차의 ‘쏘울과’ 기아차의 ‘포르테’, ‘모닝’이 대표적이다. ‘모닝’은 지난해 전년대비 무려 196.4% 늘어난 8만4177대가 팔리는 기염을 토했다. 10년 만에 경차 전성시대를 부활시켰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여기에 현대·기아차는 올해 하이브리드 차까지 내놓는다. 얼어붙은 내수시장을 소형차와 친환경차로 녹여낼 기세다.
실적이 양호했던 르노삼성차 역시 현대·기아차에 비하면 아직 라인업 구성이 빈약하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이를 보완할 필요가 있다. GM대우와 쌍용차는 두 말할 나위가 없다.
지난 5일부터 공장 가동을 중단했던 국내 완성차 업계가 기지개를 펴며 새로운 활력을 되찾아가고 있다. 오랜 겨울잠을 털고 다시 들메끈을 단단히 고쳐 맨 만큼 새해를 여는 각오도 남다를 것이다.
이제는 소비자가 원하는 것을 미리 읽어서 그에 맞게 구색을 갖춰야 한다. 그래야 위기 때마다 밥그릇 걱정을 해야 하는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
자동차가 외발자전거와 달리 고속 주행에도 안정적일 수 있는 이유는 여러 개의 바퀴가 달렸기 때문이다. 소걸음일지언정 외발자전거 보다 위태롭지는 않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지갑이 얇아진 소비자들은 대형차 보다는 소형차, 연비가 우수한 차, 브랜드 보다는 상품성이 뛰어난 차종, 즉 벨류 카(Value car)로 수요 이동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김훈기 기자 bom@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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